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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25. 2024

봄인가?

큰 일교차가 반복되며 봄을 봄이라 부르지 못할 날들만 계속 됐었는데 어제는 날이 따뜻했다. 아니, 더웠다. 살랑이는 바람에 포근한 햇살을 기대했건만 반팔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 기온이 좀 오르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오르길 바란 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변덕을 따라잡지 못한 건 꽃들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아래 어떤 지역에는 매화나무가 만개한 곳도 있다던데, 윗지역은 여전히 앙상한 줄기들만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 집 바로 앞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여긴 봄마다 노오란 개나리가 성벽처럼 학교를 둘러싼다. 헌데 깜깜무소식이다. 

조금 걸어 중랑천으로 나오면 벚꽃길이 있다. 몇백 미터 넘게 이어지는 벚꽃길은 '왜 사람들이 굳이 바글바글한 여의도를 가나?' 싶도록 흐드러진다. 그런데 여기도 아직 잠잠하다. 

봄이라는데 봄소식을 가져온 정령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어제 좋았던 날씨의 뒤통수를 치듯 비가 온다. 다행히 기온이 뚝 떨어지진 않았지만 볕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없다. 기대했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듯 봄이 아직 한 발 뒤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흐릿한 하늘. 마음이 늘어지는 회색빛 세상.


그 속에 노란 점들이 조금씩 박혀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철조망처럼 사납게 보이던 개나리 가지에 몇몇 녀석들이 피어났다. 하루도 아닌 반나절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람? 이놈들도 어제 날씨에 속아 봄의 문을 빼꼼히 열어본 모양이다. 


봄인가 싶더니 아무것도 없고, 아직인가 했더니 봄을 꾸미고 있다.

놀리는 건가? 왠지 마음이 어이없다. 


봄이 부끄러운가 보다. 눈을 피해야만 조금씩 발자국을 남기니까. 어차피 세상 화려하게 다녀갈 거면서 조금만 더 일찍 나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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