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불안장애 썰에는 우울 이야기가 빠지기는 힘든걸까?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이유없는 우울감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때도 아마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되짚어보지 않아서 현재는 바닥으로 깊게 가라앉았던 사건과 정황은 사라지고 그 때의 감정만 남아있다. 언제가 됐건 명확한 이유가 없는 우울은 참 다루기 까다롭다. 이유를 쉽게 규명할 수 있어진 것도,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메타분석이 이루어진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난 이후의 일이다. 최근에는 일부러라도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전혀 근거 없는 불쾌함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속이다가 결국은 속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빠른 시간 안에 호전되기도 하는 경험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는 것을 공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우울감은 당시의 단편적인 감정만을 설명하는 단어다. 우울증은 이와 같은 우울감이 오래 지속되면 이것이 하나의 증상과 성향으로 변해서 그 사람을 형성하는 단어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예전에 정말 찐 우울증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냥 삶이 단조롭고 외로운 감정. 그리고 혼자 있으면 적막한 기분. 딱히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끝내고 싶지는 않은, 막상 태어났으니 사는 인생. 이걸 어떻게 하루하루 떼우나 이런 기분이었다면, 우울증은 사실 외롭고 슬픈 감정보다는 무기력에 가깝다. 생각을 하는 것이 힘든데 또 생각을 멈출수는 없어서 계속 안좋은 생각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안좋은 생각은 더 나쁜 최악의 생각을 부른다. 최악이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계속 더더욱 더 최악을 상상한다. 좋은 생각, 생산적인 생각을 할 이유도 목적도 모르겠고 하기가 싫어진다.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먹고 훌륭한 음악을 듣고 멋진 영화를 감상하고. 이거 좋은거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 게다가 이런것들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쓰면 당연히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심지어 나는 이런 것들을 하면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냥 하기가 싫다는 거다.
이걸 해서 뭐해,
내 기분 좋아지게 만들어서 뭐해
그래서 뭘 이룰 수 있어?
뭐 세계평화라도 이룰거야?
억만장자가 될거야
어쩔 거야?
언제까지 나처럼 예민한 새끼
기분 맞춰주며 살아야 하지?
내가 나지만 진짜 지겹다.
이런 까칠한 생각만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런 무기력은 원대한 목표를 없애고(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하루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람도 일도 그 어떤것도 다 재미없고 구리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인생노잼시기라고도 하는 것 같더라.
아무튼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도 만날 일을 스스로 없애고 밖으로 나갈 일이 줄어드니 잘 씻지 않게 된다. 정말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그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어서 알쏭달쏭한 일인데 우울증이 생기거나 도질 때 먼저 하는 일은 “안 씻기”였다. 씻지 않으니 침대에서 나오질 않고 그렇게 되니 계속 졸립다. 정말 양질의 수면 이딴거가 당연히 절대 될 리 없지만 몸이 휴식을 취한다고 착각하고 침대와 거의 붙어있다. 그리고 막상 뇌는 하는 일이 없는데 생산적이고 수준 높은 업무는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짧은 기사나 자극적인 짧은 영상, 등으로 시간을 떼우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상황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이 일반적인 수순이 된다. 이 모든 일이 너 때문에 혹은 이거 때문에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원인이 내가 아니니 당연히 내가 제거할 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 같은 일이 되어버린다. 이에 대해 능동적으로 맞설 의지도 힘도 차차 사라져있었다. 동시에 나의 우울과 불안 그리고 무기력은 아름다운 삼합이 되어 나를 집어삼킨다. 언제 침대에서 일어날 지도 모르고 또 일어날 의지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넘기게 되면 계절이,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보니 집 근처 담장에 장미가 피었다가 다시 또 엄청 더워서 잠깐 헉헉댔나 싶다가 갑자기 패딩을 꺼내야 하는 계절이 되어있다.
시간은 도저히 내 편이 되어주질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혼자서 해외여행을 꽤 다녔다. 모스크바,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엘에이 등. 비행기도 당연히 여러 번 탔었는데 그때도 불안장애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나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던 때였다. 여행을 가면 늘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겼고 동선은 적어도 한 두 번은 너무 당연하게 뒤틀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이렇게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못 견디는 나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일환 중 하나였기도 하다. 여행 초반에는 어디든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는 전혀 계획을 세우지 않기도 했다. 엘에이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호스트가 오늘 계획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계획이 없다고 하자 “No plans are the best plans” 라고 웃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입시지옥을 견딘 코리안 걸의 썩은 속내는 모르고 빛나는 태양과 청명한 날씨로 축복받은 캘리보이에게는 “No plans” 라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그때부터였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 날 아침에 새로 정한 목적지에 가면서 헤매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고 그 과정에서도 즐기는 것을 연습했다. 여행을 가면 원래 계획에 없었던 새로운 길도 생소하고 예쁘며 그곳에서도 새로운 즐거운 타인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는 환승하는 중 붉은광장에 다녀갔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갔는데 엉뚱한 공항에 가서 몇 시간을 헤매고 결국 한국돈으로 거의 30만원돈을 주고 (차로 2-3시간) 맞는 공항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지만 택시에서 보이는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구름이 아름다우면서도 너무 보기 싫었다. 그 전날까지도 즐거운 여행이었다가 그 다음날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됐고 그것이 틀어지자 격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택시에서 그냥 한국까지 돌아가기 귀찮으니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논리가 조잡하기 그지없다). 그 대신 택시 아저씨(나보다 어렸지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차차 여유를 찾았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서 울기만 했는데 나중에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과 인종만 다르지 사람 사는 것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도 알고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비록 나에게서 돈은 뜯어갔어도 나를 안전하게 공항으로 데려다줬다. 보딩시간은 미친듯이 뛰어서 정말 1-2분 직전에 올라탔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적어도 여행 중에는 계획에서 틀어지는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비행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이 완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나 애착이 지금보다 훨씬 덜해서 아마 마음을 그냥 놓은 것에 더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그냥 죽으면 죽는거고 추락은 추락이니 이제까지 잘 살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어차피 나 혼자 죽는 거 아니니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비행기를 그렇게 잘 탔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내가 죽으면 일단 고통의 주체인 나는 없어서 그 부분은 논외로 두고라도 남은 사람들, 뭐 반려인이야 성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내가 없이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아기를 생각하면 이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 숨이 막히고 목이 메었다. 그래서 한때 괜찮아졌었던 것 같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더 심해졌고 이것이 아기에게도 은연중에 정해지는 것 같아서 더더욱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물려받은 가능성 높은 유전자를 제공하는 것도 모지라 유전자에 불안의 불씨를 지피는 것 까지도 내가 하게 되다니. 두 번 가해자가 될 수는 없었다. 내 대에서 질긴 고생(괴로울 고, 인생 생)을 끊어내는 것은 실패했으니 어찌됐건 내가 이 핏덩이의 삶을 책임져야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덜 괴롭게 살도록 만들어야 할 평생의 무거운 장대한 미션이 생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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