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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2. 2020

자리는 대체할 수 있지만,
사람은 대체할 수 없잖아요

스물두 번째 소란


어떻게 돈벌이를 해야 하는가, 이건 정말 평생 동안의 고민이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태린-A




22번째 소란의 주인공은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을 경험해 온 A님. 22번째 소란 은 1부, 2부로 나누어 A님이 경험해 온 일들 중 일부인 ‘와인샵 아르바이트’와 ‘장애인 활동지원사’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일에 어떤 접점이 있느냐는 의문이 들 지도 모른다.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 일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이면서도 ‘내 정체성’이라고 말하기에 망설여지는 일이라는 것. A님과의 인터뷰 1부에서는 와인샵 아르바이트 경험을 들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들을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가장 길게 한 일은 백화점 와인 판매 아르바이트인데요, 3년 정도 일했었습니다. 지금은 ‘피플퍼스트서울센터’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센터에서 장애인 근로자의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10개월 정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했었습니다.”



-백화점 와인샵에서 일하셨던 경험을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이었는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백화점 식품관에 가면 와인/주류 코너가 따로 있잖아요. 마트 같은 경우에는 손님이 구매하고 싶은 제품을 골라 와서 직원에게 물어보는 시스템이라면, 백화점은 무조건 직원이 응대를 해야 해요. 옷이나 화장품 코너랑 비슷하죠. 와인 진열부터 창고 정리, 물건 발주, 관리도 직원의 일이고요. 고객님이 원하시는 와인 찾아 드리고, 포장, 배송 등 판매 관련된 모든 일을 했어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화장품 매장에 가면, 그 매장의 직원 분들은 다 같은 회사 소속일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와인 매장 같은 경우에는 수입사별로 직원들이 있어요. 경쟁 수입사가 한 매장 당 최소 3개에서 4개 정도가 돼요. 직원이 10명이라면, 5군데 경쟁하는 수입사에서 두 명씩 직원을 보내서 다 같이 일하는 거죠. 제가 일한 지점은 수입사가 5군데였고요, 더 큰 매장은 7~8군데씩 있기도 해요. 어떤 수입사가 제일 매출이 좋고, 어떤 수입사 매니저가 일을 오래 했고… 이런 걸 다 따지게 되죠. 본사에서는 수입사들을 ‘협력업체’라고 해요. 백화점을 구성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다 협력업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많은 업체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하루 종일 좁은 매장 안에 같이 있으면서 경쟁을 하는 거죠. 손님이 들어오면, 그 손님을 누가 응대할지도 경쟁으로 정해요. 잘 상상이 안 되시죠? (웃음) 정하는 시스템이 있어요. 저도 처음 일을 하러 갔을 때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각기 다른 회사들에서 모인 직원들이라는 건 전혀 몰랐어요. 그럼 고용 형태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XX백화점 DD점’에 협력 업체로 ‘AA주류’, ‘BB인터내셔널’, ‘CC주류’… 이렇게 수입사들이 협력 업체로 들어가는 형식이에요. 제가 일했던 AA주류 와인 부서는 하청을 줘요. AA주류 본사 직원이 있고, EE와인이라고 하청의 형태로 매니저와 직원들을 고용하는 거죠. 저는 매니저, 직원이 아니고 아르바이트생이어서, EE와인의 인력업체 소속이었어요. 인력업체 관리하는 사람 얼굴도 본 적이 없어요. 문자만 받아 봤고. 월급은 그 인력업체를 통해서 받았어요. 그러니까, AA주류에서 EE와인으로 돈을 주고, EE와인에서 인력업체에 돈을 주면, 그 돈에서 뗄 거 떼고 저한테 오는 거죠. 즉, 하청의 하청의 하청.”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을 하셨는데, 계속 아르바이트로 일 하신 건가요?


“직원, 매니저 권유도 많이 받았는데, 제가 하기 싫어서 그냥 아르바이트로만 일을 했어요. 경력이 쌓이고, 익숙해지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긴 했죠. 처음에서는 설명도 잘 못 했는데 나중에는 직원처럼 일을 했어요. 저희 업체에는 직원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보통은 매니저, 첫째 직원, 둘째 직원, 셋째 직원… 이런 식으로 고용을 해요. 제가 일했던 지점에서는 둘째가 없었어서, 둘째 역할을 제가 다 했고 직원으로 입사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죠. 그런데 저는 성과급제가 싫었어요. 직원이 되면 성과급 제도로 돈을 받으니까. 알바는 일 페이로 받잖아요. 안 그래도 경쟁 스트레스가 심한데, 직원이 되면 그 스트레스가 배가 되니까요. 판매직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요. ‘언제든 하기 싫으면 때려치워야지.’ 이 생각으로 계속 아르바이트로 했어요.”



