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혁H Aug 29. 2021

작년의 너에게 보내는 편지

21.07.07.

아마 그 날은 되게 축축하고 흐렸던 것 같아
자욱히 깔린 구름처럼 설렘과 걱정이 가득했었어
험준한 산악 가운데 비좁게 틈을 낸 듯한 공간이
그저 무척 생경하고 압도적인 첫 인상이었을 거야

항상 그래왔듯이 적응의 발걸음은 힘들기만 할텐데
윗사람들을 대하면서 애를 먹고 주눅들기도 하겠지
거대함의 이름들로 사소한 음정은 지워지기 마련이니
별 수 없이 흐름을 따라가며 속앓이만 늘게 될거야

짜릿했던 첫 휴가 이후 먹먹한 격리 생활 동안엔
산자락 주위 만연한 단풍에 젖은 감탄도 할테고
난생 처음 경험한 춥디 추운 숫자들에 기겁하며
쌓이는 눈의 끔찍한 면모를 온몸으로 발견하겠지

변덕스런 날씨에 마음 역시 왔다갔다 움직이던데
간신히 얻은 쉼의 품이 여간 따수운게 아니더라고
다시금 살결에 맹렬한 자외선이 꿉꿉하게 닿을 땐
더위에 숨이 턱 막히듯 시간도 더디게 느껴질거야



돌고돌아 계절은 한 바퀴 되풀이 되었지만
솔직히 이 집단에서 살아가는 일은 아직도 어려워
떠나가는 이들을 보내면서 부러움을 갖기도 하고
셀 수 없이 복잡한 상황과 사정을 만나게 될거야

너에게 남은 나날들이 더 험난하고 지루할 걸 알아
때로는 왜 이래야 하나 싶어 크게 소리지르고 싶고
언제부턴가 욕도 부쩍 늘고 울분마저 거세지고 말걸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결국 훌쩍 지나가더라
너무 큰 기대만 말고 마음을 겸허히 놓고 생각해

혹여 자괴감이 일찍이 차오른대도 잠식할 필요 없어
본 모습 훼손 말고 조심조심 적절함을 유지하기만 해

매거진의 이전글 피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