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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만 Aug 10. 2021

흔한 고민 #1 사회에 내던져졌어요

3월, 우리 부서에 인턴이 들어왔다.

그녀는 시에서 주관하는 청년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지하철과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리는 통근거리. 첫날 그녀는 '올해 졸업을 하자마자 인턴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해보겠다' 말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미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마스크 때문에 그에 대한 화답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겠다 싶어 눈웃음을 '잔뜩' 지어 감사를 표했다. 


점심 시간. 나는 그녀에게 직원 식당 안내 차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을 했다. 


사회 생활을 처음한다는 그녀에게 굳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의지는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식당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닥친 약간의 어색함, 걸음 속도를 나에게 맞춰 걷는 듯한 인턴의 긴장감을 얼른 타파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는지 이런 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역시 직장 생활 이래 사람을 맞이하기는 처음이다.


나는 누군가와의 첫만남때마다 으레 들었던 '어디서 왔어요?', '형제가 어떻게 되요?' 따위의 호구조사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다 생각해 결코 안할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을,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분명 잊어버리고 나중에 또 물어보겠지...'


굳이 점심 시간 때마저 일 얘기는 하지 말자는 주의지만 그렇다 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도 어렵기에, 동료간 이야기 소재는 결국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적절히 아우른,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며 대화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 큰 그 무엇인게 적당하다. 그렇게 생각해 낸 질문.

"어떻게 인턴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자기소개서 지원동기를 적고 있는 사람의 생각주머니에 '돈인데요' 라고 쓰여진 짤을 본 적이 있다. 역시나 질문을 던지고 '따분하기 그지없다' 라고 자책하는 찰나, 인턴은 입에 가져가려던 숟가락을 후다닥 내려놓고 대답을 했다.

"학교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어요. 조교 선생님도 문자를 보내주셨고."

"아......!"


인턴은 '지원동기'가 아닌 '지원경로'를 대답해주었다.


나는 짧지만 확신에 찾 인턴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냥 조용히, 편하게 밥 먹게 하기'를 택했다. 내가 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려다가는 '무리수'를 던질 것 같아 나름대로 브레이크를 택한 것이다.


잠시 후 인턴은 말을 이어나갔다.

"4학년 1학기까지 모든 수업을 다 듣고 교양 한두과목만 남겨둔 채 1년 반을 휴학했어요. 난 아무것도 준비가 안됬는데 그냥 뭔가 사회에 내던져지는 것 같아서 졸업이 무서워서요."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인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죠..."


나는 인턴과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녀의 절실함은 백프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부디 나의 반응이 '영혼'없어 보이지 않길 간절히 기원했다. 어쩌면 그녀는 휴학을 하기 전부터 대학 생활에 느꼈던 막연함과 불확실함을 '무서워서요'라고 함축했겠다 싶었다.


우리는 누군가 과거의 어두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그 끝은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으며 지금은 괜찮기 때문에 그 어두움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그녀가 1년 반의 휴학을 마치고 지금의 인턴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진로를 찾았을거란 기대가 자연스레 다음 질문을 뇌회로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진로가 정해졌나요?"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렇다 해서 휴학기간 동안 찾은 것도 아니예요. 지금도 그렇고요. 어찌됬건 이렇게 우연히 지원하게 된건데 최종 합격하게 됬을 때 부모님이 좋아하셨어요."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나의 행복의 기준을 들이댔던, 그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한 내가.

인턴은 비록 자신의 진로는 여전히 탐색 중이지만 부모님께 기쁨을 주었다는 것에 큰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턴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으며, 그 에너지는 듣는 나에게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서워했고 지금도 무서울지도 모르는 세상에 서서히 자신만의 단단한 뿌리를 내딛는 중이었다.


"축하해요."


나는 진심을 다해 축하를 보냈다.

인턴은 쑥스러운 듯 '네'라고 호탕하게 웃고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입안 가득 넣었다.


엄마 미소를 짓는 게 이런 걸까.

우리는 자연스레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저는 풀때기를 싫어해요."

"아, 저는 내장류..."

"맞아요. 그건 좀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우리는 공통점-커피를 즐기지 않는 것, 해산물보다 육식을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며 서로에게 격한 공감을 했다.


그렇게 인턴과의 첫 점심시간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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