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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04. 2020

오페라 하우스의 소녀들

시원하게 뚫린 서초구의 남부순환로를 달리다 보면 특색 있는 건물이 눈에 띈다. 갓 모양의 한국적 건축미가 돋보이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가 바로 그것이다. 높이만 다른 회색빛 건물들이 빽빽이 자리한 서울 한복판에 음악분수가 흐르고 계단광장의 여백을 낭만이 가득 채웠던 그곳, 잠시나마 그곳은 내 직장이었다. 나는 11개월 동안 예술의 전당 하우스 어텐던트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의 첫 발걸음을 뗐다.  


비행기와 기차에 승무원이 승객의 편의를 돕듯, 공연장엔 하우스 어텐던트가 있다. 공연장의 얼굴이라고도 불리는 하우스 어텐던트는 공연장 안내, 장내 관리 등 편안한 관람을 위한 공연예술 서비스 전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뮤지컬 등 내로라하는 공연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마음으로 끌렸고, 수료증을 얻어 이력서 한 줄을 채워볼 수 있다는 점에서 머리로 끌렸다. 대학생답게 단출했던 서류를 제출하고 떨리던 면접 끝에 나는 예술의 전당 하우스 어텐던트 6기로 근무하게 되었다.


서비스를 평생 받고만 살았던 20대 철부지 여대생들은 그곳에서 서비스 제공자 마인드의 기본부터 배웠다. 단정한 용모, 상황에 적절한 미소, 말 한 끗 차이의 미학. 서비스의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기본을 익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실전인 공연장에 인력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당초 20여 명의 동기들이 선발되었으나, 생각보다 혹독(?)했던 교육, 엄격할 규율 등에 학을 떼고 몇몇이 자율반 타율반으로 나갔고 열명 남짓한 동기들만이 마지막 수료식 자리까지 함께했다.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1회성 예술이라는 점에 있었다.  물론 인기 있는 오페라나 뮤지컬은 몇 개월에 걸쳐 수십 회 차 공연 끝에 막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같은 공연이라도 매 회차가 똑같진 않다는 것이 진짜 묘미였다. 시나리오와 연출진이 동일하다 해도 캐스팅이, 관객의 호응으로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무대에 선 배우들의 목 컨디션이, 날씨나 습도에 따라 무대를 채우는 공기가 매번 달랐다. 값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도로를 꽉 채운 차들을 뚫고 도착한 관객이 그 회차마다 부여했던 각자의 의미는 더 특별했으리라.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이란 없었고, 하우스를 찾은 관객에겐 그날이 그저 평범한 날들 중 하루 일리 없었다. 때문에 관객이 장내의 진행 미숙으로 예약한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면, 그것을 보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간을 되돌리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매번 생방송을 뛰고 있는 스태프들과도 같았다. 단지 인턴 신분이었지만,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로 점철된 매 회차의 생방송을 잘 진행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무언의 책임감을 느끼며 일에 임했다.




