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해수욕장
서귀포에서 삼일을 보낸 우리는 제주시로 숙소를 옮겼다. 우리의 새로운 숙소는 김녕해수욕장 근처였는데, 이곳에 숙소를 결정한 주된 이유가 함덕해수욕장을 비롯한 제주도 북서쪽의 바닷가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숙소를 옮기고 첫 번째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함덕해수욕장이었다.
"와... 바닷물 진짜 파랗다."
우리는 1년 전에도 제주도에 왔었는데, 그 때도 함덕해수욕장을 잠깐 들렀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날씨도 차서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하고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기억을 만회하고자 제주도 북쪽으로 올라오자마자 함덕해수욕장을 찾아온 것이다. 김념에서부터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유난히 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이 바로 함덕해수욕장이다. 제주에서 워낙 많이 알려진 해변이라 차 댈 곳이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차장에 빈 공간이 있었다. 주차 후 차 밖으로 나온 우리는 작년에 비해 따뜻하고 바람이 비교적 잔잔해서 안심했다.
우리는 바다를 보기 위해 해변을 향해 걸었다. 바다로 가는 길에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야자수가 제주도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기 직전의 그 설렘이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주차장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바다가 어느새 우리 눈 앞에 다가와 있었고, 함덕해수욕장의 바닷물은 영롱할 정도로 파란색이 가득했다. 작년에 미처 즐기지 못했던 이곳의 바다를 1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야자수 근처에서 영롱한 바다를 감상했다. 그곳에는 작은 아치형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단연 일품이었다. 왼쪽으로 사람들이 주로 가는 큰 해변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비교적 한적한 작은 해변이 있었다. 우리는 메인 무대를 먼저 보고픈 마음에 일단 큰 해변으로 향했다.
함덕해수욕장의 모래는 정말 곱다. 미세한 모래입자가 쌓인 해변은 비교적 단단해서 다른 해변에 비해 걷기가 편했다. 우리는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물론 날씨가 추워서(이 때는 4월이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바다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짝꿍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발만이라도 바다에 담그고 싶어했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나는 바닷물의 촉각을 느껴볼 수 없었지만, 짝꿍은 걷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닷물까지 나아갔고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다소 차가워했지만, 짝꿍은 너무도 상쾌하다며 만족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모래사장이 제법 넓었고, 바다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해변 한쪽에는 모래 조각이 있었는데, 꽤 오래 지난 축제에서 만들어진 조각이었다.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완전하게 무너지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모래로 만들어졌더라도 꽤 튼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래성'이라는 표현이 이 조각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비록 일부만 남아있었지만, 정말 정교하게 조각된 작품이었다. 그리고 해변을 거닐면서 우리는 잠시 쉬었다 갈 만한 카페를 물색했다. 날씨가 좋기는 했지만 바닷 바람을 온 몸으로 받다보니 어느새 추워지기 시작했고, 곧 실내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나온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들어섰다. (카페는 별로 특별하지 않았기에 소개하지 않는다.) 우리는 곧장 해변 가운데에 있는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산책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 길 끝에서 해변을 돌아보고, 바다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바람은 많은 불었는데, 바다를 향해 나아갈수록 바람을 더욱 거세졌다. 우리는 그 바람을 뚫고 어느덧 바다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 서게 되었다.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의 광활함에 가슴이 탁 트이고, 바다의 청명함에 마음이 상쾌해졌다. 고운 모래로 뒤덮이고 까만색이 인상적인 현무암으로 장식된 모래사장 위를 티없이 깨끗한 파란색의 바닷물이 쉼없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 왕복 운동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또 다른 감각인 청각을 자극했다.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기분 좋게 나와 짝꿍에게 전해져서 우리는 그곳에서 한참을 벗어날 줄 몰랐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함덕해수욕장의 모래사장과 그 뒤로는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쉬어가는 여러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글로 써놓고 보면 다른 해수욕장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함덕해수욕장만의 매력이 충분히 있었고 그 매력 때문에 우리는 이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머무는 동안 특별하게 한 것도 없었고, 그저 해변을 걷다가 카페에 잠시 들어가서 쉬었고 다시 나와서 해변을 거닌 것이 전부였다. 그저 함덕의 바다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함덕해수욕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배가 고파졌고, 식당을 찾아 이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