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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데본] 다트강 하류 작은마을

다트머스(Dartmouth)

by 방랑곰

토트네스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트머스로 이동했다. 다트머스까지 가는 길은 좁은 시골길인데다가, 굽어진 구간에는 사각지대가 많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약 30분 남짓 운전한 끝에 다트머스 마을에 도착했고,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트머스가 어떤 마을인지, 그리고 나와 짝꿍은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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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머물렀는데도 아직 가보고 싶은데가 참 많네. 이번에 못 가본데는 내년에 가자."


우리가 다트머스라는 마을을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짝꿍과 영국에서 한달을 보낸 첫 번째 해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 해에는 가지 못해지만, 다음 해에 가보고 싶은 곳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지도를 살펴봤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우리가 놓쳤던 곳이 과연 어디일까에 대해 콘월과 데본 지역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리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작은 마을 하나를 우연히 눌러봤고,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짝꿍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이곳을 다음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가 마음 속에 찜해 놓은 마을이 다트머스이다.


1년이 지난 후, 우리는 그 마을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콘월에서 한달을 머물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여행 계획을 세운 곳이 바로 다트머스이다. 1년 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만큼 이 마을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은 꽤 높았다. 우리는 콘월에 도착해서 짝꿍의 가족에게 인사를 나눈 후, 다음날 바로 다트머스로 향했다. 그만큼 최대한 빠르게 이 마을에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는 길에 앞서 포스팅한 토트네스 마을 잠시 들렀고, 우리는 오후 느즈막히 다트머스 마을에 들어섰다. 일단 우리는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먼저 하고, 본격적인 마을 탐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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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골목이 미로 같네. 그 미로 끝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정말 좋다."


다트머스에서 우리가 찾은 숙소는 베드앤브렉퍼스트다. 영국 특유의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어서 우리가 시골로 여행을 갈 때 종종 찾는 숙소 유형이다. 이 숙소는 다트머스 마을에서 비교적 북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숙소까지 가는 길이 정말 좁았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언덕길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다 보니 숙소가 나왔다. 체크인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창문을 열었는데, 그 뒤로 보이는 풍경이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넘어야 했던 각종 어려움을 한순간에 잊게 만들었다. 바로 눈 앞에 다트머스의 마을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마을을 내려다보던 우리는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마을을 천천히 둘러볼 시간이었다. 시간이 오후 6시 가까이 되었지만, 여름에는 해가 워낙 늦게 지기 때문에 어두워지기 전까지 마을 탐방 시간은 충분했다. 숙소에서 마을 중심부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었는데, 미로처럼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미로 같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까지 지나면 작지만 정감 가득한 항구에 다다르게 된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와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형형색색의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우리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주민들의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가 넘어가면서 고즈넉함이 이곳을 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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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옆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평온한 항구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 공원은 저녁임에도 활기가 넘쳤고, 그 분위기에 덩달아 즐거워졌다. 이 공원을 지나면 다트강 하구가 나온다. 강 하구이기는 하지만 폭이 별로 넓지 않아서 강 반대편 마을인 킹스웨어(Kingswear)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 강이 아래로 조금만 더 흘러가면 대서양과 만나게 된다. 이 물줄기가 강이기는 하지만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 약간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강 위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요트와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갈매기들이 이러한 느낌을 더욱 배가했고, 덕분에 강과 바다의 분위기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짝꿍은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 반대편으로 보이는 킹스웨어 마을은 여러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예쁘면서도 평화롭고 아늑해 보였다. 그리고 강 위에는 다트머스와 킹스웨어를 오가는 작은 배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두 지역을 도로로 이동하려면 정말 오래 걸리는데, 배를 타고 건너가면 불과 5분만에 도착한다. 그래서 양 쪽 마을의 나루터에는 배를 타기 위해 차들이 항상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문득 강 반대편 마을도 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가는지 살펴봤는데, 두 마을을 오가는 배가 워낙 자주 있어서 그냥 아무때나 와서 조금만 기다리면 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다. 이날은 이미 늦었기에, 우리는 다음날 킹스웨어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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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강을 말벗 삼아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물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 골목은 영국 시골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날씨가 어둑해지면서 거리에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고, 상점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슈퍼마켓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어서 동네 주민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을 사고 나온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을 닫은 식당이 간혹 눈에 띄었고, 우리는 펍에서 음식을 먹기로 했다. 아까 골목을 거닐면서 눈여겨 둔 펍을 찾아간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한가득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바로 되돌아 나왔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테이블이 필요한데, 당연히 빈 테이블이 없었다.


그렇게 펍 두 세곳을 더 들어가본 우리는 실내에서 밥 먹는 것을 포기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고, 설령 빈 테이블이 있더라도 예약된 자리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대안은 음식을 포장해서 다트강을 바라보면서 먹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다트강변을 따라 벤치가 많아서 앉아서 먹을 곳은 많았다. 우리는 피시앤칩스 포장 전문점을 지도에서 검색했다. 아직 문을 연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하는데, 걸어가면서도 재료가 다 떨어지진 않았을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피시앤칩스를 손에 넣었고, 빈 벤치로 가서 다트강을 바라보면서 갈매기의 온갖 질투어린 시선과 간혹 보이는 공격성을 이겨내며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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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까지 잘 해결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마을 분위기가 워낙 평화롭고 조용해서 조금 더 거닐고 싶기도 했지만, 마을 길이 익숙하지 않기에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고 싶었다. 숙소로 가는 길을 오르막이었다. 계속된 오르막에 숨이 가빠질 무렵, 마을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우리는 잠시 쉴 겸, 이곳에서 저녁 무렵의 다트머스 마을을 감상했다. 위로 우뚝 솟아있는 교회 종탑이 중심으로 여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발산하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한층 더 따뜻해졌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오니 숙소가 나왔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따뜻한 물로 피로를 씻어냈다. 잠시 쉬던 우리는 방 옆에 붙어있는 발코니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환하게 불이 밝혀진 다트머스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산 아래 아늑하게 안겨있는 작은 마을에 따뜻한 감성 가득한 불빛까지 더해지면서 평화로운 마을의 분위기가 극대화되었다. 그 분위기에 심취해서일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이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서일까, 그저 그 순간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콘월로 돌아가기 전에 다트머스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의 분위기와 감성이 너무 좋아서 최대한 길게 머무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을의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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