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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현실은 타이쿤이 아니다

열여덟 번째 소란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적어도 게임만큼이라도 하길,
일한 만큼의 돈을 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 말이다.


글쓴이. 문우





 ‘타이쿤 게임’이라는 장르가 있다. 한국에서는 ‘붕어빵 타이쿤’등으로 유명한 장르인데, 보통 식음료점을 운영하는 스토리에 열심히 조리를 하는 게임 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타이쿤 게임들을 꽤 좋아했다. 시간 내에 후다닥 음식을 만들어서 내고 틈틈이 가게 관리도 해줘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가는 게 꽤 재미있어서일까. 그래서인지 상당히 즐거운 기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라는 건 게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매장을 치우고, 주문을 받고 빨리빨리 메뉴를 만들어낸다. 밀린 주문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나 좀 멋있는 듯’ 하는.



 그러나 동시에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은 ‘현실은 타이쿤 게임 따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 속에서는 생략되고 간단하게 나타난 것들이 현실에서는 제일 힘들고 어려웠다. 현실에서는 알바를 시작할 때부터가 난관이다. 내가 일했던 곳은 S 샌드위치, Z 생과일 전문점이다. 두 곳 모두 인터넷에서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다른 곳에서는 서류 통과도 못했기에 절박한 상태로 면접을 보러 갔었다. 그리고 두 곳 모두 공고와 조금씩 다른 시간대를 제안했다. 화목 알바할 사람을 구한다고 써놓고 실제로는 토요일도 되냐는 식이었다. 다른 데는 면접도 못 봤는데 어떻게 안된다고 말하겠는가. 내가 여기서 안된다고 말했다가 근무 시작도 못하면? 무조건 YES 뿐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업무시간을 조정하고 첫 월급을 받을 때는 더 당황스럽다. 근로계약서를 써주지 않는다든가, 수습하는 일주일은 임금을 절반만 주겠다고 한다든가, 환복 해야 하니까 10분 일찍 오라고 하며 10분 전부터 지각 체크를 한다든가... ‘꺾기’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14시간 30분. 일주일 동안 14시간 30분 일했다. 30분만 더 일하면 주휴수당을 줘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나온 거다. 게임 속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다. 그때서야 ‘아, 타이쿤 게임은 ’ 경영‘게임이었지’하고 생각했다. 나는 게임 속 사장님이 아니라 아이템처럼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돈 잡아먹는 아르바이트생이었구나.



 최대한 ‘가성비’ 있게 일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일도 많았다. Z는 타임 별로 아르바이트를 한 명만 고용했다. 1인 근무는 편의점이나 작은 카페에서 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혼자서 일한다고 했을 때는 막연히 편하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일단, 화장실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가게의 보안도 걱정되는 데다가 화장실 다녀온 새에 손님이 여러 명 오면 피곤해졌다. 최대한 빨리 다녀왔지만 “무슨 화장실에 하루 종일 있냐, 목 빠지게 기다렸다”면서 핀잔을 주는 손님들을 종종 마주해야만 했다. 돈 벌면서 화장실도 내 마음대로 못 가다니. 



 업무를 분담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S와 Z에는 ‘빽’(Back이지만 모두들 빽이라 부른다)이라 부르는 공간이 있었다. 재료들을 보관하고 밑준비를 해두는 곳이다. 게임 속에서야 재료가 끊임없이 리필되지만 현실에서는 그걸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당연히 나 자신이었다. Z에서 일할 때 빽에서 열심히 수박이니 파인애플을 썰고 있으면 당장 주스를 먹지 못하면 죽는 손님들이 애달프게 나를 부른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해도 그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계속되는 재촉에 허둥지둥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 슬라이스를 토핑 해서 드릴 뻔한 적이 수두룩하다. 이럴 때 일을 같이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게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손님들이다. 타이쿤 게임 속에서의 손님들은 음식이 늦어지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 현실 손님들도 비슷하다. 다만 게임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기발할 뿐이다. 물론 대응하기 편하다거나, 소소한 감동을 주신 분들도 분명 있었다. S의 복잡한 주문 시스템에 헤매고 있는 걸 보고 “알아서 맛있게 잘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함박웃음을 짓던 중년 남성들이라든가, “이 노래 제목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으로 선곡에 심혈을 기울이던 나에게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주신 손님처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내가 독심술을 쓰기 원하는 유형. 즉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콩떡처럼 알아들어라’라는 거다. “커피.” 이렇게만 주문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무지하게 많다. 달고나흑당에스프레소버블라떼같은 온갖 기기묘묘한 커피가 넘처나는 이 세상에서. 보통은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의미하기에 아메리카노를 내드리곤 했지만 Z에서 일할 때는 당혹스럽게도 ‘커피’가 카페라떼나 카페모카일 때가 있었다. Z에서 있었던 또 다른 주문은 “복티 주세요”였다. 주문을 듣고 세 번은 되물어봤다. 대체 ‘복티’가 뭐란 말인가. 



