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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진짜 여기는 망해야 한다

열아홉 번째 소란

비정규직에 어린 여성이다 보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아요. 
자정이 전혀 안 이루어져요.


인터뷰. 현정-처음처럼 안팀장



 

 열아홉 번째 소란의 주인공은 ‘처음처럼’ 안팀장이다. ‘처음처럼’은 특성화고졸전문대노동자연합으로 우리 사회의 학력주의와 이에 따른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에 저항하고, 특성화고졸∙전문대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안팀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세 군데의 직장을 다니고, 두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의 첫 번째 임금노동은 웨딩홀 아르바이트다. 웨딩홀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쌍의 커플이 결혼식을 올린다. 동시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거운 식기를 들고 구두를 신은 채 계단을 오르내리고, 웃으며 고객을 맞이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업무 능력과는 상관없이 고객이나 상급 직원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 아래에는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처음처럼’ 안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두 살, ‘처음처럼’ 안팀장입니다. 오늘은 제가 처음처럼에 들어와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려고 해요. 겸사겸사 홍보도 하고요. (웃음). 제 첫 알바였던 웨딩홀 알바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   일찍 일을 시작하셨네요.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정직원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정직원이 되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20살 후반까지 웨딩홀 알바를 하면서 저는 일에 대해서 빠삭했고, 못 하는 것도 없었어요. 웬만한 남자들보다 일을 더 잘했고요. 정말 힘들고 화났던 점이 남자들은 다 정직원이 되고, 저는 안 되는 거였어요. “저런 애도 정직원이 되는데, 내가 안 된다고?”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남자들은 무거운 거 들고 그런 데에서 차이가 난다고 설명을 하던데, 글쎄요. 저는 무거운 짐 옮기고 그런 일도 뺀 적이 없어서 별로 납득이 안 되었어요.



-   어떤 계기로 웨딩홀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나요?


여자는 원래 정직원 제의가 잘 안 들어오는데, 20살 되던 해 9월에 남자 대리님한테 정직원 제의를 받았어요. 그때가 물갈이 시기여서 정직원 충원이 있었고, 여자 팀장님이 계실 때라 저한테 기회를 주신 것 같기도 해요. 대리님이 월급이나 근무환경 바뀌는 걸 설명해주시면서 이건 제의고 스카우트 같은 거니까 별도로 면접 같은 건 안 본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에 저는 평일에는 다른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웨딩홀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다니던 회사보다 웨딩홀에 정직원으로 취직하는 게 조건이 나아서 당연히 받아들였죠. 그래서 다니던 회사에는 10월 말에 퇴사하겠다고 말해뒀는데, 대리님이 9월 말에 퇴사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사정상 9월 말 퇴사는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팀장님이랑 만나서 일정 조율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일정 조율하러 팀장님을 뵈러 갔는데 갑자기 1분 스피치 같은 거를 시키시고 면접을 보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일정 조율하는 자리로 알고 간 거라 당황했고 준비도 안 되어 있어서 면접을 잘 못 보고 떨어졌죠.


대리님이 전해주신 거랑은 달라서 어이가 없었어요. 이미 다니던 회사에는 퇴사한다고 말해뒀는데… 그래서 대리님한테 말씀드렸죠. 원래 대리님과 자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고, 그날도 좀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대리님이 갑자기 저한테 “OO아, 내가 사실 너를 좋아해.“ 이러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20살이었고, 남자 대리님은 31살이셨어요. 나이 차이도 엄청 많이 나고, 저는 대리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었어요. 근데 제가 여기서 고백을 거절하면 정직원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알바를 계속 다니던 어느 날, 대리님이 저한테 엑셀을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리님 자리로 가서 알려드리는데, 저한테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내가 이걸 몰라서 불렀겠냐”라면서, 갑자기 저를 껴안으시는 거예요. 당황해서 화장실 간다고 하고 급하게 빠져나왔어요. 그리고 ‘정직원 안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대리님한테 말씀을 드렸어요. 대리님은 존경하는 대상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요. 그렇게 거절했더니 대리님이 “그럼 우리 이런 사이는 끝이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사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처럼 대해도 되냐고 하시길래 당연히 그냥 알바생과 대리의 관계를 생각하고 알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주에 출근하니까, 또 손을 잡고 “오늘 왜 이렇게 예뻐?”, “오빠는 살찐 여자는 별로더라”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계속 질척대시더라고요. 계속 막 연락 오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다 끊어내고 대리님 연락을 차단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서 일하고 있으니까 대리님이 갑자기 저를 불러내서는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너는 그렇게 욕을 먹고도 실수를 하냐? 오늘은 실수하지 마라!”라고 하시면서 욕하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는 전에 욕을 먹은 기억이 없거든요. 동료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욕을 먹은 적도 업무에서 실수한 적도 없었어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 다하고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 마무리하고 확인까지 마치고 퇴근을 했어요. 근데 갑자기 대리님이 단톡을 만들어서, 제 담당이 아닌 일로 꼬투리 잡으면서 “너희 이거 왜 확인 안 했냐” 이렇게 화내시고, 저한테는 전화까지 걸어서 “누가 이렇게 한 거냐, 니가 이런 앤지 몰랐다,” 이러시면서 엄청 쏘아붙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담당 구역이 아니라서 그건 몰랐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화풀이를 저한테 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딱 정리해서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또 막 욕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니가 확인했어야지. 니가 이런 앤 줄 알았으면 팀장님한테 소개도 안 시켜드렸다. 내가 다 X팔린다. 너 이런 식이면 더 이상 나오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욕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실수나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욕을 먹으니까 너무 화나고 억울했어요. 그래서 알겠다고, 저도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렇게 알바를 더 안 나가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그 남자 대리는 저한테만 집적거린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제 또래 20대 초반 여자 알바생들한테 다 그랬던 거예요. 일단 정직원 하겠냐고 제안을 하고, ‘나 너 좋아한다’ 이렇게 고백하고, 거절하면 저렇게 다른 직원들 앞에서 망신 주고.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알바를 그만뒀는데. 정직원이 될지 알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서 정말 꼬여 버렸죠.



