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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Apr 09. 2024

매미 소리

엄마작가

 매미 소리가 들리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여름 햇살만큼 매미가 따갑게 울던 날, 나는 신작로에서 작고 동글동글한 돌을 줍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돌멩이로 짜개 받기라는 놀이를 자주 했다. 밤톨 같은 자갈돌을 많이 주울수록 놀이는 오래 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빈 책가방에 돌멩이가 가득 찰 때까지 찻길에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버스가 먼지바람을 날려도 묵묵히 돌을 주웠다. 작은 손으로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돌멩이를 열심히 찾았다. 들판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만 바람 없는 길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소리를 친구 삼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름 햇살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지금도 매미 소리가 들리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때 그 신작로와 자갈돌이 생각난다. 

  

 각인이라는 말이 있다. 머릿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각인되기 위해서는 자극이 강하거나 반복적으로 자주 접해야만 한다. 매일 가지고 놀았던 짜개 받기가 내겐 그랬다. 오른손 애지 손톱 끝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운동선수가 훈련하듯 나는 방학 내내 짜개 받기를 연습했다. 왼손잡이라서 오른손으로 짜개 받기를 하는 게 어설픈 나는 실전에서 잘하기 위해서 연습을 하고 또 했다.

  

 하루는 연습으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친구네로 찾아갔다. 어설픈 내가 덤벼도 될 정도로 만만한 친구였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대문을 나섰다. 친구에게 연습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일찍 갔다. 혹시 친구한테 짜개가 없을까 봐, 신작로에서 주운 돌을 챙겨갔다. 돌멩이를 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기선제압을 했다. 손톱이 닳도록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친구는 짜개 받기를 몇 번 해보지도 못하고 아끼던 돌멩이를 내놓아야 했다. 그때부터 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표정을 봤다면 좋았을 것을. 신이 난 나는 친구의 표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적거리던 친구를 몰아붙이지만 않았어도 그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어코 나는 이겨서 친구의 짜개 돌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친구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흥얼거리며 혼자 짜개 받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찾아와서 잠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귀찮은 듯이 나가기 싫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오빠를 데리고 왔다며 따라 나오라고 힘을 줬다. 친구의 오빠는 우리처럼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나이도 많고 잘난척하는 무서운 오빠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친구는 자기 오빠 옆에서 씩씩거렸고 나는 그 오빠 앞에서 울먹거렸다.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자기 동생 짜개 돌을 돌려주라며 내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마당에 있던 짜개 돌을 챙긴 친구는 무서운 오빠와 함께 사라졌다. 

  

 억울함만 남은 나는 언니를 기다렸다. 내 바로 위의 언니는 싸움을 잘했다. 언니가 집에 오자마자 모든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그 집에 간 언니는 주먹 한번 쓰지 않고 말로 그 오빠를 혼내줬다. 짜개 돌 챙기라는 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을 통에 담았다. 언니의 말처럼 승패가 끝난 일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한 것이 맞다. 잘난척하길 좋아하던 오빠를 한 방 먹인 언니가 그날따라 더 멋져 보였다.

  

 뜨거운 열기가 사라질 때쯤 골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서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계집애들이 와서 아들 기죽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화가 났던 모양이다. 애들 싸움이 결국 어른 싸움이 되고 말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모든 말이 무기가 된다. 상대방의 약점은 더 그렇다. 옛날에 있었던 일도 어제 일처럼 재생된다. 그래서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치해진다. 어른들 싸움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날 저녁, 매미 울음소리 같은 두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을 휘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어머니와 친구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여자들이다. 아들을 한 명 더 낳겠다고 딸만 줄줄이 낳은 어머니나 배다른 자식이 있는 친구 어머니는 남들이 모를 사연을 품고 산 사람들이다. 그 마음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이란 고약하고 질긴 것. 그때의 어머니들보다 더 나이를 먹어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머니의 삶이란 그림자를 품고 사는 나무 같다는 것을. 

  

 나른한 오후, 매미 소리가 불러온 어느 한 시절의 풍경과 어머니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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