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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Oct 23. 2021

아기의 불안장애 새싹 굶어죽이는 방법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나의 불안장애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두려워졌다. 이제까지 쌓인 law data를 가공할 시간도 없이 어서 빨리 이 징글징글한 유전자가 아기에게 어디까지 손을 뻗쳤는지 최대한 빨리 알고 대처하고 싶었다.



아기는 분명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1. 소리에 대한 예민함

비행기 소리,

윗층이나 아랫층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생활소음,

천둥 번개 소리,

엘리베이터에서 들리는 각종 크고 작은 생활 소음

도로나 인도에서 들리는 운송수단이 움직이면서 발생되는 각종 소음


2. 모르는 물체나 생물에 대한 경계심

처음 보는 벌레나 곤충에 대한 두려움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 때 어색하고 무서워하는 행동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예민해지는 기질


3. 처음 접하는 음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


4. 상대방(대부분 주양육자인 나와 부양육자인 세대주)이 단호한 음성과 표정으로 이야기할 때 더욱 거부하고 반항하는 듯한 행동





먼저 소리에 대한 감각적 예민도는 인위적으로 낮출 수는 없기에 아기가 두려워하는 모든 소리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게 해 주었다. 어떤 소리인지, 어떤 물체에서 나는지 그리고 그 소리에 대해 친숙하게 만들고 노출 빈도수를 증가시켰다.


1. 비행기 소리:

 거주지에서 가까운 공항 근교에 당일 캠핑을 가서 비행기가 낮게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화면과 소리를 일치시켜 주었다. 그리고 비행기 외부의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모습, 그리고 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탑승했던 사진을 여러번 보여주었다. 영상노출은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매체는 소리만 보여주거나 혹은 움직이지 않는 실제 사진만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절대 노출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꾸준히 노력했더니 그 뒤부터는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

"무슨 소리야?"

"비행기 소리야?"

"비행기 어디 가?"

"비행기 놀러가고 있어?"

하고 점점 구체적이고 명확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소리가 들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둔감화와 구체화의 명확한 첫 승리였다.





2.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내부에서 들려오는

불확실한 소리:

 보통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는 택배 기사님들의 수레 소리인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기는 이 소리에 대해서 많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선물 아저씨' 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집 앞에 놓여있는 갈색 종이 상자와 '선물 아저씨' 를 연관짓는 데는 살짝 무리였다.

 어느 운이 좋은 날이었다. 외출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바로 윗 층에서 수레 소리가 났다. 아기는 곧바로 긴장하며

"무슨 소리야?"

라고 물었다. '선물 아저씨' 라고 말해주었다. 갈색 상자가 선물인것은 알기에 이번엔 왠지 자신이 있었다. 비행기 소리의 두려움을 떨치는 데 성공한 경험도 나름대로 든든한 근거가 되어줬다. 그리고 또 너무 운이 좋게 '선물 아저씨'가 빨간색 우체국 날개가 달린 조끼를 입고 수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셨다.

"봐, 선물 아저씨지?"

"우리 집에 오는 선물 다 이 선물 아저씨가 가져다 주신 거야"

"고맙습니다. 라고 이야기하자."


 마침 추석 시즌이었다. 택배 기사님의 얼굴을 봤더니 지쳐보이셨다. 많이 힘드시겠다고 말을 건냈다. 곧바로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시다고 한참 어린 나에게 장난어린 투정을 부리셨다. 인사를 하길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의 감정과 상황을 알아준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반토막은 난다. 큰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괜시리 마음이 뜨끈하게 데워졌다. 추석이라 과일이나 고기 등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들이 많아서 더 힘들다는 T.M.I.도 짜증스럽지가 않았다. 내 마음이 기사님께 전해졌는지 기사님은 뚱한 표정으로 인사도 제대로 안하는 아기에게 예쁘다고 여러 번칭찬해주셨다.

 두 번째 성공이었다. 그 뒤로 아기는 현관문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쿵 소리가 나면

"선물 아저씨야?"

라고 물어봤다.

 몇 번의 반복된 질문 후에는 그 소리가 들려도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둔감화의 전략이 다시금 성공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불안장애 파내기가 부분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며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어졌다. 내가 울며 겨자먹기로 전해 준 끈덕지고 구린 유전자를 다시 흡입해서 오탑노트를 쓰고 재시험에서 이렇게라도 유전자적 오류를 내가 바꿔줄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아직 임상실험(?)중에 있어서 결과로 도출되지 않았다.


 한편 4번은 훈육으로도 이어지는데 아직 이렇다할 성공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나에게 화가나서 강하게 혼을 내기 시작하면 그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난 음성, 그리고 냉정한 표정, 차가운 눈빛만이 기억에 남았다. 따라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내 입에서 큰 소리가 나더라도 딱 한번으로 제한한 후 곧바로 내가 화가 난 이유와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감정이 섞이지 않은 간결한 문장으로 짚어줬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나는 아마도 잘못이 밉지 내가 밉지 않고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 늘 고팠었던 것 같다. 내가 원했던 것을 어린 나에게 해준다는 마음으로 아기에게 그대로 옮겼다. 그러면 아기는 언젠가는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안아주면 화해하는 걸로 암묵적인 룰이 굳어졌다.