어텐던트 역무는 단순하게 기술된다. 공연 시작 두세 시간 전 도착해 용모를 다듬고, 당일 공연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다. 이를테면 캐스팅, 공연시간, 인터미션 여부, 간략한 줄거리 등. 공연 시작 30분 전에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당일 보직에 부합하는 곳에 자리한다. 보직은 크게 수표와 안내로 구분되었는데, 수표는 공연장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입장을 돕는 역할을, 안내는 객석에서 자리를 찾아주거나 문의사항 등에 답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연이 종료되면 간단한 객석 정리로 일과가 마무리된다. 일률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모든 절차는(심지어 멘트까지) 체계적인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대로 따라 하면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지만, 사실상 매뉴얼에 기술되어 있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서비스 제공 대상이 사람이라는 점은 변수가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넘치는 임기응변을 요했기 때문에 경험 어린 대학생들에겐 쉽지만은 않은 역무였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수백여 명의 관객을 시종일관 미소로 상대하고, 몇 시간을 선채로 수표/안내의 역할을 마치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붓고 힘이 쭉 풀렸다. 대처 미숙으로 관객의 화를 돋워 일을 크게 만든 날은 스스로를 자책하다 잠들었고, 암전된 사이 늦은 손님을 빈 좌석으로 바삐 안내하다 잘못된 열로 들어서서 되돌아 나온 날은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려 도망치듯 집에 갔다. 실수담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글자크기 10p인 티켓의 시간을 잘못 읽어 다음 회차의 관객을 입장시켜 좌석 중복 해프닝이 일게 하는가 하면, 미취학 아동이 분명함에도 들여보내 달라는 대찬 아줌마의 큰 소리에 놀라 제지를 못해 진땀을 뺀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하우스 매니저 및 선배들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이났고, 퇴근 후 다같이 구겨진 기분을 달래려 남부터미널역 앞 치킨집이 떠나가라 목청을 높였다. 서로가 서로의 스트레스 받이가 되어주다 막차 시간을 놓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단순한 인턴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었고, 학점도 연애도 중요한 대학생이었기에 기회비용도 상당했다. 그렇지만 수료까지 그만두지 않고 다닌 이유는 낭만 가득한 일터가 주는 충만한 행복감, 그리고 함께 일한 동기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불편한 유니폼을 입고 헐떡거리는 구두로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는 긴장된 와중에도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가 라이브로 귀를 타고 흐를 때면 마음만은 춤을 췄다. 실수투성이 하루 끝에 축쳐저 하우스를 나설 때면 클래식 음악에 맞춰 춤추는 형형 색색의 음악분수가 산란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정화시켜주었다. 매니저의 뼈아픈 질책과 선배들의 텃세를 자양분 삼아 진득한 우정을 꽃피웠던 동기들은 이 신기하고도 진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었고,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즐거움으로 출근길 발걸음이 경쾌했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는 값비싼 가르침이 켜켜이 누적되어 상황이라는 변수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근무하게 될 무렵, 우리는 수료했다. 값비싼 공연을 무료로 즐겨볼 요량으로 발들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린 그곳에서 질서와 규율로 가득한 사회생활의 기본을, 말을 담는 프레임의 변환을 통한 설득의 기술을, 칼 같은 시간관념을 배웠다. 서비스를 받는 주체에서 제공하는 주체로서의 역할 전환을 해볼 수 있었단 점에서도 이 경험은 매우 특별했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경험을 우린 심지어 돈을 받으면서 했다.  

 

어제일마냥 생생하게 그려지는 일들이 슬프게도 이미 10년을 훌쩍넘은 빛바랜 경험의 파편들이다. 그러나, 영화 '인턴'의 포스터 문구처럼 경험은 나이 들지 않는다(Experience never gets old). 매체의 발달로 간접 체험이 직접 체험을 압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직접 체험의 가치는 그 희소성만큼이나 오히려 높아진 듯하다. 호기심을 책으로, 블로그로, 유튜브로 아무리 채워봐도 손과 발로 체득하는 경험의 깊이를 얻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어텐던트로 일하던 그시절 이미 깨달았다. 경험도 자산이라면 그 시기에 나는 일단위로 정기 적금을 붓고 있던 셈이었고, 그 만기 적금을 종잣돈 삼아 원하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평화로운 가정까지 다 꾸린 나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주저하지 않고 부지런히 쌓아 올려야 하는 이유다. 10년 뒤 나는 또 오늘의 경험의 조각들을 추억하고 그를 바탕으로 성장해있을 테니 말이다.


젊음이라는 무기로 촌스런 꽃 분홍색 유니폼, 머리 한올 허용치 않았던 머리망, 개성 없는 검정 구두의 착장을 소화해 던 소녀들. 에는 랜턴을 쥐고 무전기를 찬채 잡힌 두줄로 발걸음 맞춰 토월극장으로 이동하던, 오페라 하우스의 그 소녀들이, 그 장면이 무척이나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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