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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r 08. 2021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왜 내가 선택할 수 없나요

스물네 번째 소란

싸우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24번째소란

#여성노동 #비정규직 #코로나19 #해고 #휴업수당 #직장갑질119 #근로기준법 #휴게시설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일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하며, 이는 시간선택제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 ‘당연한’ 규정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당연하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몸을 쉴 공간조차 제공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휴게 시간은 ‘눈치 보이는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이후 이러한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정당한 휴식’을 요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우리 모두 어렵잖아” 라는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노조 밖,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는 ‘무급휴직 면허증’, ‘불법노동 면허증’”이 됐다. (직장갑질119)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일터에 존재한다. ‘#24번째소란”에서는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로 ‘연대’를 꼽은 오니스의 노동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온 오니스라고 합니다. 의류매장, 카페, 유치원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한 적 있고, 단기 알바로 화장품 공장, 물류센터, 드럭 스토어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해오셨네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처음 일했던 곳은 대형 SPA브랜드 매장이에요. 의류 판매하고 손님 응대, 청소, 옷 정리 등의 일을 했어요. 가장 이해 안 되고 힘들었던 게, 일을 하면서 절대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엉덩이가 땅에 붙어 있으면 안 되고, 벽 같은 데 기대는 것도 안 됐어요. 일할 때 무전기를 차고 일하는데, 직원들은 CCTV로 파트타이머들 감시하고, “00씨, 지금 거기 있지 말고, ㅇㅇ존으로 가서 다른 일 하세요.” 이렇게 무전으로 지시했어요. 쉴 때는 직원 휴게실에 가서 쉬었는데 엎드리거나 누워서 쉬면 안 되었어요. 쉴 때도 자유롭지 못했죠. 그나마 좋았던 점은 분 단위로 근무시간을 계산해서 돈을 정확하게 줬다는 거예요. 보통 다른 곳은 정해진 근무 시간 전후로 10분, 20분 더 일하고 돈 안 주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여기는 더 일한 만큼 돈을 줬어요. 식대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 돈을 잘 준 편이죠.



- 아무래도 의류 매장이다 보니까 용모 관련 규정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매뉴얼이 있는데, 성별 이분법에 기반한 시대착오적인 내용들이었어요. 지점마다 다른데,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점장님이 ‘여자분들 화장하셨나요?’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여자는 머리가 어깨 선을 넘어가면 무조건 묶어야 했고요. 신발 앞 코도 항상 닦아서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고, 반바지나 찢어진 청바지 착용도 안 되었어요. 그런데 해당 브랜드 반바지나 찢어진 청바지는 허용됐어요. (웃음)”



-다른 곳들에서의 경험도 궁금해요.


“가장 최근에는 유치원 데스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회계 장부 정리나 전화 응대 등의 일을 했어요. 거기도 따로 휴게 공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숨어서 쉰 적도 있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의자나 불 꺼진 놀이방에 앉아서 잠깐 쉬어야 했어요. 정해진 휴게 시간도 없었고요. 거기는 정직원과 비정규직 차별이 심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정직원 선생님이 출근하고 나면 데스크에 있을 자리가 없어서 알아서 돌아다니며 일하거나 아이들이 앉는 의자에 쪼그려 앉아서 대기해야 했고, 보조 교사나, 버스 등하교 담당하시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주휴수당을 못 받았어요. 한창 코로나가 확산되던 시기라 유치원이 휴원과 개원을 반복했는데, 비정규직 선생님들에게만 무급휴직을 강요하기도 했어요. 사용자 사정으로 휴업을 하면 평균임금의 70퍼센트를 휴업수당으로 줘야 하잖아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잘 몰라서 혹은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 하는 거죠. 코로나19로 모두가 고난을 겪었지만, 고통의 최종 종착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까웠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노동은 무엇이었나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이 컸던 지역에 있는 카페에서 일했었어요. 힘든 시기에 구한 일이라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결국 부당하게 잘렸어요. 이 얘기는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할게요. 여기는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 안 되는 곳이었어요. 직원 휴게 공간이 없어서 매장 외부로 나가서 쉬어야 했어요. 거기 앉아서 빵 먹는게 식사였어요. 매장에 손님이 없어도 매장 의자에 알바생은 절대 앉을 수 없었어요. 또 물류창고 겸 탈의실이 매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왕복 이삼십 분은 걸렸거든요. 창고에 환복하러 간 김에 일을 더 시키기도 했고요. 그런데 환복 시간을 근무 시간에 포함하지 않았어요. 이 부분을 문제제기 했더니 ‘어쩔 수 없다. 그건 당연한 거다’라고 답하더라고요. 일할 때 알바생은 휴대폰 금지에, 조리실은 에어컨이 없어서 조리실 사람들은 37도의 더운 환경에서 일했어요. 나중에는 코로나로 경영사정이 어렵다며 부당하게 자르고 줘야할 휴업수당도 안 줬어요. 부당해고를 당한 거죠.”



