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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정 Apr 02. 2024

문학적 보수주의자의 사유 한 그릇

김훈《라면을 끓이며》

문학적 보수주의자의 사유 한 그릇
김훈《라면을 끓이며》

 내게 정치적 보수는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벤야민주의자인 나에게 비평이란, 대상을 비판함으로써 구원의 자리에 놓는 것인데, 자칭 정치인 중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대상들은-홍준표식 강경 보수던, 이준석식 개혁 보수던-모두 환멸의 대상이다. 유시민이나 조국처럼, 자칭 진보주의자들도 비판의 대상보단 혐오스러운 존재들인데,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떠드는 인간들은 도무지 비평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문학적 보수주의자는? 성별 고정적 사고관과 고전적 취향을 지녔으며, 남성적, 권위적 색채가 짙은 문학적 보수주의자는? 내게는 대화의 대상, 비평의 대상이다. 문학적 보수주의자라고 칭할 대상 중 가장 현실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김훈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면》은 20세기, 21세기를 아우르는 전통적 글쓰기의 정수가 담겨있는 배부른 한 끼이다. 쉽고 간결한 기자적 문체 왼 담백한 사유로 다수의 입맛에 만족하면서도 배도 부르게 한다. 그의 남성성이 조금 짜서, 누군가는 싫어할 만 하나, 짠맛도 맛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손이 가는 식사인 것 같다.

 부끄러움을 고백하자면,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 없다. 그의 산문을 읽기 전까지, 김훈이라는 이름은 남진우나 신형철 같은 평론가들의 평론에 담긴 이름이었고, 오히려 보수주의자-남성주의자라는 선입견이 강해 그리 달가운 이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의 산문에 담긴 담백한 사유 속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속 이윤 체제가  생명 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외침이 숨겨져 있다.

산문집이기에 그동안 쓰였던 글들을 밥, 돈, 몸, 길, 글이라는 주제에 맞춰 놓았다. 여러 비평가들이 말하듯, 한국어의 정점을 보여주는 빼어난 저술은 책의 가장 큰 힘이다. 화려한 향식료보다 담백함이 깊게 배어있다. 철학자나 문학자들의 사유를 인용하기보다 단순하게 자신의 생애를 바탕으로 혼이 담긴 글을 쓴다.

라면에 대한 사유부터 가부장의 역할, 여성관, 세월호 참사, 부친 이야기, 일산 신도시 이야기, 아버지에게 하는 말, 외모지상주의 등 수많은 이야기를 또박또박하게 진행한다. 문학적 보수주의자의 입장이라, 그를 온전히 추종할 수는 없지만 공감할 면은 크다. 궁극적 인간 해방이라는 진보적 의제는 아닐지라도, 김훈의 사유는 '돈보다 생명이 먼저'라는 아주 당연한 말을 또박히 하기 때문이다. 담백한 책이었다. 먹기 쉬우면서 든든하고, 영양가도 나쁘지만은 않은 산문이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문체의 층위에서 필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닮고 싶다. 딱 문체와 글쓰기 스타일까지만

2024.3월과 4월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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