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하지만 들려주고 픈 내 이야기
수학여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툭 던져놓고 간 통보가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으레 그렇듯이 장기자랑은 수학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꽃이기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모두가 열심히 임하기로 한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학교 강당, 놀이터, 빈 교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여 연습했다.
그때 준비한 노래는 떼창과 관광버스 댄스가 인상적인 DJ DOC의 "DJ DOC와 춤을"이었는데 나름 분위기를 고려한 최적의 선곡이었다고 자부한다. 우린 춤을 잘 추지는 못 하였지만 댄스 동선도 맞추고 파트도 나누어가며 성공적인 장기자랑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실력을 쌓아갔다.
설레는 수학여행 당일, 경주 곳곳을 누비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관광을 하고 드디어 장기자랑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신나게 놀면 취침 전까지 자유시간을 준다는 사회자 아저씨의 뻔한 레퍼토리가 나왔고, 순수했던 우리는 자유시간을 염원하며 무대를 즐겼다.
한 팀, 한 팀 공연을 끝낼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져 갔다. 긴장되는 시간이 흐르고 대망의 마지막 순서, 배고파의 차례가 다가왔다. 전교생들이 배고파!, 배고파! 를 외치며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져버린 분위기의 대미를 장식하고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얻길 기대하고 있다. 이대로 준비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성공적인 수학여행이 될 것이라..
숨을 고르고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무대를 올라가는데
아뿔싸, 사람은 8명인데 마이크가 2개밖에 없다는 말을 하신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댄스라는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뿔싸, 매우 좁다. 8명이 다 서있기에도 벅찰 만큼 좁은 무대였기에 춤을 출 만한 여유공간은 없었다. 심지어 마이크 선도 짧아 8명이 옹기종기 모여야 간신히 마이크에 닿을 수 있었다. 당황스러운 우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주는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힘찬 환호성을 보냈다.
"젓.. 락질 잘해... 만 밥... 먹... 요"
8명의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어우러진 환장의 하모니였다.
무대에 선 모두가 약간의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서서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노래만 불렀다.
강렬한 환호성을 보내던 관객들도 무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3분 남짓 되는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싶고 장기자랑을 시킨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억겁의 시간 같던 노래 한 곡이 흐르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님들처럼 뜨거워진 현장의 분위기를 진압한 우린 마무리 인사도 없이 후다닥 무대를 빠져나오기 급급했다.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 뒤에서 상황을 수습하던 사회자 아저씨의
"저 친구들 배고파서 밥 먹으러 가나 보네요.. 하하"
멋쩍은 대사만 등 뒤에서 들릴 뿐이었다.
장기자랑을 끝내고 다행히도 사회자 아저씨의 배려로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베개싸움을 하며 마지막 추억을 장식해야 하지만 수학여행을 망쳤다는 죄책감에 우린 의기소침하여 숙소에 가만히 박혀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지막 수학여행을 마칠 수는 없었기에 한참을 고심하던 우리는 돈을 모아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 먹기로 결정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모였고 웬일인지 회장이 솔선수범하여 매점에 다녀온다고 문 밖으로 나갔다. 꽤 긴 시간이 흘러 돌아온 회장의 손에는 놀라운 것이 들려있었다.
"오늘 먹고 죽자!!"
라는 말에 쳐다본 그의 손에는 새우깡 2 봉지와 캔커피 한 박스, 추가로 낱개로 캔커피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캔커피 정도야 우습지만 그 당시 커피는 어른의 전유물이었고 커피=술 정도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순수한가.
과자와 커피를 세팅하니 사람은 8명에 커피는 약 50캔... 들어보니 매점에 있는 레쓰비 캔커피를 전부 사 왔단다. 회장의 창의적인 생각에 감탄하며 앉아서 커피를 들이켰다. 기분이 꿀꿀해서인지 커피는 술술 넘어갔고, 장기자랑의 한을 풀듯이 레쓰비를 마시며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르며 (물론 Let It Be만 무한 반복하였지만)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은 깊어져 갔다.
시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흘렀고 수학여행 무대의 추억은 웃으며 넘길 정도로 무뎌져 갈 때쯤 우리는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설렘과 함께 정든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그 시기, 졸업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그즈음에는 마음속의 감정이 격하게 요동치기 마련이다. 우린 이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졸업을 해서도 평생 연락하자며 인터넷에 배고파 카페를 만들고 활발한 활동을 약속하였으며,
'스승의 은혜'를 개사한 '형님의 은혜'를 우리의 사가(회사를 대표하는 노래)로 삼고 하루에 한 번씩 제창하였다.
시간은 다시 흘러 졸업식 날이 되었다.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마친 뒤 각자의 반으로 가 마지막 종례를 하였다.
담임선생님의 덕담이 시작하는 동시에 모두가 눈물을 훌쩍였고 당시 우리 반의 종례 인사였던 "차조심, 길조심, 가끔 미친개 조심"을 다 같이 외치며 졸업식은 무사히 마쳤다. 이제 1년을 친형제처럼 붙어 다니던 배고파와의 이별만이 남았다.
우린 교실을 나가 늘 모이던 복도 뒤 편에 모였고 평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허공에 떠 있는 완강기를 바라보며 '형님의 은혜'를 경건하게 제창하였다.
주위에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가득하였지만, 당시의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커서인지 부끄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고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평생 연락하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나누며 각자 부모님의 손을 꽉 잡은 채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초등학교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 뒤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꾸준히 관리하기로 약속한 우리의 카페는 스팸글들만 간간히 올라오는 폐허가 되었으며 졸업 후에도 연락하기로 했던 우리는 SNS에 나타나는 생일이라는 알림을 보고 어색한 축하글만 남기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우린 너무 많이 변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임관하여 군인으로 지내고 있는 홍 회장, 글쓰기를 취미로 갖고 지금 이 글을 쓰며 추억에 젖어있는 윤 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머리를 길게 기른 채 제주도 이곳저곳을 누비는 이 과장,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공무원이 되겠다며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정 사원..
또한 연락이 끊겨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는 못 하지만
곽 사장, 김 이사, 탁 차장, 이 대리 까지
배고파 멤버 8인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같은 추억을 간직한 채 잘 지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언젠가 다 같이 만나자!'
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련다. 그저 지금과 같이 서로가 있는 곳에서 몸 건강히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 회상하여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안겨준 너희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