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정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대문자 J
정리정돈의 달인으로 부르고 싶은 우리 할머니. 어지럽히는 꼴을 보기 힘들어하는 우리네 엄마들의 심리가 나이 들수록 이해가 되는 건... 자식이 있든 없든 동일한 것 같다. 실컷 시간들이고 인테리어까지 감안해서 공들려 정리한 살림의 결과물을 하루 반나절도 안 되게 어지럽혔던 어린 날의 시절이 떠올라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건 부모님의 곁을 독립하거나 결혼 이후의 삶이 시작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그런 깔끔한 성격의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탓에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부터 정리하는 게 몸에 베였다고 생각했다. 정리정돈을 해도 다시 원상 복귀한 것처럼 지저분해 보이는 환경으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대신 어지럽혀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성격으로 형성된 바람에 내 성질에 못 이겨서 알아서 한 번씩 하루 날 잡고 버리고 치우고 혼자 만족하는 걸 즐겨했던 것 같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생활하고 사용하는 내방을 돈들이지 않고 내 공간 안에서 충분히 바꿔보고 정리하며 파악하는 게 재밌었다. 매일, 매주, 매달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바뀌는 환경에서 새로운 희열을 느끼곤 했는데... 아직도 가끔 예쁜 아이템 도구를 통해 신박하고 놀라우리만큼 멋지게 인테리어를 바꿔놓는 금손 유튜버나 마케터들의 솜씨를 보면 경악하면서도 부러워지곤 한다.
그만큼 나의 관심사가 정리정돈이었고, 내가 정리정돈에 꽂혀있었던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능력이나 장점으로 인정해 줄 정도로 잘하는 건지는 의문이었고, 청소를 좋아하는 건지, 정리정돈을 잘하는 건지도 헷갈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고 돈벌이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취업하기엔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혼자만의 취미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정리정돈분야에서도 특출 난 전문가가 많았고 신통방통한 기술과 노하우를 손보이는 분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했다.)
나름 정리정돈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해 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신랑이 이모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리를 힘들어해요...
생각해 보니까 매번 일정이 정해지면 나는 수첩과 볼펜부터 챙겨서 적기 시작한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건 매우 복잡한 일이라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품목들을 여백의 메모지에다 쏟아부워야 머리부터 마음까지 후련해진달까... 머리 안에서는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며 정리를 했고, 미정의 일정도 글로 적으며 뼈대를 세우고 정보를 찾아 살을 붙여가면서 정했었다. 심지어 가까운 데 나들이를 갈 때도 1박 이상의 여행을 갈 때도 한 달 정도로 넉넉잡고 준비를 해야 그나마 평타 치는 대문자 J로 계획이 틀어지는 게 두려워 시간적 여유가 되면 대안, 차 안의 계획까지 있어야 안심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대화가 정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정녕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이었던가. 정리와 정돈의 차이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내가 헷갈릴 만큼이나 정리와 정돈은 비슷한 맥락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였다. 다만 정리는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것, 정돈은 쓰고 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었다. 나는 은근히 버리는 걸 어려워한다.
'이게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그건 내가 써본 이상 불가능한 편이었다. 주로 물건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고 훗날 다시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쉽게 버리기 힘들어했고 그만큼 나는 물건 없이 생활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물건에 대한 애착은 깊어졌다.
미니멀리스트. 나의 최종 목표는 미니멀리즘이다. 집안일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건 살아가면서 물건은 많아지고, 의류업계에만 트렌드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방도구에도 트렌드가 존재해서 매번 새롭고 더 편리하고 가벼운 기능성 도구들이 우리 엄마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갑을 털고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증상이 생겨났다. 그렇게 사다 놓은 물건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의 목표는 무산되다시피 그냥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다만 포기하진 않았다... 대신 정리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내가 쓸 수 있는 공간 내에서 어떻게 잘 쌓아두고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알고 보면 세상에 나온 모든 물건들은 각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태어난 의미 있는 친구들이긴 하니까 말이다. 나는 어지럽혀진 공간을 보는 게 복잡한 머릿속을 보는 것처럼 불편했다. 그게 힘들어서 귀찮아도 손을 댔고 조금 달라진 환경에 만족하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그 나름의 원칙을 만들고 정리를 하며 살다가 물건들로 성이 쌓아질 때쯤에 또 물건들에게 제 자리를 공평히 나눠주며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자 정리와 정돈을 해온 패턴이었다.
그렇다. 나는 정리는 잘 하진 못하지만 정돈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시간이 들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정리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넣고 빼는 작업을 해가며 스스로와의 타협을 해가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하루 이틀, 아니 한 시간이면 충분할 수 있을 준비과정이겠지만...
정리이자 정돈과정은 내게 매우 중요하고 신중해야 하는 선별작업이자 미래를 추출하기 위해 드리퍼를 통해 현재를 담아내고 걸려내야 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정돈만큼이나 정리는 내 삶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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