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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노동자입니다

스무 번째 소란

사회가 그리는 여성상에서 벗어난 삶,
'돈 못 버는 고학력 비정규직 비혼 여성의 삶'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인터뷰. 현정-대학원생노조 구구





 최근 고려대학교 전 총장과 보직교수 5인이 수년간 8억 원이 넘는 학생연구원 인건비를 가로채 기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인건비를 공동계좌로 회수하여 빼돌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이처럼 대학원생들이 정당한 인건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며, 대학원생 노동력 착취는 ‘합법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대학원생은 노동자성(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보장받지 못하고, 4대 보험 가입이 허용되지 않으며, 사고가 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20번째 소란의 주인공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의 구구이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약칭 ‘대학원생노조’)은 대학원생 인권침해 및 노동력 착취에 대응하고, 대학원생의 노동권 보장과 노동자성 가시화,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대학원생노조 성평등위원회는 대학원 내 성폭력 문제 발생 시 피해자 지원과 성평등한 대학원 문화 만들기를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부터 대학원생으로서, 여성으로서 노동해온 구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현재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조교, 연구보조원, 각종 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있는 구구입니다.



- 대학원생으로서 어떤 노동을 하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생이 하는 노동이라 하면 스스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생산하는 연구노동이 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학교 행정일들을 많이 합니다. 행정일에 인건비가 드니까, 학교는 대학원생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대학원 장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해서 일을 처리하는 거죠. 학사 처리와 관련된 일을 정말 많이 하고, 연구실 관리부터 학술 행사가 있을 때는 논문집을 내고, 자잘한 학회 일을 다 하는데, 대부분의 일들을 무급노동 또는 아주 적은 인건비를 받고 한다고 보면 됩니다. 



-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이나 받았던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대학원생노조에서 지속적으로 의제화해온 부분인데, “대학원생도 노동자다”라는 것이 구조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임금, 노동시간, 대우에서 부당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노동자가 아니니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노동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교수님이 부르면 달려가서 일합니다. 임금이나 학위 같은 부분이 교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니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죠. 특히 이공계의 경우 랩실에 들어가서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는데, 그에 대한 인건비 지급이 교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수가 박사는 얼마, 그 밑에 연구보조원은 얼마 이렇게 탑-다운 방식으로 분배해주기 때문에 교수가 “어디야? 언제 나와? 이거 좀 처리해.”하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언제든지 나가서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죠.



- 임금지급에 대한 기준이 따로 없고, 교수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인가요?


그렇죠. 교수가 프로젝트 사업을 받아와서 돈을 나눠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은 없어요.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최저시급 역시도 보장받지 못하고, 어떤 달은 40만 원 받고, 다음 달은 20만 원 받고 이런 식입니다. 출근 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주말도 없이 매일 일을 하죠. 



- 많은 시간 노동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금전적인 부분을 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일을 더 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집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학원이나 과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하지만 교수들은 “공부할 생각을 해야지.”라고 하며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해서 들키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장학금이라는 명목의 월급을 한 달에 몇십만 원 받는 사람도 있고 물론 그 이상 받는 사람도 있지만, 문제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교수의 재량에 달렸다는 거죠. 교수가 “00아, 다음 달부터 월급 좀 깎아야겠다.”라고 하면 그 행정 처리도 자기가 해야 합니다. 부당한 걸 알면서도 학교 안에서 큰 소리를 내면 나한테 불리한 걸 아니까 따르는 거죠.



- 대학원이라는 공간이 엄청 폐쇄적인 공간인 것 같네요.


학계가 정말 좁아요. 회사 이직하듯이 지금 다니는 A 대학원이 너무 힘들고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고 B 대학원으로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느 학교든 교수들 간에는 선후배 등의 친분이 있어 조금만 건너면 아는 사이라서 “너 밑에 있던 애, 이번에 내 밑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것을 염려하다 보면 결국 학위고 뭐고 다 포기하고 완전히 그만두고 학계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죠. 


또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위계질서만 있는 건 아니고, 대학원생들 사이의 위계가 강한 곳도 있어요. 그런 경우, 제일 연장자인 남자 선생님을 중심으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편이에요. 연구실 내부 분위기가 폐쇄적이고, 교수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원생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한 명을 타깃으로 잡아서 괴롭히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 여러 부분에서 부당하다고 느끼고 그만두고 나가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석사만 하고 나가시는 분도 많아요. 그러면 “쟤는 공부할 태도가 안 되었고 자질이 없는 애다.”이렇게 말하죠. 대학원 내부에서도 서로 평가하고 실적으로 경쟁을 많이 하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누군가 나가면 “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걱정하기보다는 “못 버티면 어쩔 수 없지. 공부 못 하니까 나가는 거지.”라는 식이에요. 박사과정 하다가 그만두는 분들도 있어요. 이공계는 30대 초반에, 인문계는 30대 중후반에 박사 학위를 받는 편이고, 박사 학위를 받으면 어디 이력서를 낸다거나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데, 중간에 그만두거나 박사 과정을 수료만 하고 논문이 없는 비박사들의 경우 다른 일을 하기도 힘들죠.



