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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Dec 06. 2021

일단 혼자서 아무대라도

비행기는 타야겠고 돈은 없고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게 혹은 안하게 하는 강압적인 환경 탓에 성인이 되기 전에는 혼자 여행하는 것 따위는 꿈도 꾸지 못 했다. 꿈만 지나치게 많이 꿔서 언젠가는 꼭 실천에 옮겨야지 하고 다짐만 하는 나날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노느라 바빠서 여행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다들 답답하면 바람쐬러 가고 드라마에도 이런 건 많이 나오고 왠지 멋있어보이기도 했다. 사실 여행 자체를 가고 싶어서 그런다기 보다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나, 비행기 티켓과 할부금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멋지게 지르는 ‘나’의 자아가 가지고 싶었던 마음도 큰 것 같다. 

그리고 때는 항상 급작스럽게 온다. 도망가고 싶었던 일들 사이에서 –그래봤자 석사생이 뭐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을지는 모르지만- 잠시나마 도망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돈은 없고 깜냥도 없고

멀리는 못 도망가고. 

그나마 비행기는 꼭 타야겠고...

그래서 선택한 제주도라는 여행지였다.




 물론 불안장애를 아주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었기에 운전면허는 당연히 없었고, 제주도를 겁없이 뚜벅이로 가는 무지막지한 짓을 저질렀다. 지금에야 둘레길도 그렇고 뚜벅이 여행이 생각보다 포장이 많이 되어 있었지만 그때는 선택이 아닌 강제였다. 


 제주 공항은 생각보다 매우 낡았고 김포공항에 있던 우둘투둘한 레고의 요철을 가진 떼묻은 상아색 바닥이 왠지 반가웠다.

(한참전에 리모델링됐지 아마)

내리자마자 다 죽어가는 야자수가 (겨울이었기도했고) 애처로이 

“니가 육지를 떠나긴 떠났지만 아직 한국이야. 이 천편일률적인 도시계획과 디자인을 보렴”

하고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가장 싼 비행편은 평일 저녁이었고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비도 오고 추적추적한 그 거리를 겁도 없이 걸어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네스코 지정된 제주도의자연 정취를 느끼고 싶었던 외국인 두명(물론 여자)를 꼬셔 운전을 시키고 통역을 자처했다.

 역시 동선부터 꼬였다.

나는 아프리카박물관,자동차 박물관, 성 박물관 등이 가고 싶었는데 이런댈 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개방적인 서양문물이 유전자에 잔뜩 박힌 외국친구들이 그런 곳을 가고 싶어 할 리가 있나. 지금 생각하면 재밌다. 내가 아프리카 박물관을 가고 싶다니까.


“이 유네스코 자연 뷰티풀 어쩌고 샬라샬라 네이쳐 제주에서 넌 그런 곳을 가고 싶니?”


이렇게 당황했던 그들의 파란 눈빛이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들과 다니니 계속 통역에만 몰두해야 했기에 여행지의 선택권이 없어 헤어지기로 결심하고승마는 꼭 해봐야했길래

승마농원 사장님과 딜을 했다.


“내가 가장 비싼 프로그램으로 이용할테니 나를 데릴러 오시오.”


결국 승마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이 약아빠진 말은 사장님이 보이면 살짝뛰는 척이라도 하고 사장님이 안보이면 아무래 이랴 이랴해도 터벅터벅 귀찮게 겨우 걸어갔다.그래도 당시 나의 가장 큰 주 목적인 폼만 잡은 사진은 남길 수 있었다. 힘겹게 웃고 있는 그 사진의 승마모자에서는 지독히 냄새가 났다. 그 사진은 싸이월드에 있기에조만간 구출해와야겠다.


성 박물관 이야기도 할 게 많다.

몇 년 후에 남자친구랑 함게 가게 되었는데 어느 곳에서 맥시멈으로놀라야 할줄 미리 알고 있었기에100정도의 놀람을 적절히분배할 수 있었다.결론적으로 미리 답사를 간 건 나름대로

매우 유용했다.

 한편 그곳에는 술에 취한 채 단체로 오는 아저씨 무리들이 많았고 몸매가 좋지만 이상한 실루엣으로 뒤덥힌 야릇한 명함을 주며 앞에서 대기하는 택시들이 참 많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성 박물관을 보고 제주의 이밤을그냥은 못 보내겠는여행객들을 낚아채가기 위함이었을까

제주에 의외로 유흥업소가 많다는 사실을훗날 알게 되었을때즐비해있던 택시와이상한 명함, 그리고술에 벌게진 채 나사가 하나씩빠져있던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소 비효율적인 동선을 가진 이 여행은 내가 훗날 모스크바 공항에서 혼자 모르는 말로 1시간 동안 취조를 당해도 쉽게 쫄지 않는 한국여자의 근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참 어렵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거짓말처럼 쉬워진다.


그날의 제주날씨가 지금 딱 이랬다. 다시는 못(안) 걸어갈 그 길이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도 


참 젊었다.

참 무식했다.

참 멋졌다.

참 건강했다. 

그때는 족저근막염도 없었으니. 


+

제일 싫어하는 동기년은 하필갈대를 느끼며 걷는 그 순간 전화해서가장 짜증나는 소식을 매우 신속하게 전했다. 그래 내가 그렇지뭘 좀 누릴라 치면 방해하는 족속이생기면 내인생이 아니지^^하고 자조했던 기억이 난다.그 동기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년에서 녀석으로 업그레이드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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