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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May 13. 2024

엄마, 남자친구는 언제 사귀는 거야?

아침에 중학생인 큰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보행자 신호로 바뀌어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길에서 큰 딸이 다니는 학교교복을 입은 남학생, 여학생이 마주보고 서로의 볼을 만지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등교 중인 학생들이 많은 와중에 볼 수 있는 광경치고는 내게 너무나 낯설고 놀라웠다.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는 나를 보며 큰 딸은나와 같은 곳을 보았고, 나는 말했다.

"쟤들, 사귀나보다. 그치?"

이어지는 큰 딸의 대답은 나의 예상 밖이었다.

"응, 우리 학교에 커플 많아."

중학교에....커플이....많다고????

남녀합반인 공학이라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학교생활을 할 거라는 정도는 감안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내가  평일 휴무일 때는 큰 딸이 친구 3명을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남학생도 있었고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는 구나 싶었다.

그런데, 중학교 내에서 커플들이 많을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는 여중, 남중, 그리고 여고 남고로 엄격히 구분된 학교를 다녔고, 이성친구가 있는 학생들은흔히 말하는 "노는 학생들"만의 이야기 였다.

요즘은 워낙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안다.

나와는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위한 필수조건이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아울러 아이들도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래서 약 1년쯤 전에도 나는 잘 대응하지 않았던가...


그날은 평일 휴무였다.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두 딸들도 거실에 함께 있었다.

초등학생인 작은 딸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남자친구는 언제 사귀는 거야?"

아이는 꼭 정답처럼 정해진 나이가 있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전제를 가지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머리속으로 대답대신 온갖 질문들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긴건가?

아님, 고백을 받았나?

벌써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건가?

얼마나 됐을까?

어떤 아이지?

등등등...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고, 이런 사실을 알리없는 두 딸들은(큰 딸도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은)나의 대답과 반응이 어떨까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했다.

아무런 근거도 설명도 없는 상태에서 딸아이의 질문 하나로 나는 혼자서 상황을 정하고 미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의 당혹스러움과 앞선걱정,그리고 벌써부터 남자친구라니? 하는 약간의 분노를 "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서 그때 사귀면 돼!"라고 윽박지를 뻔 한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나는 작은 딸에게 물었다.

"우와~너 남자친구 생긴거야?"

걱정스런 말투는 아이의 말문을 막을 것 같아 일부러 밝고 크게 질문했지만, 아이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까 잔뜩 걱정하고 있었다. 예상하고 걱정했던 대답이 나오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나 스스로를 꼭 붙잡고 있었다.

"아니~귀찮게 남친은 무슨~~.그냥, 내 친구들 중에 남자친구 사귀는 애들 있어서 지금 사귀는게 맞나 싶어서. 그니까 엄마, 지금 남자친구 사귀어도 돼? 언제부터 사귀는게 맞아?"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쿨하게 "멋지다~! 어떤 애야?"라고 반기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털어놓게 하려던 나의 애씀은 허사가 되었지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귀찮다' 라는 아이의 말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자, 이제 대답할 차례다.


언제부터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맞는가?

내가 학생일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게 들은 정답은 "대학생이 되면" 이었다.

중고등 학생들이 해선 안되는 모든 것들을 '대학생'이 되면 다 해볼 수 있으니 지금은 그저 공부만 하라는 뜻이었다.

요즘의 아이들에게 그런 말과 생각을 주입시킬 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묶어놨다가정작 대학생이 되었을 때 뒤늦게 엄마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잔소리로 들리지 않으면서 편견을 가지게 해서도 안되고, 성급한 마음을 가지거나 오해해서도 안되는 말들을 해야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 당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직후 내가 적어놓은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성친구 사귀는 거?

좋지~~

언제 사귀는거냐구?

글쎄....좋아하는 사람을 사귀기에 좋은 시기가...이때! 이때! 라고 정해져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가 그때 아닐까?


얘들아, 이성친구를 언제 사귀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게 뭔지알아?

이성친구건 동성친구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야.

이 사람을 만나는 시간에 내가 즐거운지, 만나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밝은 사람이 되어가는지,

만나는 동안 나는 행복한지.


너희들이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해서 그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란 법은 없어.

그걸 잘 구분해야 돼

좋아하는 사람?

음...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맛있는 거 먹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좋은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웃게 해주는 사람,

너를 위해 자기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너도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주는 사람,

그래서 서로서로 발전하게 되는 그런사람.

같이 있어도 즐겁지 않고, 고민하게 만들고

헷갈리게 만들고

 믿음을 주지 않는 사람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은 아닐 가능성이 많아.

엄마는 너희들이 때에 맞춰서 사람을 사귀는 것 보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당시에 이토록 침착하게 아이들에게 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와 내 아이들에게 닥친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은 커플들을 매일매일 접하게 된다면 곧 닥칠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또다시 걱정이다. 판도라가 열어버린 그 상자에는 반드시 '부모의 자식걱정'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큰 딸을 슬쩍 떠보았다.

"저렇게 사귀는 친구들 보면 부럽지 않아?"

"뭐래? 부럽긴 뭐가 부러워~길이나 학교에서 저러는 건 안되지, 나빠~!"

"저런 스킨쉽 말고라도, 좋아하는 사람 보면서 설레고 기분 좋은 감정이 부러울 수는 있잖아."

"엄마, 나는 잠이나 더 잤으면 좋겠어"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아이의 학교에 도착했다.

아직은 귀찮고, 잠이 더 좋다는 아이들의 반응이 고맙고 또 다행스러웠다.

지금까지 아이들과의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남편도 나도 항상 노력했고, 그런 우리를 아이들도 잘 따라주었다.

이 사실 하나를 근거로 우리 부부는 꽤 잘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내려주고 혼자 운전을 하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잘해서 문제가 없었던게 아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아이들의 사춘기...

어쩌면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조그만 문제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문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좌우될 것이다.


잔소리로 들리지 않으면서

편견을 가지게 해서도 안되고,

성급한 마음을 가지거나

오해해서도 안되는.


나와 남편의  말들과 행동들이 가장 중요해 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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