 알바가 첫 번째 유형의 독심술을 실패하면 두 번째 유형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같은 말도 날카롭게 던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복티’의 해석에 실패한 나에게 “복숭아 아이스티!!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몰라!!”라며 자신의 인싸력을 뽐내는 분이라든가. “아이스로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그럼 이 날씨에 뜨거운거 먹고 싶겠냐!!‘라고 나온다든가.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 한 질문인데. S에서 있던 일이다. 주문을 픽업하러 두 분이 오셨다. 별생각 없이 두 명이 왔으니까 포크를 두 개 드려야지, 하고 포크 두 개를 챙겨 넣었다. 가게를 나서면서 그분들이 화를 내시길, ”지금 사람이 몇 명인데 포크를 이것만 주시는 거예요? “ 그냥 포크 더 달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알바에게 사죄를 얻어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알바가 고개 숙인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 분이 또 계셨다. 마감 준비를 하느라 재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매뉴얼 상으로도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위생이니 서비스니 아무튼 문제가 많다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언성을 높이던 분이었다. 내가 굽히지 않고 문제없다고 답하자 심기에 거슬리셨던 모양인지 가게의 모든 이목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고성을 내뱉다가 끝내 내 사죄를 받고 나서야 ”아마추어같이 굴지 말라 “며 떠나신 그분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구석에 앉아서 울고 있으니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국가공인샌드위치기사 같은 것도 아닌데 프로의식 같은 소리를 왜 들어야 하는지. 그것도 내 시급보다 비싼 샌드위치를 사 먹는 사람한테... 그런 면에서 게임은 게임일 뿐이었다. 게임 속에는 적어도 이유 없이 폭언을 하는 손님이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세 번째 유형은 이상한 요구를 하다가 안되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 "버스/기차/전철/비행기 시간이 촉박하니 몇 분만에 만들어 달라”와 같은 타임어택 미션을 준다든가. '비행기를 놓칠 지경이면 여기서 샌드위치 싸가실 때가 아니지 않아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별 수 있겠는가. 해야지. 그 외에도 다른 매장 행사를 언급하면서 ㅁㅁ점에서는 해줬는데 여긴 왜 안 해주냐고 끝까지 화를 낸다든가, 해가 중천인데 모닝 메뉴를 왜 안 파냐고 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과일주스를 파는 Z의 경우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여름에 오셔서 봄 시즌 메뉴인 ’생딸기‘를 찾으시던 손님이었는데 딸기는 지금 여름이라 안 나온다고 거듭 말씀을 드려도 그럼 왜 전단지에 있냐며 어떻게든 생딸기로 달라며 강경하게 나오셨다. 알바가 전래동화 속 효자도 아니고 어떻게 푹푹 찌는 여름에 싱싱한 생딸기를 대령하겠습니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이런 손님들과 마주하면서도 친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하면서야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서비스는 나의 노동력 제공이었는데 보통은 아닌 모양이었다. 샌드위치나 주스에 세트처럼 알바생의 웃음과 한 톤 높은 목소리가 딸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친절을 당연시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웃지도 않고, 왠지 화가 난 표정인 데다가 손님이 말하는데 중간에 말을 잘랐다‘며 클레임을 받기도 했다. 그저 무표정했을 뿐이고, 한꺼번에 많은 주문을 줄줄이 말하는 손님에게 잠깐만 멈춰줄 수 있냐고 한 것뿐인데. 더욱 이해가지 않는 것은 ’서비스‘에 알바의 용모가 어느 정도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화장 좀 해라‘는 잔소리부터, 내 앞에서 그 자리에 없는 알바생을 언급하며 “걔는 뚱뚱한데 화장도 안 하고 다녀서 서비스 정신이 없다”라고 말한다든가 하는 일이 많았다. 대체 식음료를 취급하는 곳에서 화장이 왜 필요한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서비스나 친절함으로 이어지는지도. 



 결국 게임처럼 재밌던 일에 지쳐가게끔 만드는 것은 이런 일들과 이런 사람들이었다. 비록 아이템처럼 쓰이다가 마는 알바라고 해도, 게임 속의 사람들은 적어도 상식적이었다. 이상한 주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폭언을 하거나 “알바가 무표정하다”며 화를 내지는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적어도 게임만큼이라도 하길. 일한 만큼의 돈을 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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