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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애리 Nov 30. 2020

엄마들은 왜 화장품을 사지 않는 것일까?

1.엄마도 여자



젊은 시절, 엄마는 세상 멋쟁이였다.

우연히 사진첩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를 만났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린 이십 대 후반의 엄마.

그 시대 유행했을 법한 사자머리에 예쁜 투피스, 게다가 굽 있는 구두까지! 그때는 화장도 하고 참 예뻤는데...

결혼 후 엄마의 옷장과 화장대는 단출하다 못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들은 왜 화장품을 사지 않는 것일까.

어린 시절, 엄마 화장대 위에는 별 게 없었다.

기초화장품과 립스틱 그리고 케이스도 없는 연보라색 샘플 아이섀도가 전부였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화장대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처음 삿포로로 해외여행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에 들린 적이 있었다. 화장품이라고는 로드샵에서 기초화장품 밖에 사본 적 없는 내가 면세점, 게다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품 매장에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멀찍이 서서 다른 손님들이 손등에 색깔을 확인하는 모습을 슬쩍 훔쳐보면서 자주 사본 척 따라 했던 것 같다. 손등이 모자라 팔등에까지 칠해보고서야 나는 겨우 두 가지 색을 고를 수 있었다.

‘그래도 비싼 건데, 엄마한테 어울리면 좋겠다.’

집에 돌아왔을 때, 온 가족은 나보다 캐리어를 더 반겼다. 엄마에게 립스틱을 건네자 놀란 듯했다.  

“맛있는 거나 사 먹지 엄마 껀 왜 사 왔어. 이거 비싼 거잖아.”

“어차피 환불도 못 해. 일본 공항 면세점에서 샀거든. 맘에 들지 않음 다른 사람 주던가.”

“맘에 안 들긴. 예쁘다. 색깔 잘 골랐네. 잘 쓸게.”   

새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그게 나의 첫 명품 쇼핑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화장대를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엄마, 이거 유통기한 넘은 거 아니야?”

“얼마 안 지나서 괜찮아. 버리긴 아깝잖아. 누가 본다고, 엄마 얼굴에 아무거나 바르면 어때.”

“당장 버려. 나 화낼 거야. 왜 유통기한 넘은걸 써.”

나는 립스틱처럼 명품 화장품은 아니지만 엄마들이 쓴다는 브랜드의 기초세트와 크림까지 사서 엄마의 화장대를 채웠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샘플이 문제였다. 새 화장품의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엄마는 샘플만 모아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유통기한이 괜히 있겠는가. 고작 해야 한 개뿐인 얼굴에 치덕치덕 바른다면 두 달이면 없어질 용량이거늘.  


“안 쓴다는 게 아니라 샘플 먼저 다 쓰고, 네가 사준 건 내년에 쓰려고 했지.”

“엄마, 아끼면 똥 된다고! 다 쓰면 또 사줄 테니까 제발 써.”

“네 월급 뻔히 다 아는데, 작가가 벌면 얼마나 벌겠어. 딸이 뼈 빠지게 번 돈으로 사준 건데 어떻게 막 쓰냐. 또 사지 마. 엄마가 필요하면 말할게.”        

그랬다. 엄마는 내가 사준 화장품이 아까워 장롱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것이다. 엄마는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 게 아니라 마음에 바르고 계셨다.    

      


그 날 이후, 엄마가 집에 없을 때면 남동생에게 전화해 몰래 화장품을 확인하곤 했다.

“엄마 집에 없지? 엄마 화장대 위에 화장품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봐.”

“잠깐만 큰누나. 스킨은 1/3 남았고 크림은 거의 다 쓴 것 같아.”

“립스틱은? 끝까지 올려봐.”

“엄지손톱만큼 남았어.”

스파이의 대답에 나는 어김없이 화장품을 주문했다.            


딸들은 모른다. 엄마의 마음을.

엄마들은 왜 굳이 딸들의 화장대 위에서 먼지 쌓인 화장품과 피부 톤과 맞지 않는 파운데이션에 욕심을 냈는지.

왜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1년이나 지난 마스크 팩이 가득하고 화장대 위에는 이름조차 지워진 빈 크림 통뿐이었는지...    

 


한 번은 엄마와 함께 네일아트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타인에게 손톱 정리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며 엄마는 쑥스러워했다.

“손이 많이 미운데 이런 거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따님이랑 같이 자주 오세요. 제가 예쁜 손 만들어 드릴게요.”    

엄마는 수 십 가지 컬러판을 보며 꽤나 오랫동안 고심했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색깔이 많아서 엄마는 못 고르겠다. 네가 많이 해봤으니까 엄마 손에 잘 어울리는 걸로 골라 줘.”


미처 몰랐다. 평소 나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관리를 해왔으니 색깔이나 디자인 고르는 일 어려울 게 없었다. 이번에 빨강을 골랐으면 다음엔 어두운 색깔로 하면 그만인 걸. 그런데 엄마에게는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매니큐어 색깔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설레어했다. 일주일이면 지워질 매니큐어일 뿐인데, 행복해하는 엄마의 표정에 내심 같이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왜 손에 비싼 돈 쓰냐고 혼날 줄 알았다.)

“예쁘다. 오늘은 설거지하면 안 되겠지?”

“아예 세수도 하지 말고, 샤워도 하지 말지. 그럼 안 지워지고 더 오래갈걸?”

“그럴까?”              


엄마도 여자다.

나의 엄마이기 전에 예쁜 걸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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