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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랑 Oct 24. 2022

내시경

-2022 동서문학상 맥심상 수상작


잦은 금식과 폭식은 위험합니다 습관이 할퀴고 간 자리를 가리키며 의사가 말했다 뜯어지지 못하고 부서지는 말 조각들이 입안에 생채기를 내어가며 위장의 상처에 고소하게 걸린다


배고픔과 통증 사이에는 점막보다 얇고 연약한 경계가 있었다 든 것도 없던 속을 울며 게워내던 기억들이 그 걸어온 길의 지도를 위 속에 고스란히 그려두었다 몽롱한 꿈속으로 검고 기다란 관이 꾸역꾸역 목을 타고 넘어간다


기억들이 갈퀴 같은 발로 걸어와 생긴 흉터를 들여다보겠다고 두꺼운 바늘을 두 번이나 잘못 꽂았다 초록색 스웨터가 손목까지 번졌다


지루한 의사의 눈을 보는 꿈을 꾸다 묵묵히 따가운 위장을 끄집어내 얼음물에 재웠다 채 얼지 못해 잔 얼음조각으로 버석거리는 위장을 햇살 드는 창가에 널어둔다 잘 마른 상처에서 짠맛 나는 말 조각을 주워다가 나를 먹일 밥 한 끼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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