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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29.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바꾼다 (2부)

스물세 번째 소란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게 활동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태린-유니브페미 승연,진서



23번째 소란의 주인공은 ‘유니브페미’의 활동가 승연과 진서. 유니브페미는 2019년 출범하였으며,대학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연대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이다. ‘마녀행진’, ‘F5 프로젝트’등 성평등한 대학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운동’은 아직까지 ‘자원봉사’와 동일한 단어로 해석되곤 한다.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그 가치는 어떻게, 어떠한 기준으로 책정될 수 있을까? 대학생이자,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그들과 함께 ‘활동’과 ‘노동’의 경계, ‘지속 가능한 활동’의 가능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대학에서 운동을 하는 분들의 가장 큰 적은 ‘에브리타임’* 아닐까 싶어요. 올해 가장 큰 사업으로 하고 계신 것이 에브리타임 혐오표현 대응 프로젝트, ‘F5사업’ 이잖아요. 그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 에브리타임 : 대학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학생들의 가장 큰 소통 창구로 이용되고 있지만, 익명으로 운영되고 별도의 혐오표현 제재가 없어 사이버불링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진서: 에타의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게 대학 페미들의 숙원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용자들이 감수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우리는 공동체고 누구도 혐오/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것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학교도, 이 플랫폼도 공범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큰 사건이 있으면 신상 털고, 때려 죽이겠다 이런 걸 당당하게 올리고, 난리가 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그런데 문제는 최근 몇 년동안 학교 안에서 페미니스트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거예요. 특히 총여학생회 폐지가 마치 에타 내 혐오자들에게는 어떤 승인으로 받아들여진 거죠. ‘총여는 민주적으로 폐지됐다. 그러니까 페미도 금지, 우리는 합법이다.’ (웃음) 저희가 학교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이 문제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발화자 개개인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그 발화들을 관리하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거였어요. F5 프로젝트는 학교 당국의 책임, 플랫폼의 책임을 좀 더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 속에서 시행이 되고 있고,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과연 이게 5개월 했다고 끝날 일인가. 이거 한 10년은 더 잡고 가야겠는데, 이런 생각도 요즘 하고 있고.. 낙태죄도 헌법불합치 판결 받는 데 수십 년이 걸렸고, 차별금지법도 발의되기까지 십 년이 걸렸는데, 혐오표현 처벌법까지 가려면 최소 1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 활동가들은 너무 쉽게 비난에 노출이 되잖아요. 도덕성에 대한 잣대도 가혹한 편이고요. 그런 반면에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은 전혀 존재하지 않죠. 이게 지속가능한 활동을 막는 큰 장벽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한 활동은 가능한 것일까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승연: 이번에 정의연 사태를 보면서, 비판 혹은 성찰할 지점들과 더불어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이 사회가, 활동가들이 온당한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을 엄청 나쁜 일로 생각하는구나. 임금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논란이 있길래 봤더니 딱 최저임금이더라구요. 그럼 활동가들이 가난하게 일하는 게 당연한 건가 싶었어요. 여론이 활동가들을 이중적인 억압에 가둬 두는 것 같았어요. 성역화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최저임금만큼만 받아도 돈 많이 번다고 뭐라고 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는 운동을 굉장히 불온한 것으로 후려치고..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서는 이런 여론도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늘 직면해야 하는 상황들이 활동가들을 굉장히 지치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외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진되지 않는 것. 이미 너무 적은 인원들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보니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진되기 쉬우면서도, 자기자신에 대해 신경 쓰기 어렵죠. 스스로를 보전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이상 활동을 지속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속 가능한 활동’이 불가능하느냐고 하면, 지금까지 다들 잘 지속해 왔지않나? 싶기도 하고. (웃음)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좋은 여건 덕이 아니라 활동가 개인들의 의지와, 오기, 각오로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워요. 


진서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무슨 일을 하든 돈과 사람이 없으면… 지속 가능성이라는 건 말도 안 되죠. 그런데 우리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잖아요. (웃음) 요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사회운동이 ‘대의’와 ‘정의감’으로 상징되는 이유는 이것이 일반 다른 직업과 다르게 돈을 벌기에 애매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보통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는 돈을 벌려면 일을 하고 생산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나의 노동을 쏟아부은 결과물이 나오고, 이게 사용가치를 통해 자본과 교환되고. 그런데 사회운동에서 생산되는 결과물은 무엇이며, 내가 지금 투여하고 있는 이것이 과연 노동인가? 지금의 체제 속에서는 설명이 안 되죠. 그렇기 때문에 ‘대의’라는 말로 포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 체제 안에서, ‘인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한다’ 이 명제에서 사회운동은 엄청 벗어난 것 같잖아요. 돈을 못 버니까. 그러다 보니 계속 ‘대의’로 포장돼서, 이건 대의로 하는 거야. 돈의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데. 사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돈의 문제가 아닌 게 있나요? 그러면서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돈 보고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생각하고. 


사회운동을 평생 하겠다고 선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물론 뭐든 평생 하겠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지만. 사회운동 같은 경우엔 좀 더 대단한 결정처럼 느껴지고. 와,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겠구나! 라고 하는데, 저는 뭐… 한 5분 고민했나? (웃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 경제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활동가’로 산다는 결정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본이 보장되지 않는 삶’이라는 게 지속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트리니까. 