 







 


 내가 어릴때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맞벌이이기도 했다. 내가 맞벌이 부모님을 가진 것은 가정실태조사서를 써가거나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비인격적이지만 가정실태조사를 거수로 조사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났을 때 주목당하는 용도 말고는 나에게는 달갑지 않은 사실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벌써 몇 번째로 새로 맞췄는지도 모르겠는 목걸이로 만든 동그란 황동생의 굵직한만큼 차갑기도 한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열쇠를 아무리 여러 번 넣었다 빼도, 속도를 천천히, 빠르게 바꿔서 소리를 다르게 해봐도 어둑어둑해지기 전에는 절대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 내가 어릴때 그러니까 초등,중등,고등학교때 부모님은 거의 집에 계시지 않았고 그 대신 가사일을 비롯해서 나와 동생을 챙겨주는 분이 계셨다. 그 분 마저도 이사를 통해 몇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나와 동생은 헤어짐이 아쉬워서 구정물같은 눈물을 흘렸다. 헤어지고 나서도 몇번이고 전화를 했고 아주 오랜동안 그리워했다.


 






 초등학생때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절대로 학교에 못 올걸 알면서도 갑자기 깜짝선물로 우산을 들고 학교에 와주지는 않았을까 늘 출입문을 설레면서 봤다. 고학년이 되서는 그 설렘이 시니컬함이 되었다. 여전히, 역시나가 당연히 아님을 자연스레 알게 됐다. 도시락에서는 오늘도 사랑한다, 고생한다, 힘내라 라는 유치하지만 짧은 쪽지가 있지는 않을까 항상 기대했다. 성인이 다 되고부턴 그 쪽지와 학교에 데릴러와주는 것만이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주머니에 넣은 그런 꼬깃꼬깃 접은 학 같은 꼬질한 로망이 있었나보다.

 그런 로망을 유치하게나마 아기에게 실현시켜 주려고 작은 노력을 한다. 마치 나의 어린시절의 오답노트를 다시 작성하는 것 처럼 과거의 나로 잠깐 돌아가 가장 최선의 답을 이상적으로 써내려간 각본에 따라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아기가 어릴때는 행복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상기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임신 기간부터 너무 몸이 힘들었고 아기가 태어나고선 더욱 더 힘들었다. 출산을 하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제왕수술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출산을 하고 삼일동안은 10개월동안 고생했는데 왜 더 아파야 하느냐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거냐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엉엉 울었다. 배는 여전히 너무 못생긴 모습으로 나와있고 오로는 매일 매일 가득차서 매일 가득 뿜었다.


 그렇지만 아기와 함께 찍은 동영상 속의 내 표정은 지금의 내가 봐도 속을 정도로 너무나 밝다. 아기가 나를 볼 때는, 내가 아기를 볼 때는 최대한으로 행복한 것 처럼 연기했다.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 처럼 보고 또 보았다. 지겹도록 뽀뽀하고 숨이 막히도록 안아줬다. 아기가 기억하는 한 본인은 정말 귀찮을정도로 사랑받았고 또 그럴만한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영상을 찍을 때는 오늘도 내일도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하이톤으로 목소리를 쥐어짜고 또 쥐어짰다. 누가 봐도 행복해보이도록 말이다. 힘든 연기였지만 그때의 내가 참 대견하다. 아기는 다행히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것 같다. 그 영상을 찍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감정은 어땠는지 나만 함구하면 된다. 얼마나 세상이 미웠고 고소를 당했던 일도 그 어떤 누구로부터 모진 말을 들었는지 그런 건 나만 알면 된다. 아기가 모르면 된다. 그러면 완벽하다.

 영상 속의 아기는 생각보다 나한테 시선이 꽂혀있었다. 영상이 잘 찍히나 확인하느라고 나는 휴대폰 화면만 보았는데 한참 후에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니 아기는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내 눈을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어린시절 나 혼자만 엄마 아빠를 짝사랑하듯 나와 아기의 사랑의 화살표는 어긋나있었다. 나만 고치면 될 일이었다. 내가 경험한 모든 나쁜 것들을 풍성한 오답노트로 내 해마에 구구 절절 기록해놓았다. 나만 내 화살표와 눈빛과 사랑과 애정을 아기한테 쏟으면 될 일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금의 아기는 문장 구사는 물론이거니와 간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아기의 까만 두 눈은 항상 나를 향해있다. 이렇게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아기의 시선은 항상 나한테 박혀있다. 나는 아기의 그 눈빛과 시선을 이제 놓치지 않고 온전히 다 받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몸상태가 좋지 않아도 눈에 주름이 자글자글 박히도록 웃는다. 억지로라도 웃는다. 그럼 아기는 내 표정이 좋은지 더 확실히 힘찬 미소로 나에게 보답한다. 그럼 나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억지웃음을 거둬도 저절로 웃어진다. 마음근육과 얼굴근육이 비로소 일치한다. 긍정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된다. 이럴 때 참 살아있길 잘했다 싶다. 그때 안죽고 버티길 잘했다 싶다. 내가 제일 잘 했고 그 다음으로 예쁜고 귀한 이 조그만 생명체가 참 잘했다. 내가 나를 칭찬하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그 에너지로 아기를 사랑해줄 수 있다. 나는 적어도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럴 의무가 있다.






 아기를 가진 것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40개월이 지났다. 나를 빼고  지인들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학때 같은 동아리 활동을 했던 언니는 사무관이 되어 신문기사에 났다. 친한 대학 선배는 기자가 되어 기사로 종종 만난다. 내가 상담하는 과정이 궁금해 나에게 질문을 했던 지인은 어느새 프로 유튜버가 되어있다. 학원 원장님이었던 친구는 벤츠를 끌고 교수님이 되었고 건물주가 되었다. 나는 그래도 그동안 아기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멍하게 우유만 쪽쪽 빨아먹고 버둥거리던게 이던 아기가 노래도 부르고 엄마 눈치도 보고 강아지 끼니도 제법 챙겨주는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임신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그 기간동안 지금 오늘이 최대로 행복하다. 아마도 오늘보다 내일이 더, 그리고 이번 달보다 다음 달이, 그리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행복할 것이다. 아기는 내가 행복해야할 가장 큰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불안장애 따위는 더이상 나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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