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무너진 거야? 왜?”
하이델베르크라는 독일 서남쪽 소도시에서 성을 구경하고 있었다. 앞에서 볼 때만 해도 멀쩡한 성이었는데 뒤에서 보니 한쪽이 무너져 내려있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무너진 성을 한참을 바라봤다. 옛 게르만족의 건축 양식을 공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성의 단면을 보게 되긴 했지만, 이들은 왜 성을 무너진 채로 그대로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자리를 이동하려는데, 무너진 성벽 다른 편에 세워둔 초록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냉큼 뛰어가 글을 읽어보았다.
"Franzoisch(프랑스의)... 프랑스? “
의미를 알 수 없던 독일어 속에서 아는 단어를 찾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랬더니 짝꿍이 곁에 스르륵 다가와 표지판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아, 과거 전쟁 때 프랑스군이 폭격해서 이렇게 된 거래! “
“그렇군, 그렇다고 복원은 안 하고 표지판 하나 달랑 세워 둔 거야? “
나는 무너진 성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것이 유럽사람들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이란 말이지... ’
역사를 알고 다시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려니, 바로 옆에 있던 표지판은 나에게 '프랑스 애들이 그랬어. 혼내줘' 라며 고자질을 하는 것 같았다.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마음속 한편이 뜨거워졌다. 우리도 이런 아픈 역사가 있는데.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던 장면을 TV로 보던 것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 난 유치원생이었는데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물론 그때 그 결정을 내린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을 기괴하게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조선총독부 건물 외에도 우리가 없앤 역사적 증거들이 제법 많다.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자꾸 없애기 바빠서 일본이 역사를 왜곡할 빌미를 주는 게 아닐까?
상처가 났을 때, 누군가는 흉 없이 예쁘게 아물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흉이 지더라도 대충 놔두기도 한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확실한 한 가지는 독일인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이는 몇백 년이 지나 관광요소이자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아픔을 승화시켜 무기로 사용한 사람이 더 있다. 바로 교과서에 실린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쓰신 고정욱 작가님과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을 제정한 우리 아빠이다. 두 분 다 어릴 적 얻은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애'를 인생의 장애물로 여기기보다는 이를 이용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고,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 멋진 본보기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나는 내 마음속 상처들을 안 보이게 여러 헝겊으로 덮어왔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 들여다보면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서. 그렇게 외면한 많은 좌절과 실패가 내 안에도 가득하다. 만일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내었다면, 그래서 쓰라리고 아픈 과거를 정면돌파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다. 무너진 성벽을 똑바로 마주하기에 참 좋은 날이다.
난 역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