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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잘 해고하는 방법

열일곱 번째 소란

우리는 법이 규정한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는 제대로 된 해고를 원한다.


글쓴이. 딸기크림치즈타르트





 확실한 해고 역시 일종의 예의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맺고 끊음, 고용과 해고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 역시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식당 서빙 알바를 하기 전에 내가 경험한 알바는 강의 교재 작성과 두 번의 과외, 그리고 두 번의 학원 보조였다. 세 가지 모두 정식으로 지원하고 채용이 된 것이 아니라 지인들을 통해서 혹은 알던 선생님의 제안으로 하게 된 알바였다. 일이 힘들다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지는 않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해고하는 방식이 비슷했다는 거였다. 교재를 만드는 일은 카카오톡으로 일을 전달받고 파일을 작성해서 보내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알바들을 관리하던 실장에게서 당분간은 일이 없으니 좀 쉬다가 다시 일을 받아서 하면 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대로 일이 올 때까지 몇 달을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한참을 소득 없는 날은 보내고서야 나는 잘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제야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이후에 있었던 두 번의 과외도 해고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 첫 번째 과외였던 국어 과외는 집에 갔다가 학생도 가족들도 아무도 없어서 그대로 돌아온 이후 다음 주는 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다음 주, 다음 주도 휴식은 끝나지 않았고 한 달 정도를 기다린 후에 엄마를 통해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에 있었던 영어와 수학 과외도 여름방학 직전에 잠시 쉬고 날짜를 맞추어보자는 문자 이후 영영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앞선 경험들로 영어 수학 과외를 잘렸을 때는 내가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비교적 빠르게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몇 주를 다시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감과 혹시 잘렸나, 하는 불안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기다려야만 했다. 


 이후에 보조를 하던 학원은 내가 알바를 하고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학생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선생들의 숫자도 감축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보조들도 숫자가 줄어들게 되었는데 나도 그 대상에 포함이었다. 그 학원은 근무 일지에 자신이 출근한 시간과 퇴근한 시간을 적어서 시급으로 월급을 받는 형식이었는데 당분간 출근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까지 쉬어야 하는지, 연락은 언제쯤 다시 줄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으로 잘릴 때마다 나는 내가 잘렸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연락이 다시 오기는 할지, 온다면 언제쯤 올지 확신할 수 없어 새로운 일을 구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시 일하게 된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안심하지도 못했다. 언제나 불안정했고 해고인지 확신할 때까지 수입도 없이 알바 지원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일자리의 불확실성은 사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확실하게 해고되었다면 그 즉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계속해서 기다려야만 한다. 고용주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알바를 해고해놓고 확실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면 본인이 지금 일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상태로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잠깐 쉬라고 말하는 것이 사업장의 입장에서는 ‘부드러운’ 해고 방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노동자에게는 그저 고통의 시간만 늘리는 답답한 방식일 뿐이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애매한 말로 에둘러 해고하는 것은 본인이 고용주의 입장이기에 취할 수 있는 방식이지, 결코 노동자에 대한 배려나 노동자를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법이 규정한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는 제대로 된 해고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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