-처음에 와인샵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고, 제가 단기로 판매 알바를 많이 했었어요. 화장품 단기 행사, 주류 시음 같은 것들. 이런 일들의 장점은, 한 번 인력업체에 소속돼서 일을 하고, 경력이 조금 쌓이면 계속 일거리가 들어와요. 일 페이나 주급 형태니까 단기로 일하기도 좋고요. 학교를 다니고 있던 때라, 일을 쭉 하는 게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렇게 계속 일을 하다가, 명절 단기 알바로 와인샵 일을 처음 하게 됐어요. 백화점은 명절에 바쁘잖아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어요. 한 매장에 다양한 경쟁사에서 온 여러 명이 같이 일한다는 것도 몰랐고. 쭈뼛쭈뼛 갔는데 좁은 매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길래, ‘일이 엄청 많은가?’ 하면서 들어갔죠. 그런데 저한테 말을 걸거나 일을 시키는 사람은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뭐지?’ (웃음). 이해가 안 되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 말을 들으면 왜 타 업체 일을 하냐고 혼났어요. 쓰레기 좀 치우라길래 치웠는데, 매니저가 ‘A야, 너 왜 니 일 아닌 거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 눈치를 채기 시작했죠. 가위나 테이프, 볼펜 같은 물품들도 업체별로 정해져 있었어요. 제가 일을 좀 괜찮게 한다 싶으니까, 매니저님이 ‘휴무 대체’를 제안하시더라구요. 매장에는 언제나 사람이 고정적으로 있어야 하잖아요. 매니저나 직원들이 쉴 때 보조하는 휴무 대체 알바로 시작해보지 않겠냐고. 일주일에 하루만 나와도 된다고 하셔서, 그럼 학교 다니면서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계속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많이 할 때는 한 달에 이틀 쉬고 일을 했죠.”



-비정규직 청년 여성으로 노동을 하시면서 느낀 점들이 있으시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까, 이게 내 본격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을 했어요. 일상의 대부분을 일을 하면서 보내니까, 굉장히 큰 부분이잖아요. 그런데도 의식적으로 ‘이것이 내 직업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돈벌이를 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나의 단일한 직업이라고 하기엔 내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고. 내 삶을 전부 올인해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면서 생각해 봤는데, 이게 비정규직이라서 그런 건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을 시작했다고 하셨잖아요. 별도의 교육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단기 교육을 이수해야 사원증이 나와요. 그리고 오래 근무를 하면 장기 교육을 따로 들어야 해요. 이수를 안 하면 직원 카드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직원 카드는 식대를 지원해 주는 건 아니고, 직접 충전해서 먹는 시스템이에요. 장기 교육은 따로 교육장에 가서 듣게 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교육을 듣는데 솔직히 내용은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예를 들면, 진상 고객을 만났을 때 대처법. ‘내가 아니었어도 저 고객은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신승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웃음) ‘진상 손님이 오면 업체에서 이렇게 대처해 주겠다’가 아니라. 이걸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죠. 그리고 매장 내부에서도 별도로 교육을 해 주는 게 없어요. 와인은 알아야 팔 수가 있잖아요. 공부를 안 하면 팔 수가 없는 거죠. 보통 추천을 받아서 구매를 하시니까. 집에 가서 혼자 공부하고, 쉬는 시간마다 품종 찾아보고, 책 보고, 지인들한테 조언도 받고, 사서 마셔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별도의 매뉴얼이나 보호 대책은 없었던 거네요.


“너무 심한 진상 손님이 오면, 직원에게 말하면 처리하겠다고 말은 해요. 하지만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는 건 전데, 그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거죠. 실제로 물리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백화점에서는 일을 크게 키우지 않으려고 해요. 매니저 통해서 ‘니가 신고를 하는 걸 말릴 수는 없겠지만, 꼭 해야겠니?’ 이런 식으로 회유를 하고. 명찰을 보고 ‘너 집이 어디야. 나 이 동네 사니까 두고 보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가는 손님들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것에 대해서 백화점이 해 주는 건 없죠. 정규직이면, 피해를 당했을 때 그걸 논의할 기구가 있을 거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할 텐데. 알바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니까요.”



-다양한 업체들의 직원들이 모여서 한 매장에서 근무한다고 하셨잖아요. 내부에서의 경쟁도 되게 심했을 것 같아요. 


