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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데본] 증기기관차와 유람선

다트머스(Dartmouth) 2일차

by 방랑곰

다트머스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이튿날을 맞이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발코니로 나가서 고즈넉한 다트머스 마을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 풍경을 보면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과연 어떤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다트머스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게 될 지, 기대를 잔뜩 품은 채 이튿날 다트머스 탐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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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를 타고 건너가 보자. 반대편 마을도 궁금해."


마을 중심부로 내려온 우리는 곧장 선착장으로 향했다. 전날 다트강을 오가는 배를 보면서 가능하면 배를 타고 반대편 마을로 건너가 보고 싶어졌고, 당일에 예약 없이도 배표를 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미리 알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를 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이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두 마을을 연결하는 배는 수시로 운행하고 있었다. 애초에는 건너편 마을인 킹스웨어만 가볼 생각이었는데, 선착장에서 배편을 알아보던 중에 패키지를 발견했고 우리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표를 구매했다.


이 패키지는 3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트머스와 킹스웨어를 오가는 배, 킹스웨어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 그리고 다트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오는 유람선이었다. 이중에서 우리가 특히 끌린 것은 증기기관차였다. 배나 유람선은 지금껏 많이 탔었지만, 증기기관차를 타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증기기관차에 대한 정보도 알게되면서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마침 이곳에서 증기관차를 탈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고,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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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티켓을 구매한 우리는 곧장 배를 타고 반대편 마을인 킹스웨어로 넘어갔다. 배에서 내리면 증기기관차가 출발하는 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킹스웨어 마을을 둘러봤다. 다트머스에서 볼 때부터 느낀 사실이지만, 킹스웨어 마을은 정말 작고 아담했다. 마을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바로 거주 구역이 나와서 사실 볼 만한 것이 특별하게 있는 곳은 아니다. 다만 언덕에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다트강와 다트머스 마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모습을 감상하던 우리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서 그 쪽을 바라보니 우리가 타고 갈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킹스웨이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기차를 탈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에 우리는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봤자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여유롭게 마을의 거리를 눈에 담아내면서 걸어갔다. 역에 도착하니까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내려서 선착장으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플랫폼 깊숙하게 들어가서 사람이 조금 덜 많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난 후 기차에 올라섰는데, 내부 모습이 일반 기차와는 사뭇 달랐다. 증기기관차라는 컨셉에 맞게 내부 모습도 다소 옛스러움이 가득했는데, 촌스럽기보다는 되려 정겨워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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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올라타서 내부를 둘러보는데 출발을 알리는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위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았다. 그 기차에 올라타 있는 그 순간이 다소 이색적이었다. 타임캡슐을 탄 것 같은 느낌도 들면서,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이 증기기관차가 환경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영국 역사의 한 장면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계속해서 운행하고 그 모습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고민하다보면 이 증기기관차를 보존함과 동시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은 줄일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기차의 속도는 전혀 빠르지 않았다. 덕분에 기차 양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눈에 더 담아낼 수 있었다. 킹스웨어역을 떠난 직후에는 다트강과 다트머스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 이후로는 작은 마을과 산의 모습을 계속해서 이어다. 그리고 이 기차는 약 30분 정도를 달려 패잉턴역에 도착한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올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증기기관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그 기차가 도착하는 마을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서의 잠깐 동안의 나들이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패잉턴역을 나선 우리는 마을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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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잉턴은 데본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로, 콘월이나 데본의 다른 바닷가 마을처럼 영국 사람들이 휴가지로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패잉턴의 분위기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활기가 넘쳤고, 사람도 많았다. 킹스웨어처럼 작은 마을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다트머스보다도 커보였다. 중심 거리를 지나치자 바로 바닷가가 나왔다. 보통 바닷가에 가면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서는 해변이 오히려 먼저 눈에 띄었다. 보통 모래사장보다 색깔이 훨씬 진해서 황토색처럼 보였고, 해변도 꽤 넓었다. 넓은 모래사장을 둘러보고 고개를 들면 비로소 패잉턴의 바다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 마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패잉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구경했다. 패키지 표를 살 때 증기기관차 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패잉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우리는 그냥 30분 정도만 머물 생각으로 시간을 정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마을이 꽤 컸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마을을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차역으로 돌아가서 킹스웨어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바꿔볼까도 고민했었는데, 돌아가서 일정도 있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 채 패잉턴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쉽긴 했지만, 패잉턴이라는 마을은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곳이었다. 아쉬움 때문일까, 다음에 영국을 다시 올 때는 데본 지역을 본격적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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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차를 타고 다시 킹스웨어로 돌아온 후, 다시 배를 타고 다트머스로 건너왔다. 그럼에도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패키지에 다트강 유람선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트머스로 돌아오자마자 그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다트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강 하류에 있는 다트머스성을 멀리서 관람하는 것으로 끝난다. 상류로 올라갈 때는 양 옆으로 펼쳐지는 자연을 감상했고, 하류에서는 웅장한 다트머스성과 강에서 바라보는 다트머스와 킹스웨어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두 마을은 느낌이 달랐다. 다트머스가 조금 더 고즈넉하고 편안하다면, 킹스웨어는 규모는 작지만 조금 더 색감이 넘치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마을을 뒤로하고 강 상류로 올라가면 자연 속에 파묻힌 집들이 이따금씩 보이는데, 그 풍경이 하나의 목가적인 감성 가득한 그림을 보는 듯했다. 그 중 하나의 집이 유독 유명한데, 바로 영국의 너무도 유명한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가 머물렀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배에서 바라보면 너무 멀리 보여서 사진도 잘 못 찍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배는 방향을 돌려 다시 강 하류로 내려간다. 두 마을을 지나 강 하구에 다다르면 과거에 다트머스와 킹스웨어를 엄호했을 다트머스성이 보인다. 배는 성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채 멀리서 성을 보여주고 다트머스 마을로 돌아다. 나와 짝꿍은 다양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즐겼다. 배 위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소중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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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트머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되어 갔던 곳이었는데, 영국 어느 바닷가 마을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흥미로웠던 곳이었다. 혹시 영국 남부를 여행한다면, 조금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다트머스를 꼭 방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와 짝꿍도 이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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