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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Oct 21. 2023

함께라서 다행이야

16년지기 친구들과 우정여행(feat.빌라쥬드아난티)

내게는 16년지기 친구들이 있다. 이 그룹이 특별한 것은 비단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 사는곳, 하는 일, 기질, 취향까지 그 어떤면에서도 완전한 교집합이 없는 각양각색의 9명은 함께 일하는 동료로 그 인연을 시작했다.

 

다채로운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었던 예술의 전당. 그곳에서 울고 웃었던 젊은 날의 추억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공통분모가 되어 지난 16년을 함께했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뿔뿔히 흩어져 살지만 매년 한번씩은 꼭 단합대회마냥 모이려 노력한다. 글래머러스한 숙소를 잡아준 형부 덕분에 이번 모임 장소는 부산으로 정해졌다.

탁트인 바다가 주는 힘, 부산이 좋은 이유.

다들 자유부인으로 만나는 것을 약속했으나, 나와 ㅎㅈ 언니는 남편들이 맡아줄 수 있는 일정이 여의치 않아 예외적으로 아들을 동반하여 만났다.

이번 모임의 최연소 참가자 두분

만남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지만, 사실 장소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부산 아난티를 갈때마다 그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공간 자체가 주는 편안함에 감탄했었는데, 신상숙소 빌라쥬드 아난티는 어떤 곳일지 또 어떤 만족감을 줄지 한껏 기대되어 만남의 설렘을 더 증폭시켰다.


대구에서 부산 기장까진 차로 약 한시간 반. 지방살이 n년차, 한시간 반 거리정도는 가벼이 생각했는데 빨리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체감 주행시간이 평소보다 길다 생각하며 바삐 차를 몰았다. 비로소 시원한 바다뷰가 나타났고 곧이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지대에 위치하여 바다를 품고있는 구조의 기존 아난티와는 다르게, 빌라쥬드 아난티는 바다와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마저도 참 멋있다 (feat. 돈의힘)

H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팬시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내에 따라 숙소에 가기위해 버기카를 기다렸다.

주차장에서부터 느껴지는 화려함

우리가 묵은 곳은 매너하우스 A동에 위치한 독채숙소였고, 프론트가 있는 메인건물에서 숙소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었기에 상시 버기카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외국 리조트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버기카가 그러한 생각을 더하게 했다.

귀여운 버기카 붕붕

운전의 피로를 날려주는듯, 적당히 시원찹찹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에 도착. 길었던 여정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문을 열자마자 이미 도착한 인원이 우리 후발대를 반겨주었다. 더 어지르기 전에 공간이 주는 기쁨을 기록해두고 싶어 구석 구석 사진부터 부지런히 찍었다.

아난티의 시그니처 인테리어. 고급진데 편안해.

ㄷ자형 구조로 이루어진 독채는 가운에 마당을 두고 있었다.  마당과 바로 인접한 거실/부엌 등 공용공간을 기준으로 양쪽에 화장실을 포함한 침실을 둔 구조인 셈이다. 전체적인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마당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하트시그널 이었다면 이곳 활용도가 높았을텐데(우린 ㄴㄴ)

스페인에는 전원주택뿐 아니라 Piso 라 불리우는 아파트, 각종 주거 형태에 관계 없이 입주민들이 모두 공유하는 정원 개념의 파티오(Patio)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숙소가 품고있는 마당을 보니 그러한 건축형태가 떠올랐다.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의 구조적인 안정감이 보는 것 만으로도 편안한 휴식과 여유를 느끼게 했다.

그 누구보다 편안해 보이는 그들

왜인지 알수 없으나 만나면 늘 배가 고픈 우리들. 각자 기차역에서, 집에서, 음식점에서 배를 채우고 만났지만 연신 배고프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서둘러 짐을 풀어놓고 식사부터 하기로. 숙소 주변을 둘러볼겸 훑으며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내렸다.

(좌) 숙소 앞 수영장 (우) 메인 수영장 구경잼

맛집을 누군가 검색할 법도 한데, 다들 목소리 높여 이야기 나누느라 그런 과정은 생략했다. 우리가 가는 곳이 맛집이지 뭐.

밥먹으러 가던길(feat. 주린배)

우연히 발길내려 닿은곳은 근처 양념 갈비집이었는데, 뜻밖의 맛집 발견해서 다들 우걱우걱. 양념이 고루고루 잘 베어있었고 부드러워 아이들이 참 좋아할 맛이었다. 7세 손님 두분은 양념갈비에 밥 한그릇씩 뚝딱하고 우리역시 굽느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다는 아껴둬. 밤새 떨거니까.

초딩입맛 울리는 양념갈비. 진짜 초딩을 울려버림.

배 두드리며 나오면서 바로 곧이어 먹을 회 주문해놓고 바로 픽업해서 다시 숙소로.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쉬지않고 먹는 우리, 자랑스러워.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둑해졌지만 산책하기 딱 좋은, 선선하지만 춥지않은 완벽한 날씨였다.

제주도 아님 주의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히노끼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우리는 다가 마르지 않을수 있도록 든든한 상을 차렸다.

(좌) 자연인 (우) 문명인(?)