“와인샵이 특히 경쟁이 심해요. 바쁠 땐 지옥. 정말로. (웃음) 처음에 갔을 때 되게 많이 울었어요. 백화점 와인 존을 생각해 보시면, 들어오는 입구에 나무 상자(벅)가 깔려 있고, 진입로가 여러 개라서 여러 통로로 들어올 수가 있잖아요.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는 매니저들이 앉아 있어요. 손님이 들어오면, 이제 그 매니저들 중에서 누가 저 손님을 응대할지를 골라야 하잖아요. 응대는 우리 업체의 와인을 팔 수 있는 기회니까 꼭 잡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응대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매장마다 달라요. ‘인사제’와 ‘순번제’가 있어요. 제가 있던 지점은 인사제였어요. 5명이 업체별로 서서 저희들만의 선을 정해요. 예를 들어서 ‘빨간 모자를 쓴 남자’가 그 선을 지나간다, 그러면 저희만 들리게 ‘안녕하세요. 빨간 모자 남자.’ 이렇게 무조건 다 말을 해요. 그렇게 제가 말을 했는데 그 손님이 들어온다, 그럼 그 손님을 제가 응대하는 거죠. 그래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돼요, 하루 종일. ‘안녕하세요, 안경 여자.’ 이렇게 여러 명이 말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럼 뽑기가 있어요. 손님들에게 안 보이게 저희끼리 뽑기를 해서 응대를 나가요.”



-이런 시스템이 있는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네요. (웃음) 


“예를 들어서, ‘딱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온다. 그래서 ‘안녕하세요, 회색 넥타이 남자.’이렇게 인사를 했어요. 그 사람이 진짜 들어오면, ‘너 어디서 인사했어? 내가 빨랐어.’라고 하거나 ‘너 금 넘기 전에 인사했잖아. 너무 빨랐어.’ 이렇게 손님을 채가죠. 무서워서 작게 말하면 들리게 하라고 혼내고, 크게 하면 자기들끼리 비웃고. (웃음) 이 동선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가 있으니까, 계속 돌아보면서 인사를 해야 하잖아요. 내가 인사를 못 했는데 남이 하거나, 내가 했지만 뽑기에서 졌거나 한 상황에서, 그 뺏긴 사람이 비싼 와인을 사 가면 이제 눈치가 보이는 거죠. 나중에는 순번제로 바뀌었는데, 업체별로 서서 돌아가면서 응대를 하는 거예요. 손님이 우리 업체 와인을 사 가면 저는 나가고 다음 사람이 서고. 저희 업체 걸 안 사 가면 다시 순번을 서고. 손님이 없을 때는 두 시간씩 서 있어요. 진짜 고문이죠. 그리고 단골 시스템이라는 게 있어요. 단골을 지키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 손님 우리 단골인데 왜 너네가 응대해?’ 이러면서 싸우기도 해요.”



-백화점 판매직은 대부분 여초잖아요. 그런 만큼 꾸밈 노동을 강요하는 곳들도 많고요. 꾸밈 노동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없으셨나요?


“처음에 지원을 할 때, 인력업체에서 얼굴이랑 전신사진을 보내라고 해요. 그렇게 해서 매니저 마음에 들면 뽑히는 거죠. 복장 규정도 있어요. 상의는 무채색 블라우스에 까만 재킷, 하의는 슬랙스. 신발은 로퍼나 까만 운동화. 매니저들은 복장 규정을 자유롭게 해석해서 입고 다니는데, 알바들한테는 참견을 많이 하죠. 블라우스, 바지 색 지적하고. 그런데 같은 옷을 입어도 시간이 지나서 경력이 쌓인 알바한테는 아무 말을 안 해요. (웃음) 초반에는 렌즈 끼고 풀 메이크업하고 갔는데, 적응되면서는 복장 규정에 어긋나지만 않게 하고 다녔어요. 안경 쓰고, 편하게. 그러면 백화점 정규직 직원들이 와서 ‘여기는 복장 규정이 어떻게 돼요? 이래도 되나?’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을 하고 가기도 해요.”