-코로나19로 인해 부당해고가 정말 만연하게 발생했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고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아까 말한 카페에서 일할 때였어요. 거기는 3개월 단위로만 계약을 했어요. 해고하려면 30일 전에 알려주거나 해고예고수당을 줘야 하는데, 일한 기간이 3개월 미만이면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게 하려고, 3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거기서 일하는 10명 넘는 파트타이머가 일주일만에 다 잘렸어요. ‘사정이 어려워져서 다음 주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면 오고, 아니면 그만둬라’ 이런 식으로 통보하는 거예요. 그런데 먼 곳에서 일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한 두시간 일하려고 출근하는 건 시간도 많이 들고 교통비도 들고 그러니까 손해인 거죠. 아, 모집 공고에는 교통비 지원한다고 해 놓고 나중에 안 준다고 말을 바꾸더라고요. 항의하니까 그제서야 조금 줬고요.


 제가 처음에 해고 소식을 알게 된 건 일 한지 한 달 반 되었을 때, 다른 파트타이머 분을 통해서였어요. ‘혹시 오니스님도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는 연락 받으셨나요?’고 하시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출근했더니 지금 매장 상황이 너무 안 좋고, 적자라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다고… 막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완전히 해고는 아니고 계속 대기를 하라는 거예요.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출근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그래서 휴업수당 받을 수 있는지 점장님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파트타이머는 자기 편할 때 나와서 일하는 거니까 적용이 안 된다고 막 우기는 거예요. 아르바이트생도 엄연한 노동자로서 생계를 걸고 혹은 다른 이유로 일을 하며, 어떤 이유로 노동을 하든 법의 보호를 받아 마땅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시니 너무 기분 나쁘더라고요. 그래서 본사에 문의해보라고,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알아보겠다고 하셨어요. 또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고 싶은지도 물어보시고, 휴업수당 줄 것처럼 이야기하시고는 그 뒤로 한참 연락이 없으셨어요.”



-정말 전형적인 형태의 부당해고네요. 법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그렇죠.  한참 무기한 대기상태로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기관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봤어요. 노동청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점장님한테서 퇴사 서류를 작성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상황 나아지면 다시 일하게 해주는 거 아니냐고, 휴업수당은 어떻게 되었냐고 하니까, 계약기간이 2주 남았는데 그럼 지금이라도 일하러 오겠냐고 또 말을 바꾸는 거예요. 무기한 무급 휴직에 문제를 제기한 저를 어떻게든 내쫓으려 그런 거죠. 결국 ‘직장갑질119’ 라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어요. 그랬더니 또 연락이 와서는 저한테 원하는 금액이 얼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휴업수당 계산한 대로 말했더니 그 정도는 어려울 것 같고 본사에서 다시 제시하겠다, 처리하는데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한달 동안 수입 없이 싸우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휴업수당에 못 미치는 돈을 합의금으로 받고 신고를 취소했어요. 저를 도와주신 상담사분이 좀 기다리면 더 받을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만 저는 너무 지친 상태라서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회사로부터 계속해서 연락을 받는 것도 부담이고 힘들었구요.


 거기서 저를 뽑을 때는 이미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채용을 계속했죠. 그러다 갑자기 다 나오지 말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맘대로 갖다 썼다 맘대로 잘라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랬겠죠. 화나고 아쉽기도 했지만, 직장갑질119 라는 단체에서 도움을 줘서 큰 힘이 되었고 정말 감사했어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알려주시고 상담도 친절하게 해주셨거든요. 이후에 저도 그 단체를 후원했어요.”



-많은 힘든 일들을 지나오셨네요. 그럼에도 일을 하면서 기쁘고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의류 매장에서 일할 때, 손님에게 응대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해달라고 하고 실적에 따라 포상을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제가 우수사원에 선정된 적이 있어요. 제가 응대한 고객님이 저를 칭찬하는 글을 쓰셨고, 그 글이 직원 휴게실에 붙었어요. (웃음) 그렇게 업무 능력을 인정받을 때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또 유치원에서 일할 때 아이들이 저를 기억하고 인사할 때도 기뻤고요.”



-소중한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생각보다 주휴수당, 휴업수당을 안 주고, 휴게 공간 안 갖추는 등 법을 안 지키는 사업장이 많아요. 이런 권리들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그냥 넘어가는 노동자도 많고요. 하지만 이런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고, 싸우는 사례가 많아져야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노동청에 진정을 넣을 때 혼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끝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같이 해고당한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대응하자고 얘기해봤는데 다들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건 알아요. 당장의 수입이 중요할 수도 있고, 미래의 불이익이 두려울 수도 있죠.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었다면 덜 지치고, 더 오래 싸울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싸우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또 그런 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많아진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더 연대가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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