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작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인간관계에 비유되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말은 ‘신체’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하루는 눈을 떴는데 오른쪽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웅웅’ 거리는 환풍기 소리 같기도 하고 미세한 진동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반복될수록 머리까지 띵한 이명 증상이었다. 임신하고 난 뒤 ‘이관개방증’과 같이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린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이번 증상도 단순히 임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이런 것은 잠시 누워 쉬면 괜찮아졌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증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 귀로 듣는 소리는 작고 기분 나쁜 기계음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합창단에 출근해 노래하는데도 소리가 전처럼 들리지 않고 내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노래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증상이 계속되자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을 열어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그중 ‘돌발성 난청,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 어려움.’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글을 읽어보니 증상이 나와 꽤 비슷했다. 그렇다면 내겐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황급히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조급한 내 마음과 달리 코로나의 재유행 때문인지 병원은 말 그대로 환자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귀는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신체 부위다. 어느 신체가 안 그렇겠냐마는 노래와 작사를 하는 나에게 귀는 말 그대로 밥벌이 수단이다. 그런 귀의 노고를 내가 너무 신경 써주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파업 시위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부터 성악을 전공했던 나는 목을 끔찍하게도 아꼈다. 조금이라도 목이 따갑거나 목소리가 이상하다 싶으면 눈뜨자마자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누가 보면 엄살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내 목, 성대를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했다. 평소에도 목에 좋다는 영양제며 음식들을 챙겨 먹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목은 언제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신체였다. 그런데 작사까지 하며 돈을 벌게 된 지금으로서는 목보다 중요한 것이 귀가 아닐까. 들리지 않으면 노래할 수도 없고 가사를 쓸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귀는 늘 건강한 것에 익숙해서 나는 소중함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작사 작업량이 늘면서 온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살았다. 이어폰이 귀에 강한 자극을 준다는 것을 알지만 작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 귀가 아파 병원을 가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귀를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미안해진다. 귀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간이 이렇게도 많았다니, 귀가 서운할 법도 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던 찰나,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청력검사 결과 예상대로 ‘저음역대 돌발성 난청’이 맞았다. 다행인 것은 상태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문제인 것은 내가 현재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보통 돌발성 난청은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인데 임산부인 나는 약 복용이 힘들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께 연락드려 물어보았지만 약물 복용은 불가하다는 답변이 왔다. 하는 수 없이 고막에 직접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상태가 심하지 않으니 고막 주사를 꾸준히 맞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사 공포증이 있는 나지만 청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내 직업에 직격타를 맞는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러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사를 맞았다. 귀를 타고 목으로 흘러들어오는 약물의 맛이 씁쓸했다. 의사 선생님은 절대로 삼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쓴맛을 입안 가득 머금은 채 있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씁쓸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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