여자 6명이 모였음 참.. 이쁘게 세팅할만도 한데 우리는 언제나 우리식대로. 회를 가운데 위치시키고 그 좌우 앞뒤 가리지 않고 술이며 안주며 각자 가져온 것을 풀어놓았다.


특히 회가 신선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톡톡했는데 그 식감이 지금 회상하는 순간에도 떠올라 침이 넘어간다. 다음에 가도 그곳에서 주문해야지.

멋은 없지만 맛은 있었다는 것

넉넉잡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여섯시간. 잠시 산책다녀온 시간을 제외하면 궁뎅이를 거의 떼지 않고 이야기만 나눴는데, 무슨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늘 일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딱히 신선하거나 놀라운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도 잠들기가 왜 그리도 아쉬운 건지.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 웃고, 함께 공감하고, 함께 화내는 이 시간이 다시 찾을 일상에선 너무도 그리워질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걸까.

값비싼 숙소인지 어느 시골집 민박인지 관계없이 수다 only

잠들지 않으려 끝까지 발버둥 쳤지만 너무도 노쇠해진(?) 우리에겐 새벽 세시가 마지노선이었나보다.

그래도 알차게 밤산책까지 한 우리들

다음날 아침, 할망구처럼 일찍 일어나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는 망할 놈의 내 생체시계. 휴일에도 변함없이 울린다. 깨끗하게 씻고 나갈 채비를 마친뒤 아들을 깨웠다. 아들, 우리 이모들한테 아침 배달 미션 한번 해볼래? 하자 벌떡 깬 흰둥이. 아침 바람이 찰 것을 대비하여 뜨시게 입고 미션 수행에 나섰다. 근처 전복죽 집중 가장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았고, 전복죽이 포장될 동안 아침을 깨워줄 모닝커피도 샀다. 손이 모자랐으나 우리집 흰둥이가 도와준 덕분에 수월히 배달 완료.

전복죽집앞 바다에서 잠시 데이투

둘이 나온김에 바다도 잠시 보고, 상쾌한 아침 공기 마시며 도톰한 손을 꼭잡고 정처없이 걸었다. 돌이켜보면 1박 2일중에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역시... 행복은 혁둥이와 함께할 때 완성되는것! 그의 강아지 같은 미소덕에 피곤함도 날렸다.

쫜득쫠깃한 전복이 일품!

돌아와서 아침상을 풀어내자 준비를 마친 언니들이 하나 둘 나왔다. 짭쪼름한 바다맛에 고소한 참기름이 적당히 어우러져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고, 도톰하고 쫄깃한 전복이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싹싹 아침을 긁어먹은 우리들.


회사 동료들중 절반 이상이 아침에 더부룩하다고 식사를 스킵한다고 하던데, 예외들만 모인건지 전복죽 네그릇이 금새 비워졌다. 식사를 하고나자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바심이 느껴졌다. 부지런히 짐을싸고 조금 일찍 나와 기차시간까지 함께 기다리며 아난티를 즐기기로.

눈 돌릴때마다 갖고싶은 공간들

날씨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모처럼 광합성까지 즐기며 마지막까지 수다를 이어갔다.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그 바쁜 와중에 젤라또 맛집을 발견하여 달콤함도 함께 나눴다. 혁이는 레몬맛을 1등으로 꼽았고, 각자 기차타러 다 떠난 이후에도 젤라또 맛을 못잊어 한스쿱 더 드셨다는 후문.

젤라또 상점마저 미학적

모두 다 각자의 차시간에 맞춰 택시태워 보내고 혁이와 나 둘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즐긴 우리

혁이가 가보고싶다는 소품샵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야외 정원에서 젤라또를 먹으면서 마지막 여유를 즐겼다.


알찼던 부산에서의 1박 2일. 잊지못할 한 가을 밤의 꿈 같았던 여행이었다.

과학기술(?)활용하여 모두 모인 우리

우리가 각기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의 조합은 테트리스가 될 수 없는 너무나 다채로운 조각의 모음이라는 것을 인지했던 그 어느 과거 시점에 나는 이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것이 버겁겠단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비슷한 동네에서 자라 같은 학교/학원을 공유하며 비슷한 관심사를 갖던 친구들과 관계를 쌓고 살았던 내게, 특수한 이 관계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훨씬 더 다채로운 인간군상이 가득한 사회에 발을 딛고, 나와 너무도 다른 반쪽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무한히 확장된 세계속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우리가 (여전히)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20대를 성장시킨 8할은 이 그룹이었다. 먹고 마시며 함께 보낸 우리의 수많은 밤 속에서 우리는 함께 커갔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이해의 베이스로 삼기도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내린 결정, 도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함께 응원하고 축하하고 또 위로하기도 했다. 물리적으로는 그렇지 아니하지만 서로가 곁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날들이 분명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함께 보낸 세월속에 나의 일부가 빚어졌다.


30대 40대의 우리는 지금 더욱더 공통분모가 희미해지는 삶을 각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를 키워온 과거의 추억들이 우리를 더욱 공고히 붙여줄 것을 안다. 우리는 서투르지만 용기 있었고,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늘 희망을 이야기하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찬란하게 느껴지는, 젊고 예뻣던 서로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목도한 산 증인들이기에.


나의 남은 인생에도 이들이 깊은 위안이 되어주길,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함께라서 다행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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