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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2. 2020

자리는 대체할 수 있지만,
사람은 대체할 수 없잖아요

스물두 번째 소란 2부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인터뷰. 태린-A



스물두 번째 소란의 주인공은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을 경험해 온 A님. 스물두 번째 소란은 1부, 2부로 나누어 A님이 경험해 온 일들 중 일부인 ‘와인샵 아르바이트’와 ‘장애인 활동지원사’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일에 어떤 접점이 있느냐는 의문이 들 지도 모른다.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 일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이면서도 ‘내 정체성’이라고 말하기에 망설여지는 일이라는 것. A님과의 인터뷰 2부에서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로서의 노동 경험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장애인 활동지원’과 ‘장애인 단체에서의 근로지원’에 대해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활동지원사가 하는 일은 스펙트럼이 엄청 넓어요. 장애인과 시간을 같이 보내며, 그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말 그대로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에요. 장애 유형에 따라 신변 관리부터, 가사노동 조력, 이동 지원, 대소변 처리, 식사 돕기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원래는 ‘활동보조’라고 했었는데요, ‘보조’라는 말 대신 ‘지원’이라고 사용하고 있어요. 근로지원인은 장애인 활동가들의 활동에 따라, 업무 내용 안에서 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활동지원사 같은 경우는, 제가 광화문역을 자주 지나다니는데,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을 하시는 걸 봤어요. 되게 오랫동안 계셨잖아요. 그래서 다른 일로 집회를 하러 갈 때도 거기에는 신경을 못 썼어요. 너무 익숙하니까. 아, 항상 계시나 보다. 영정사진들이 있으니까, 아 사람이 죽는 문제인가 보다, 하고. 장애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저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 동정이나 시혜는 별로인 것 같은데. 어떻게 대하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 정도의 관심만 있다가, 나중에 어떤 책을 읽고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데 사실 그런 걸 공부를 한다고 해서 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나랑 맞닿아 있는 관심사가 되려면, 주변에서 직접 만나 보는 게 중요하겠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활동지원사를 한 번 해 볼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 어느 날 할머니 댁에 갔어요. 할머니가 초기 치매이신데, 할머니랑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거예요. ‘아 맞다, 나 활동지원사 해 보려고 했었지?’ 원래는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를 해 주시고 그랬는데. (웃음) 지금은 내가 밥도 해 드려야 하고, 빨래도 해 드리고, 목욕탕도 가자고 말을 해야 하고. 그런 게…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습은 공부보다는, 실생활에서 할 수 있겠다. 그런 걸 어디서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바로 활동지원사 교육을 해 주는 단체를 찾아서 교육을 신청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으시고, 바로 일을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교육을 다 받고 나서, 제가 사고 때문에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수료증을 받으러 가기가 너무 귀찮더라고요. (웃음) 하루 날을 잡고 수료증을 받으러 갔는데, 거기가 수료 기관이면서 동시에 활동지원사 매칭을 해 주는 자립생활센터이기도 했어요. 직원 분이 ‘이거 수료증 받아서 진짜 일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수료증만 받아가는 학생들이 많으니까. 저는 진짜 일을 할 거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그럼 초등학교 4학년 남자 학생 어떠세요?’라고 바로 매칭을 해 주시더라고요. 일을 바로 시작할 수는 없고 한 2주 뒤 정도부터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일단 알겠다고. 그런데 계단 내려가는 사이에 전화가 와서 내일 어머님 아버님 만나기로 했으니까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해서 그 다음날 바로 일을 시작했죠.”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교육 40시간에 실습 10시간을 이수하면 돼요. 별도로 시험을 치지는 않고요. 사실 이 실습이… 센터에서 장애 당사자분께 일방적으로 조르는 거죠. 실습하게 해 달라고. 저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언니와 실습을 했는데,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정도…(웃음) 교육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대학교 수업에 개설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배웠죠. ‘장애인은 불쌍하다’고 교육을 받아 왔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장애 의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당사자 활동가 분들이 설명을 많이 해 주셨어요. 기본적인 것, ‘장애우라는 말 쓰지 마세요’ 이런 것부터, 장애인 운동의 역사와 맥락, 탈시설 같은 것들. 각각의 소수자 운동은 각자의 맥락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가 가진 정체성이 아닌 경우에는 잘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걸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나요.”



-피플퍼스트센터에서 비장애인 활동가, 즉 근로지원인을 '조력자'라고 칭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이는 활동 지원이 단순히 '도움을 제공하는 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호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사나 장애활동가의 경우,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우리 사회는 그러한 일들을 '노동'보다는 '봉사'라거나, '좋은 일'이라고 칭하고요.


