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
1991년에 쓰인 크리스 하먼의 글 《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에서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자본과 국가의 관계를 분석한다. 하먼은 좌파 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두 가지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 다룬다. 국가는 상부구조일뿐이라는 주장과 국가는 곧 자본이라는 주장에 모두 반대한다. 전자의 경우, 학술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로 주장한다. 예를 들어 랠프 밀리밴드는 도구주의 국가관을 주장하며, 국가가 자본가 계급과 유착돼 있는 원인이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이 사적 자본 소유자들과 똑같은 사회 환경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풀란차스는 기능주의 국가관을 주장하며, 국가는 "계급 세력이 응축된 것"이고, 국가가 응축하는 세력이라고 말한다. 이 둘의 국가관은 넓게 봐서는 서로 대립하나, 실천의 층위에서 개혁주의로 빠지기 쉽다. 두 주장 모두, 결국 국가는 단지 상부구조이므로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 자본주의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단 좌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반대로 국가와 자본을 동일시하는 소수의 좌파들도 있는데, 이들의 사상의 시원은 레닌과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이다. 두 혁명가가 주장한 제국주의론은 국가와 자본이 융합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마이크 키드런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개별 국가와 개별 자본은 완전히 일치한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영국 자본주의 이익이 곧 영국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없다는 것은 아니나, 키드런이 볼 때, 이런 예외는 과거의 유물이지,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 없어질 예외라고 봤다. 이런 견해와 비슷한 학파가 있는데, 바로 자본 논리학파이다. 그들은 국가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자본축적의 논리라고 본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분석상의 문제도, 실천에도 문제가 있다. 전자의 경우, 정치적 층위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경제적 층위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서로 다른 별개의 문재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즉, 레닌이 그토록 경계한 '경제주의'를 비롯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제기된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의 견해가 대표적인 오류다. 국가와 자본을 완전히 융합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마찬가지인데, 국가가 유지하는 억압 형태들은 축적 필요에 의해 곧장 비롯한다면, 국가의 억압 형태와 자본의 축적 필요가 서로 충돌할 수 없다. 이런 분석은 실천에서 초좌파주의와 모종의 개혁주의로 빠질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억압이 자본주의의 직접적 필요에 의해 요구되므로 모든 투쟁 속에서 혁명이 임박했다고 보는 초좌파주의, 특정 억압을 조금씩 거부하다보면 자본에 필수적인 구조들도 차츰 붕괴할 것이기에 무지개 연합을 건설해야 한다는 개혁주의로 빠지게 된다. 따라서 단순한 두 가지 환원론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이 상호작용하는 구체적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