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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Oct 22. 2021

가뭄의 단비 같던 책과 사람들



 마음이 너무 힘들때는 그 어떤 글자도 집중할 수 없다. 자극적이고 30초 미만의 짧은 의미없는 웃긴 영상이나 잠깐 보다 이내 또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 집중력이라고 할 것을 많이 상실해버렸다. 책은 커녕 한 문장을 읽어도 그 내용이 온전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서사가 아니면 몰입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상담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도대체가 이렇게 힘든 이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도저히 혼자서는 책이 읽히지 않아 지역 커뮤니티에서 하는 독서모임도 나갔다. 사실 두 번중 한번은 빠져서 제대로 나갔다고 할 수도 없다. 나가면 책 이야기는 잠깐만 하다가 깔때기처럼 마지막엔 하소연만 하고 왔다. 생면부지의 독서모임 선배맘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따뜻하게 받아줬다. 지나면 괜찮을거라고 해서 도대체 언제 괜찮아지냐고 애처럼 징징대기도 했다. 그래도 그 어느 누구도 당황하거나 귀찮아 하는 기색 없이 점점 나아질거라고 응원해줬다. 내가 어떤 일을 했고 무슨 길을 지나왔는지 묻지도 관심도 없고 그저  팔자로 내려간 내 눈썹만 보고 나라는 사람이 힘없이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인류애를 충전시켜줬다.


 어느 날 독서 모임 리더분이 연달아 모임을 빠지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을 걸어 참석을 독려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책을 읽을 자신이 없어서) 대화를 하다 보니 같은 대학 선배였다. 흑백으로 블러처리된 내 대학시절이 갑자기 초점이 맞아지며 컬러가 색색이 입혀졌다. 대학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머나먼 타지에서 물리적인 추억을 따로 또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힘든 날 중에서도 그나마 덜 힘든 날이 있다. 갑자기 선물받은 핫한 한정판 케이크를 입에 넣는 순간처럼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모임에서 선정된 도서 중 특별히 집중이 잘 되는 책이 있었다. 단숨에 끝냈다. 얼마만의 종이책 완독인가 싶었다. 손에 착착 넘어가는 종이의 질감까지 반가웠다. 이때다 싶어 사놓은 다른 책들을 서둘러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사람들의 표정보다 일관된 논조를 가지고 쓰여진 책은 필요 이상의 감정소모가 없었다. 사람보다 책이 쉬웠다. 드디어 내가 내 눈치를 살피는 데 노하우를 습득한 기분이었다.















 처음  권을 끝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뒤로는 점점 완독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작은 성취는  조금   성취를 불러일으켰다. 우울과 불안이 서로 견고하게 손을 잡고 틈만나면 나를 아래로 끌어냈다면 독서와 상담 선생님 그리고 그 모임멤버들의 정서적인 지지는 어느  못되고  집요한  둘이  견고하게 엮여있는 틈을 노리고 나를 안고  밝고 따뜻한 곳으로 데려갔다. 밝고 따뜻한 곳을 보니 또다시 어둡고 축축한 연못에 빠지기 싫어졌다. 그러다가 탄력을 받으면 마치  많이 압박됐다  높게 튀어오르는 용수철이 되었다. 우울과 불안에 대해 덮어놓고 배척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잠시 얼려두고 그것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할 준비가 되는 어느 , 책의 내용은 거짓말처럼  흡수 되었다.



 지나고 보면 그 모임에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의 조건없는 응원, 한 권을 끝낼 수 있는 추진력 그리고 책 속의 인물들과 안정적인 대화를 모두 이루어낼 수 있었다.

 







 다음은 내 손을 이끌고 잠깐이나마 밝은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데 일등공신을 해준 책들이다.