- 현재의 교수들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교수가 되었을 텐데,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개선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나요?


괜찮은 교수님들도 있다고 듣기는 했어요. 문제는 많은 교수들이 본인은 ‘폐쇄적인 위계문화를 개선하는 교수’라고 생각하고, 뉴스에 나오는 ‘문제 있는 교수들’은 완전히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문제 있는 교수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나 때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 너희들은 나 때에 비하면 얼마나 좋아졌냐?” 또는 “나는 저런 교수들에 비하면 참 좋은 교수니 너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렇게 교수들 스스로 ‘나는 진보적 학자고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고 말하고, 원생들도 미디어에 나오는 정말 나쁜 교수들과 비교하면서 “우리 교수님은 좋으신 분이다. 저 정도는 아니니까.”라고 자꾸 생각을 하니까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기도 하죠.



- 동료 대학원생분들 중에는 “나는 저런 교수는 안 되어야지.”라고 하거나,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나요?


일단 대학원 내에서 “나는 교수가 될 거야.”라고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뭔가 회사에서 직원이 “내가 이 회사 회장 되어서 다 바꿀 거야”라고 하는 느낌이에요. 다들 자기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가 별로 없어요.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하지 않는 지금의 사회 구조상 신규 교수가 되는 건 극소수예요. 이 상황에서 교수가 되겠다는 건 현실감 없는 꿈이라 다들 기대가 없어요. 


그러면 대체 대학원에 왜 갔냐고 물을 텐데, 뭐랄까 정말 학문이 좋아서 연구하러 온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학문에 대해 더 알려고 대학원에 왔는데, 석사만 되어도 교수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이란 걸 알게 되고, 그렇다고 다른 출구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죠. 나이 많은 고학력 여성? 정말 취업이 어렵죠. 그래서 다들 그냥 버티는 상황이에요. 올라간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나간다고 좋아지는 건 더 아니니까요.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시간 강사나 그보다 조금은 나은 계약직 교수예요. 그렇게 버티기 바쁘죠, 다들. 하지만 민주적이고 평등한 연구 및 노동환경을 만들고자 함께 대학원생노조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 대학원 내부의 전반적인 성평등의식은 어떤가요?


일반적인 기업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정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다들 “나도 페미니즘 지지해~”라고 말하면서 비가시적인 성차별을 덮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 실제로 내부에선 어떤 성차별이 발생하나요?


대학원 회식 때 남자 교수들이 여학생들을 옆에 앉히고, 몸을 못 가누면 여학생들이 부축을 하는 일도 있고요. 그런 가시적인 일도 있고, 또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인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생 수를 보면 여성들이 많은데, 교수를 보면 다 남자 교수들이에요. 그 많던 여자 선생님들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또 학회 같은 경우를 보면, 발표자나 사회자처럼 발언권 있는 일들은 남자 선생님들이 많이 하는데, 비슷한 연차의 여자 선생님들은 주차권을 나눠주고, 뒤풀이 장소를 섭외하고, 다과를 주문하는 등 덜 중요한 일, ‘잡일’들을 많이 맡아서 하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거기 오는 사람들은 남자 선생님에게는 “00 선생님 발표 좋더라~ 다음에 어디서도 발표 한 번 해요.”라고 하게 되지만, 여자 선생님들한테 “이번에 예약한 식당이 좋던데? 다음에 우리 학회 와서도 식당 잡아줘.”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남자 선생님들은 거기 참석한 학자들이랑 자연스럽게 인사하면서 남성 연구자 중심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고, 그게 쌓이면서 교수를 향한 좁은 계단을 착착 올라가는 사람들이 정해지게 되는 거죠. 여자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비정규직 강사로 남지만요. 그리고 그렇게 강단에 선 남자 교수들이 “나도 페미니즘 지지해. 좋은 학문이야.”라고 말하는 거죠.



- 대학원생으로서, 여성으로서 노동을 하고 취업을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길이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연구자라는 길을 택하고 배우며 걸어온 길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 예를 들면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거든요. “돈 못 버는 고학력 비정규직 비혼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대학원에 와서 많이 보았고,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비정상이 아니구나. 사회가 그리는 어떤 상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여자 선배들, 동료들 보면서 많이 합니다. 물론 쉬운 길, 안정적인 삶은 아니지만, 열심히 버티며 연구하는 동료들도 있고,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는 선배들도 있고,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 소중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서 잘 몰랐다면, 이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도 내 자신의 기준에만 맞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수도 선배도 학교도 나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공부하고 뛰고 구르며 만들어진 ‘나’는 남는 거니까요. 그 온갖 꼴을 다 본 결과 남는 것이 고작 ‘나’냐면, 네…. 고작 ‘나’이고, 그럼에도 ‘나’는 남아요. 그러니 당신이 공부한 것, 배운 것은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교수님들!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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