-일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와인이, 한 병을 드는 것도 힘든데 나무 상자 하나에 12병씩 들어 있어요. 그래서 엄청 무거워요. 세트로도 판매를 하는데, 주문이 한꺼번에 여러 건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몇백 세트가 한 번에 들어올 때도 있고요. 그러면 한 2주 동안 그 업무에만 매달리는 거죠. 표를 짜서, 어떤 건 포장을 했고, 어떤 건 배송 나갔고, 송장을 붙였고, 어떤 건 송장을 받아야 하고, 물건 발주를 넣고, 물건이 없으면 고객님한테 연락을 해서 다른 걸로 대체해도 되는지 확인을 받고…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밤 12시까지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와인 박스를 들 때는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옮겨야 하잖아요. 그게 습관이 됐는지, 어느 날은 자다가 꿈에서 그 동작을 했는데 벽에 팔을 부딪혀서 잠에서 깼어요. 하루 종일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서 잠에 잘 못 들어요. 그래서 겨우 잠들었는데 그렇게 깬 거죠. 그 날은 너무 서러워서 새벽에 혼자 울었어요. 물론 ‘너 이렇게 안 하면 너는 잘리고, 인생 끝이야.’ 이렇게 말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하다 보면 또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습관이 되더라구요.”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이 끝이 없이 나오네요. (웃음)


“그리고 나이 위계 같은 것도 심했어요. 다른 업체 매니저님이 계시면 인사를 해요. 그러면 못 들은 척하고 본인 할 일을 하세요. 그래서 저는 ‘아, 인사받는 걸 싫어하시나?’ 하고 인사를 안 했죠. 그랬더니 이제 싹수없는 애로 소문이 나고. (웃음) 나중에는 악착같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혼나는 시스템도, 다이렉트로 말하지 않아요. 제가 휴무인 날에 매니저나 직원한테 ‘야, 너네 알바 교육 똑바로 시켜.’ 이렇게 말을 하고, 저는 나중에 혼나고. 그리고 같은 알바더라도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못하면 저를 불러요. ‘너희 알바들 정신 똑바로 차리게 안 할래?’ 이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같은 알바인데요.’라고 하니까 ‘알바여도 네가 선배잖아.’라고… 이게 일상이었어요. 


그리고 처음에 제일 충격을 받았던 건 손님들에 대한 품평이었어요. ‘저 사람 옷 입은 거 봤어? 뚱뚱한 거 봤어?’, ‘쟤네 레즈비언이잖아.’ 이런 식으로 품평하는 게 너무 당연한 문화였어요. 저는 알바니까 발언권이 없고, 그런데 동조하기는 싫으니까, ‘아 그래요? 못 봤어요.’ 이렇게 답하고 뒤에서 욕했죠. (웃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가도, 그 안에서 일을 하다 보면 동화된다는 게 느껴져요. 그런 걸 자각할 때마다 아, 빨리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사실 백화점에 있으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응대하도록 훈련이 돼요. 많이 살 것 같은 사람한테 응대하라고 가르쳐요. 저 사람 돈 많이 안 쓸 것 같으면 그냥 보내라고. 그런데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한테.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러고 있는 거죠. 딱 봐도 처음 사는 사람, 살 것 같은 사람이 구분되고. 나중에는 저도 익숙해졌죠. 거기에 익숙해져야 살아남으니까.”



-그래도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근무를 하셨잖아요. 거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 일을 계속하지는 않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일을 했어요. 매장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만 고민하고. 그런데, 결국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만 지낼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키지 않은 일을 사서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여러 업무를 해내면서 일을 마쳤을 때 성취감도 있었고요. "아, 살았다.” 이런 느낌. (웃음) 극한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직원들과 전우애 같은 게 생기기도 해요.”



-처음에 와인샵에서 일하게 된 건 일종의 우연이었다고 하셨는데, 와인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없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알바생들이나 직원들을 보면서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계질서나, 평가와 지적이 일상인 문화라 직원 개인이 싫었던 적은 많지만 (웃음) 그것과는 별개로, 와인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와인을 좋아하는 부분들은 멋있더라구요. 신혼여행 코스에 와이너리 투어를 넣는 분도 계실 정도로. 와인 샵의 직원들은 어쨌든 와인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랬고요. 


백화점이라는 소비 공간, 와인이 지니고 있는 사치재로서의 성격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와인을 계속 접하고, 공부하는 순간들이 좋았어요. 회식을 할 때면 어떤 와인을 마실지 먼저 고르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테이스팅 할 와인을 같이 사서 마셔 보고, 진지하게 테이스팅 노트를 공유하고. 이럴 때 즐거웠어요. 그리고 판매직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손님과의 관계가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나를 찾는 손님들, 내가 추천해 준 와인이 맛있어서 다른 와인을 또 추천받고 싶다는 손님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죠. 솔직히 그분들이 매출을 올려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와인을 마시는 기쁨을 저처럼 느끼기를 바라면서 추천을 하게 되는 때가 많았어요.”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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