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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an 06. 2021

회사원은 마음속에  사표가 아닌  
꿈을 품고 산다.

회사원이 꿈이었던 사람이 있을까? 현실감각이 탑재되지 않았던 어린이 시절, 나의 꿈은 화려했다. 어제는 외교관 오늘은 디자이너 내일은 아나운서. OTP처럼 실시간으로 바뀌었던 나의 꿈들. 꿈을 꾸는 데는 아무 조건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른이 된 내가, 꿈이 아닌 직업을 구하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과 자질을 긁어 모아 현실에 비춰보았다. 테헤란로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사원증을 걸고 있는 그들의 일부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곧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택하여 준비할 뿐인데도, 지난한 취업준비 과정에서 간절함은 절로 생겨났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뜨거운 마음을 모아 공기업에 입사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꿈이 아니었대도 좋았다. 파란 사원증 목걸이가 주는 소속감이 벅차게 행복했고, 그것이 나의 자부심의 일부를 구성하던 날들이 있었다. 새틴 블라우스와 정장치마를 입고 또각또각 구둣굽 소리를 내며 회사 로비로 들어서면 (내 회사도 아닌데) 주인 의식이 샘솟는 날들도 있었다. 문서작업으로 키보드를 타닥거리고 있노라면, 조직의 일원으로 어엿히 자리매김한 내 모습이 꽤나 근사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감흥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운 좋게도 나는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직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받았고, 해외 셀러와 계약 단가를 협상하는 kick-off 미팅에 참여하여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로 실무를 시작했다. 카운터 파트에 자유로이 영어로 의견을 개진하며 단 1센트라도 변화를 이끌어내려던 선배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그런 존재로 성장하여 공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단 사명감과 신입의 열의가 타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동경할만한 모습 이외에도 다채로운 면모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배의 실적을 가로채 승진대열에 들어서는 선배를 보았고, 실력 없이 훈계만 하는 무임 승차자 차장을 만났다. 업무에 있어서도 실무자 급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득히 머나먼 윗분들의 마음을 읽어내려 그것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능력만 늘어갔다. 이것은 내가 그렸던 회사생활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내가 소속된 부처가 좋지 못한 일에 휩싸여 대대적으로 개편되는 상황을 맞았다.


#조직 속 바둑알이 느낀 무력감

갑자기 닥친 변화에 우리 부처의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선임 차장님들은 발 빠르게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사수였던 차장님도,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배들도 각자의 살길이 바빠 나의 행보까지 신경을 써줄 수는 없었다. 부처 막내인 내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팀장님과의 상담에서 내가 현 소속 부서에 남게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을 신뢰했고 그를 믿었지만 나는 결국 부처의 가장 마지막 바둑돌이 되어 그곳에서 튕겨져 나왔다. 마지막 바둑돌을 선정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나를 비롯한 모두가 지쳤있었다. 결정을 통보받던 날, 사실 잠시 후련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근 2년간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 곳이었다. 거친 야근과 회식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내 역량을 발휘하며 소정의 사명감까지 느끼며 일했기에 애착이 깊었던 곳이었다. 나를 마지막 바둑돌로 선택한 자가 누구든 고작 직원이었던 내게 유감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그저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행했을 뿐이라 말하겠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한동안 몹시 마음이 쓰렸다. 그제야 비로소 조직 안에서 한 개인의 힘과 위치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내 안의 자아가 제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조직 속에서는 한낱 바둑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무력감을 느꼈다.


이후에도 매년 반복되는 조직개편, 승진, 전보, 포상, 징계 등 일련의 절차를 관찰하며 그 과정이 구성원 모두가 끄덕일 수 있는 정의로운 방식대로만 행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과정이 어떤 방식이 되었든 조직이 개인의 삶에 무차별적 변화의 공격을 가하는 일은 매우 일반적이었고, 모두가 그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직이 주는 안정적인 소속감을 잠시라도 따뜻하다 생각했던 내 모습이 순진하리만큼 철없이 느껴지며, 조직에 대한 기대감이 그렇게 서서히 꺼져갔다.


