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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01. 2020

3년 만에 다시 쓰는 출산일기

내게 출산 기념일이 갖는 의미

4월 9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재편해 생각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나는 매년 4월 9일을 내 출산 기념일로 지정하고, 남편과 아들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고귀한 일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축하를 받곤 한다. 첫 번째 출산 기념일엔 돌잔치 준비로, 두 번째 출산 기념일엔 업무상 중요한 보고를 위한 야근으로 충분히 자축하며 보내지 못했다. 출산 세 번째 해를 맞은 올해가 돼서야 비로소 나는 육아와 일의 밸런스를 찾아 여유가 생겼고, 더 기억에서 흐릿해지기 전에 그날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녀석을 낳던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진통이 점점 더 심해져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늦은 밤 병원으로 향했다. 예정일을 열흘이나 남겨둔 터라 배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내며 가면서도 출산의 조짐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아픔에 대한 역치가 현저히 낮은 내가 벌이는 작은 해프닝의 하나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 돌아올 때 얼마나 멋쩍을까 싶었다. 그러나 내 귀여운 예상과는 달리, 간단한 검사가 이루어진 후에 나는 바로 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 후로 꼬박 18시간 내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헤맷는데, 그날의 축축했던 공기와 4월치곤 스산했던 날씨 때문인지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되어 더 아팠던 것 같다.


밖이 이미 어둑어둑해진 저녁 무렵, 녀석이 드디어 나타났다. 18시간의 고생이 무색하게 마지막 순간엔 대차게 힘을 주는 동시에 아이가 미끄러지듯 쑤욱- 하고 나왔다. 그 찰나에 나는 녀석이 태어났다는 사실보단 드디어 내 고통이 종결되었다는 환희와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뒤이어 내 눈은 남편을 찾았고 소리 없이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오빠 내가 해낸 거 봤어?! 난 역시 너무나 대단해!!!" 라며 눈물 콧물 짜며 셀프 감격에 흠뻑 젖어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녀석이 쿵! 하고 내 가슴팍에 들어왔다.


그때, 그 순간의 묵직하고 따뜻했던 녀석의 온기.


살면서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거라 단언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내겐 그 순간이 그렇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블러 처리되고 그 공간 속에 오롯이 나와 아들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이 집체 된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개를 떨궈 간호사가 내 가슴팍에 내려놓은 아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는데 그제야 모든 것이 실감이 나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기쁨과 환희, 무거운 책임감 등 몇 초 상간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했지만, 무엇보다 내 가슴을 뜨겁게 했던 건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엄마로서의 내 자아가 새로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처음 안았던 달큰한 장면은 찰나였고, 곧이어 나는 현실과 마주했다.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나는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는 현실에 익숙해져 갔다. 아이가 주는 가슴 뭉클한 행복감과 환희와는 별개로, 누구보다 자유로이 살던 나였기에 육아로 인해 몸과 마음이 꽁꽁 묶인 것 같은 우울감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날들도 있었다. 나로서 온전히 살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란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고, 그 이후에도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과 기회 앞에서 나는 내 욕심보다 아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 할때마다 뭔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은 선택이라 믿는 나는 우울한 상념들을 거둬내고, 아이가 내게 주는 선물 같은 행복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 중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가 처음 내 품에 들어왔던 그 순간, 몸과 마음에 각인처럼 새겨진 그날의 감각들을 떠올려 보는 일이었다. 내게,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평생의 감동을 선물해준 기적 같은 녀석임을 잊지말자고.


아이로 인해 내 삶은 재편되었고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조율의 과정을 거쳐 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아이 때문에" 라며 아이 탓은 하지 않으려 한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거친 세상에 이 녀석을 초대한 건 온전히 나와 남편의 선택이었고 녀석은 그저 우리의 부름에 응했을 뿐이다. 내 모든 행동과 결정의 중심에 아이가 있는 것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고 그 길을 아름답고 행복한 길로 가꾸는 것 또한 오롯이 내 몫이라 생각한다. '너 때문에... '로 시작하는 말로 결심이 흔들릴 날도 오겠지만 나는 매 출산 기념일마다 마음을 새로고침하여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내게 출산 기념일이 갖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만지면 부서질까 너를 제대로 안아보기조차 겁나던 날들이 있었는데, 어느새 네가 힘차게 달려와 내게 안길 때면 내가 다칠까 봐 무서울 지경에 이르렀다.  울음이 무슨 뜻인지 몰라 주저앉아 같이 울고 싶던 날들이 있었는데, 어느새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이가 되었. 잘 커준 너, 잘 키운 우리 부부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계속 너도 엄마도 아빠도 잘 커나가 보자. 우리셋 함께 하면 고생도.... 행복일까?


후훗 정답은 30년 후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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