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며, 단편적인 행복을 통해 살아가는 것
궁극의 행복을 꿈꾸며 살지는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며, 단편적인 행복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삶의 모토를 가지고 있어요. 또한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가끔 느끼는 그 횟수가 오히려 ‘행복함’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켜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궁극의 행복 상태’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상태가 있다해도 그 상태에 이르면, 인생은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죠. 행복감이라는 감정조차 매일 당연하게 존재한다면, 더 이상 ‘행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것이 ‘행복의 기원’에서 언급되었던 ‘적응’ 상태와 같았습니다.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을 거창한 목표가 아닌,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이며, 이 감정은 단순히 지속적인 상태라기보다는 순간적인 반응에 가깝다고 합니다. 여기서 새우깡을 위해 서핑할 수 있게 된 개의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에게는 사실 서핑은 그리 즐겁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행동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개에게는, 서핑보드에 올랐을 때 주어지는 ‘새우깡’은 무엇보다 중요한 쾌락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적용해보자면, 무의식 중에 늘상 추구하고 있는 ‘행복감’이 바로 새우깡인 것이죠.
또한 행복을 ‘따뜻한 샤워’에 비유한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불행을 줄이는 것은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같아 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이 더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찬물 꼭지와 비슷하여 물을 더 차게, 삶을 덜 불편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끝내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행복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행복한 것이다’, ‘~회사에 취직하면 행복한 것이다’, ‘~벌면 행복한 것이다’ 등등. 저는 이러한 사회적 기준에 대해 사실 아무 것도 해당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궁금하긴 합니다. 분명 그 상태가 된 처음은 행복감이 강렬할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윽고 적응 상태가 되면, 그 행복감이 ‘지속적’이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염세적으로 살 필요는 없겠죠. 다만 무조건적인 행복의 만족 상태는 어차피 없다는 것을 인지하며 추구하면 좋겠습니다.
저자인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의 자라온 생애와 현 시점을 돌아보았어요. 누구나 동의하는 행복한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한 삶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잔 행복’을 쉽게 느끼는 성격인 것 같아요. 저 또한 현재는 목적 지향형이고,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시무룩합니다. 그럼에도 불행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그것이고, 저의 잔 행복들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행복의 기원을 읽으며 행복이란 감정의 실체에 대해 쫓을 수 있었습니다. ‘지피지기’인 셈이죠. 책을 통해 그 실체를 진지하게 탐구해보니 더더욱 쉽게 불행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어요. 행복이란 충분히 생존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감의 지속 시간이 짧은 것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그 때문에 또 다음 행복을 느끼기 위해 또 하루를 생존합니다.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