# 한차례 슬럼프 파도가 내게 남긴 것

슬럼프는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되었다.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꿈도 아니고 그저 한낱 직장일 뿐인데도, 무슨 기대를 그리 크게 품었었는지 깨진 환상의 조각들을 주워 담느라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문득 어느 퇴근길에 아빠가 떠올랐다. 30년을 한 기업에서 버텨낸 아빠라면 이런 순간 내게 해줄 말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화기 너머 내 목소리만 10분 넘게 울려 퍼졌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이야, 그걸 몰랐어?" 짧게 되물었다. 일에 대한 열의는 좋지만 조직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는 금물이라고, 앞으로 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매번 그리 감정 실으면 회사생활 길게 할 수 없다고 아빠는 잘라 말했다. 당연한 말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말씀은 않았지만, 아마도 아빠 역시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분명 과거 어느 순간 경험한 적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 그랬을 테다. 전화를 끊으며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때 겪어 오히려 다행이라며, 조직의 생리를 잘 읽어내고 너답게 적응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빠의 통화가 결정적이긴 했지만, 주변 선배들과의 대화에서도, 사기업에서도 잔뼈 굵게 일해본 이력이 있는 남편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이곳은 아니지만 다른 어딘가에 분명 이상적인 조직이 있을지 모른다며 이직의 희망을 품고 있던 내게 그런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회사생활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 만으로 첫 슬럼프의 수확은 충분했다.


#뭉근하게 성실하게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회사생활의 자세를 견지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회사라는 조직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사명감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회사 사람들을 쉽게 믿거나 그들에게 무언가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아빠 말대로 나답게 조직의 순리를 따르고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범생이 기질을 버릴 수 없는 내 성격상 최소한 맡은 업무를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놓지는 못하지만, 회사에 월급 주는 곳 이상의 의미까지 부여하진 말자 다짐했다. 내 역량이 닿는 한 이곳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순 없다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나 후배에게 비겁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입신양명에 집착하진 말자 생각했다. 규정과 절차는 정확히 지키되 소신 있게 일하고, 사수에 기대지 말고 나 스스로 업무 능력을 높이자 등 내가 나답게 조직을 대하는 몇 가지 룰을 세웠고, 그 원칙하에 생활하니 전보다 회사를 출근하는 일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입사 때부터 나를 쭉 지켜봐 온 친한 선배는 팔딱거리는 활어 같던 네 모습은 어디 가고 냉소적인 할머니가 되었냐며 놀리고 또 놀라워했다. 재밌는 점은 전과 같이 불타는 열의나 뜨거운 애사심은 없어졌지만 오히려 업무에 대한 집중도는 더 높아졌고, 조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에 무감각해지며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는 시간에 묵묵히 일을 하며 업무 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의아하게도 활어보다 냉소적인 할머니로 생활하는 것이 여러모로 회사생활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해 주었는데, 그 이유를 어느 책의 구절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은희경, <새의 선물>-




활어같이 팔딱이는 것이 내 본모습이라면 냉소적인 할머니는 내가 회사생활을 편히 하기 위해 불러들인 일종의 가면일 것이다. 그것은 조직 속에서 상처 받지 않고 싶은 내 방어기제일 수도 있고 조직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며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묘책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뭉근하게 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실한 회사생활의 밑바탕이 되어주는 가면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펄떡이는 마음들이 나를 지배할 때가 있다. 이렇게 공기업 직원으로 30년 살다 은퇴하고, 마치 세상에 자랑할 것이라곤 회사에서 오래 버텨낸 것 밖에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 죽기 전에 한 번은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내게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생각 끝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함께 든다. 어떤 세계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사직서가 아닌 꿈을 품고 산다.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만한 깜냥이 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바둑돌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로써 반짝이고 싶은 꿈은 늘 품고 산다. 언젠간 그리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날이 있다. 그 희망을 갖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낼 이유는 충분하다. 언젠간 마음 한편에 잠자는 꿈을 펼처볼 날이 있으리라 소망하며 오늘도 뭉근하고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해본다. 이곳에서의 모든 배움 또한 언젠간 내 꿈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리라 굳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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