“저는 활동지원사도 경험을 해 봤고, 근로지원인으로도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활동지원사같은 경우는 ‘보조’에서 ‘지원’으로 단어를 바꾸기는 했지만 여전히 돌봄을 제공하는 보호자 느낌이 강하죠. 하지만 피플퍼스트센터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고 평등을 지향해요. ‘조력자’라는 말을 장애계에서 많이 사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단순히 도와주는 것을 넘어 같은 사회 시민으로 인정하기 위한 말이니까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일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활동지원사와 장애 당사자 간의 위계도 존재해요. 위계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일 한다는 말’을 저는 정말 싫어해요. ‘돈은 안 되지만 너는 장애인을 도와주니까, 착한 일 하네’ 이런 시선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변호사나 의사한테 그 말을 하진 않잖아요.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돌봄 노동을 가정, 특히 가정 내의 여성 구성원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을 설계할 때부터 여성 노동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져요. ‘돌봄’ 을 제공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전문적인 교육이 부재해요. 개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요. 교육을 받긴 하죠. 그런데 기업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의 전문성을 확장시키기 위한 공부 비용 지원이라거나, 재교육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활동지원사는 그런 게 없어요. 장애 유형이 되게 다양하잖아요. 근데 그냥 ‘가서 해 보시면 알아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잘 돌보면 된다. 이렇게 시작을 하죠. 중장년층 여성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들이 과거에 했던 돌봄 노동 경험에 기대는 거죠. 그런데 또 그걸 커리어로 인정하지도 않아요.”



-그럼 어떠한 방식으로 개선이 되어야 할까요?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거나, 호봉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요구는 사실 좀 평면적인 거고. 직업, 커리어로 인정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중복장애를 지니고 있는 장애 당사자다, 그러면 특수한 상황인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돈을 더 지불해 준다거나, 이런 게 없죠. 장애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나 전문가 교육 등이 전혀 없고요. 그냥 본인이 알아서 장애 관련 지식 알아보고, 보호자가 정보 공유해주는 거 받고, 스스로 일지 쓰고 그래요. 추가 노동하는 것도 급여로 환산은 안 해주고, 어떤 지원체계도 없고, 힘들면 관두는 수밖에 없어요. 이 직업을 상상할 때… 그냥 ‘장애인 한 명 돌봐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요양보호사 직군도 마찬가지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여성노동,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가 다시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장애에 대한 인식도, ‘죽일 수 없으니 살려둔다’는 식이 아니라, ‘어떻게 같이 살 것이냐’를 생각해야 활동지원사에 대한 시스템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복잡한 문제죠.”



-청년 여성이 흔치 않은 영역이잖아요. 사람들의 시선은 어땠나요?


“흔하지 않으니까 환영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활동 지원을 했던 친구는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가정부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긴 했어요. 가정부가 나쁜 건 아닌데, 그 질문에 담긴 의도나 시선이 있잖아요. ‘애 보는 사람’이라는 편견. 그리고 봉사활동하는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기도 하고, 젊은 여자가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죠. 좀 어려웠던 부분은, 매칭 된 아이가 남자인데, 점점 자라니까 동성의 활동지원사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당사자분들도 남녀 활동지원사를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같은 말도 남성 조력인이 하면 잘 먹히고, 힘이 세서 제압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그런 것 때문에 일을 그만두면서 남성 활동지원사를 이용하시는 게 낫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일 하시면서 겪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2년을 같이 생활했으니까, 헤어질 때 힘들었어요. 일을 할 때 동선을 최대한 길게 했거든요.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니까. (웃음) 그런데 집중력이 짧으니까, 30분 걸려서 카페를 가도 음료 다 마시면 10분 만에 가자고 하고 그래요. 좋아하는 박물관이 있는데, 한 시간 동안 가서 10분 만에 보고 나오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케이크, 식당 등등 사소한 것들이 다 기억에 남았어요. 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나의 직업이었으니까.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요. 진심이 있어야 하잖아요. 활동지원사는 그 진심이 극대화되어야 하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과 만나서, 나와 보낸 시간이 행복할 수 있을지를 총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일을 관둔다는 건 관계를 끝맺는다는 거여서, 그게 좀 힘들더라구요. 지금도 완전히 연락이 끊긴 것은 아니고 종종 부모님이랑 연락을 하긴 하거든요. 매일 보던 사람을 갑자기 못 보게 되어서 애인과 헤어진 것 같았어요. (웃음) 사람의 마음과 관계가 다 그런 것 같아요. 그 친구랑 관계를 맺으며 만든 약속과 소통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최근에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가서 <길가의 풀>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보면서 두 시간 내내 울었어요. 영화를 보며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엄청 울었어요. 영화 내내 ‘길’이 나오거든요. 길이 내가 일했던 장소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헤어지는 과정 중에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요.”



-2부에 걸쳐 소중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는 알바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평생 할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고요. 그런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아요. 어떻게 돈벌이를 해야 하는가, 이건 정말 평생 동안의 고민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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