1. 우울할땐 뇌과학



 우울의 실체를 뇌 과학으로 깔끔하게 풀어준 책이다. 우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의지도 마음도 없을 때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갈 원동력이 되어줬다. 우울이 심할때는 단 한 문장도 끝까지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한 두 문단부터 시작할 수 있었고 점점 속도가 붙었다. 이 책에 점점 공감하며 빠져들면서 내 우울과 무기력에 대한 기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고 왜 타파해야하는지 도움닫기가 되었다. 불안장애에 대한 생각 역시 이 책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불안과 우울은 이웃사촌처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 책을 시작함으로써 뒤에 나올 다른 책들을 찾아볼 추진력을 얻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기력하고 삶이 재미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거나 그 수준을 넘어서 왜 내가 숨을 쉬어야 하고 지겨운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원래 내 책이 있었는데 인친이었던 분에게 그냥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한 권을 더 구매했다. 이 책은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의지가 막 생긴 분들에게 더없이 큰 힘이 될 것이다.




2. 당신의 뇌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앞의 책에서 추진력은 겨우 얻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고쳐내야 하는지 막막할 때 더욱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전두엽을 일깨워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게으름이라는 것은 두려움, 불안, 완벽주의, 자신감 결여 등의 복합적인 감정의 퍼즐의 완성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속임수를 어떻게 제거하고 목표를 세워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크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이 얼마나 목표 설정에 장애를 주는지, 그리고 그 장애는 어떻게 그 다음 계획을 흐트러 놓는지에 대한 과정이 상세하고 다정하게 기록되어 있다.




3.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여성이 임신과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뗄 수 없는 숙명인 집안일과 육아에 대해서 다소 안으로 굽은 팔 모양으로 기술했다. 객관적이지는 않을 수 있으나 우울함과 무기력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본인의 시간과 기력을 가사노동과 육아에 퍼붓고 있다는 생각을 덤덤히 바꿔주었다. 다소 가벼워보이는  책 제목과 달리 내용은 훨씬 깊이가 있고 무겁다. 자본론까지 근거로 들어 나의 가사노동이 폄하되는 과정을 심도있게 풀어준 책이다. 아마도 많은 휴직을 앞둔 예비맘 혹은 육아 때문에 현재 잠시 직장을 쉬고 있는 엄마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도 업무상황이 달라진 많은 분들게 객관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부부가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4.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딱한 순간을 넘어선 분들게 한템포 쉬어갈 수 있게 해준 뇌 과학 책이다. 처음의 책은 우울과 불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책은 전반적으로 본인의 사고과정의 원인을 되짚어준다. 오류도 스스로 짚어질 수 있는 객관성을 일깨워주며 순간 순간의 감정적인 판단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기도 한다. 많이 힘든 고비를 넘은 후에 스스로 더 깊게 파고들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5. 나는 내가 아픈줄도 모르고

 최근에 발간된 책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올드한 면이 좋았다. 일본인 작가가 쓴 탓인지 서양의 뇌 과학자나 우리나라의 최근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어찌보면 운명론적인 내용이 많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우울과 불안의 초기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많은 난관을 넘어서 어떠한 말도 달게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본인의 기질을 인정할 마음이 있다면 겸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만할 책이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기질과 습관을 고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지만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 어루만져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불안장애를 고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나 자신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 이후에 어느정도는 확실히 편해진 부분이 있다.




6.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앞의 책들은 대부분 학설과 객관적으로 밝혀진 과학적인 사실, 그리고 분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어느 책보다 확실한 사례와 해결책을 가져오는 것이 장점이다. 저자도 정신과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그 어떤 것보다 정확하게 원인과 결과, 그리고 방법을 일러준다. 직접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은 것은 아니지만 불안증상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불쾌감이 내가 너무 괴팍해서 느끼는 것이 아님을 묵묵하게 달래준다. 내가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선택한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뜯어 고쳐야 할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다.















이미지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82%AC%EC%A7%84/%EB%B9%84-%EB%85%B8%EB%8A%94-%EC%9E%AC%EB%AF%B8-%ED%96%89%EB%B3%B5-%EC%95%84%EC%8B%9C%EC%95%84-%EC%86%8C%EB%85%80-gm687863952-126630819?utm_source=pixabay&utm_medium=affiliate&utm_campaign=SRP_image_sponsored&referrer_url=http%3A%2F%2Fpixabay.com%2Fko%2Fimages%2Fsearch%2Fsweet%2520rain%2F&utm_term=swee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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