- ‘활동’이 본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서: 처음에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알바노동 경험을 얘기해야 하나? 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아르바이트를 해 봤거든요. 토익 과외 같은 것도 했었는데. 그러니까, 계속 재게 되잖아요. 내가 사회운동 안 하고 토익 과외를 계속 해서 과외의 신이 되는 거죠. 유명해지고 돈을 엄청 버는 거예요. (웃음) 첫 번째가 그런 삶. 그리고 두 번째는, 계속 운동에만 매진했는데 유니브페미가 망해 버리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뒤돌아보니 폐허만 있고 돈은 없고. (웃음) 


두 가지를 비교했을 때, 필연적으로 후자로 끌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운동 밖의 삶이 다 20대 여성인 저에게 너무 적대적인 거에요. 학원, 식당, 술집 그 어떤 공간도 20대 여성인 저를 존중해주지 않고. 그런데 그건 제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여태까지 만들어진 공고한 차별들, 혐오들, 인식들, 관습들 때문인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이 너무 필요한 거죠.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한테는 그 공간이 여성주의 운동이었던 거고. 물론 여성주의 운동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고, 많은 문제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하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있는 일을 한다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도 사실 정말 멍청한 결정이다 싶을 때가 있어요. 상근비 한 달에 40만원 받는데 이게 뭐가 좋다고…. (웃음) 하지만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게 활동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의 언어로서 바라볼 때, 사회운동이라는 건 정말 비합리적이고 무용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오래된 언어 망 바깥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이 활동이라는 게, 여태까지 저의 삶을 지배하던 강력한 언어를 바꿔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가겠어요. 어쨌든 같이 하는 사람들은 나의 문법에 동조해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내 편인 사람들과 노는 거죠. 


승연: 대학 입학 전에 학원에서 알바를 했거든요. 같이 일하던 과장 선생님이 “대학 들어가면 사회 운동하는 애들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런 애들이랑 엮이지 마.”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 저도 당연히 사회운동은 나랑 연관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발을 잘못 들여서 운동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한 거죠. 진짜 저는 모르고 들어왔어요. 공부한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웃음) 


사회운동은 언제나 권력과 권위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서 저에게 늘 가르치려 들던 사람들의 태도가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나이가 많고 돈을 준다고 해서 그럴 자격과 권리는 없다. 이런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불편한 것도 많아지게 됐고, 활동을 하면서 돈도 잃고 기존의 인연들도 좀 잃었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제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깨달음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 대한 균열. 시각과 프레임이 완전히 바뀌다 보니, 삶과 세계 자체가 뒤바뀌는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시대가 바뀌어 가는 흐름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 활동을 통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진서: 저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 단순히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욕을 먹지 않는다, 이런 차원을 넘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검열당하지 않는 세상이요. 제가 성격도 더럽고 말도 싹수없게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랑 좀 달라요. (웃음) 그러면 “야, 너는 운동 한다는 애가 왜 그러냐?”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또 화장을 할 때는 “페미니스트가 왜 화장을 하냐”는 이야기를 듣고, 화장을 안 하면 “너는 그래도 단체 대표로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는데 좀…” 이러거든요. 어쩌라고! (웃음) 그냥 제가 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승연: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진정한 토론이 가능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돌봄이라는 것의 가치가 너무 폄하되어 왔잖아요. 특정 누군가가 하는 일로 오랜 시간 자리 잡아왔고, 그게 차별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국 돌봄이란 것은 모두가 모두에게 주고받아야 하는 활동이니까요. 


두 번째는 F5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많이 느낀 건데, 사실 지금 이 시대는 ‘토론’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 공간을 공론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오히려 비하, 혐오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죠. 토론이 가능하려면, 진서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누군지 밝혀도 공격받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거나, 자신의 어떤 정체성을 밝혔을 때 그것을 무기 삼아 공격하고, 대화를 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죠. 


어쨌든 우리는 이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잖아요. 제도만으로는 사회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요. 인식이 바뀌려면 많은 논의와 토론들이 지속돼야 하니까, 토론은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게 불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라는 고민을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 동료 활동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진서: 저는 상당히 외향형 인간인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나서 좀 힘들었어요. 사실 운동도 사람 보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나누고 말을 나눌 수 있을지,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 나누는 것들을 다시 언제쯤 할 수 있을지… 좀 암울해지네요. 


우리가 어떻게 같이 이 시간을 견뎌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활동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텐데. 그렇기에 좀 더 넓은 폭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여태까지 만난 적 없는 잘 모르는 단체라도 이야기해보고 뭔가를 같이 해보려는 과감한 시도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다른 활동가 분들, 유니브페미에 많은 제안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웃음) 


활동가로 산다는 건 코로나 시대가 아니더라도 힘들고 외로운 일이죠. 결국은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워라밸을 위해 주말에는 일 시키지 맙시다. (웃음) 우리가 살아남아야 운동이 남으니까요. 너무 소진되어 우리가 남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운동해주지 않습니다. 


승연: 활동이라는 것이 늘 의심과 번뇌의 연속이잖아요. 내가 하고 있는 혹은 우리 단체가 하고 있는 것이 최선일까, 이게 맞는 길일까 라는 의심들이 계속되고, 결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을 때 그런 의심들이 더 많이 들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요. 많은 책임과 부담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자신과 동료들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해요. 물론 의심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좀 더 믿고, 우리 단체와 사랑하는 동료들을 믿으면. 적어도 더 오래 할 수 있겠죠. 그만큼 분명 언젠가는 원했던 결과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드시겠지만 좀 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신 말고 나와 너에 대한 믿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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