-   일하면서 또 다른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손님들 때문에 힘든 일이 정말 많았어요. 제가 일했던 웨딩홀은 돌잔치도 하고, 결혼식도 하는 곳이었어요. 1층부터 4층까지 있고, 4층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었어요. 1, 2, 3층 식당에서 손님으로부터 식권을 받아오면 4층에서는 정산이랑 식기류 내려주기 등을 해요. 저는 모든 층을 오가면서 일을 했고, 커피 같은 건 식장 밖에서만 드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안에서는 버리도록 안내해드렸어요. 한 번은 거구의 남성 분이 “안에는 뜨거운 음식이 없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안내드리니 커피를 버리고 들어가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정신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남성분이 잔치국수 국물을 받은 그릇들을 판 채로 들고 저한테 오시더니, “이건 뜨거운 거 아니냐 XXX아, 머리에 뿌려볼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그 남성분은 계속 저한테 욕을 했어요. 사람들은 엄청 많았는데 아무도 말리지는 않더라고요. 정말 서러웠어요. 계속 욕을 하시던 그 손님은 “니가 알아서 처리해.” 이러시더니 뜨거운 그릇들이 올려진 판을 놓고 가셨고, 저는 그제서야 무전으로 매니저님을 불렀어요. 


목소리가 떨리니까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 다 몰려오더라고요. 하지만 그 손님은 이미 떠나서 CCTV로도 그분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일이 있고, 2주 뒤에는 어떤 취한 중년 남성분이 오셔서 제 얼굴 바로 옆에 붙어서 냅킨으로 얼굴을 비비고, “언니, 이쁘네.” 이러고 가셨어요. 그 눈빛이 너무 소름 돋아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일이 있고도 담당 구역 재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저는 계속 거기서 일해야 했어요.


아, 손님들뿐만 아니라 남성 직원들도 알바생들한테 성희롱을 많이 했어요. 한 남자 팀장은 와인 잔을 닦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여자 XX 만지듯이 살살 닦아야 해”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수많은 알바생들 앞에서. 또 알바생들 중에 커플이 있었는데, 여자 알바생이 몸이 안 좋아서 안 나오면 그 알바생과 사귀는 알바생한테 “니 여자친구 왜 안 나왔냐? 그렇게 자주 하면 힘들어. 적당히 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고요. 다른 남자 매니저 중에 한 분은 제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생리하냐고, “오늘 그날이야? 반짝반짝 매직매직~” 이런 불쾌한 장난을 많이 치셨어요. 더 최악이었던 건 그 매니저가 나무판자나 수건 같은 물건으로 여자 직원들 엉덩이를 때리고 다닌 거예요.


제가 진짜 여기는 망해야 된다고 생각한 게, 자정이 전혀 안 이루어져요. 그 남자 매니저가 여자 직원들 엉덩이를 치고 다닐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제 친동생이 제가 알바하고 있는데 온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제 동생을 소개했는데 동생 앞에서 제 엉덩이를 발로 뻥 차고 가시는 거예요. 진짜 너무 화가 나서 사무실에 가서 매니저님한테 화를 냈더니,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발뺌을 하시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직원들한테 전부 말하고 다녔죠. 매니저가 그랬다고. 그때 저랑 친했던 다른 직원분이 듣고, 저를 불러서 말씀하시길, 팀장님한테 얘기해보긴 할 건데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냥 흘려듣는 수준으로 끝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진짜 훈계 좀 들으시고 끝난 것 같아요. 그런 성희롱, 성추행이 빈번했는데도 그런 식이니까 바뀌는 게 없는 거예요. ‘여긴 정말 답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   솔직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오늘 “소란”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처음처럼” 동료들이 놀라더라고요. 제가 평소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편이라 이런 일이 있었는지 다들 몰랐던 거죠. 그런데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은 저만 피해 입은 일이 아니고, 피해자의 잘못도 아니잖아요. 다들 문제라고 생각은 하는데, 직장에 오래 다니다 보면 또 다른 직장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에 누구도 문제 제기를 못 하는 상황인 거죠. 문제 제기해도 저처럼 팀장 선에서나 내부적으로 끝나기도 하고요. 


애초에 알바생 대부분이 비정규직에 어린 여성이다 보니까, 얘는 약하고, 얘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에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고쳐야 하는 게 맞는데, 교육도 안 하고 하더라도 형식적인 교육이니까 문제가 개선이 안 되어요. 신고도 최소한 피해자의 익명성이 보장이 되어야 하고요, 애초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또 법을 통해서 기업에 징계 수위를 높이는 등 강력한 처벌 수단을 꼭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소리 듣고 끝내는 정도로는 안 돼요. 확실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그 웨딩홀은 필히 망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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