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평범한 일이라 생각해왔는데, 막상 자식이 생겨보니 이건 정말 전혀 평범하지가 않다. 일평생 덕질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고, 연애 때도 나름 거리를 두던 나는, 아기를 낳고 나서그야말로 사랑에 푹 빠지고 말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황홀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웃고, 동생은 신기해했다. 아기를 물고 빠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신생아 시절의 기억이 없는 게 아쉬워진다고 했다. 존재만으로 이렇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남아있었다면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을 거 같다고. 그러게, 나도 이걸 왜 이제야 알았나몰라.
아기를 사랑하며 깨닫는다.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고,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도. 그럼에도 누군가는 세상 무엇보다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내 자식이 생기고서야 알았다.
우리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열심히 해서 사랑받는 것만 기억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뭔가를 잘해야만 사랑받는다고 믿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늘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이 난 채로 살았다.
그래서 우리 딸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밥만 먹고 똥만 쌀 때부터, 너는 이미 사랑받는 존재였다고. 그래도 우리 딸은 (내가 그랬듯)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신생아를 안는 부모의 온기를, 배냇짓으로 웃는 아기에게 녹아버리는 부모의 눈빛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존재만으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뭔지 바로 이해할 텐데.
이런 소중한 오늘 하루를 기억하지 못할 네가 너무 아쉽다. 그래서 내가 더더 많이 기억하고 이야기해줘야겠다. 아주아주 지겹도록,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