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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호랑이 Apr 29. 2022

'눈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김이슬 사담>, 김이슬


남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애석하게도 제 안에는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일상을 보내면서 딱히 텍스트화 할 만한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오늘 뭐 먹지, 오늘은 택배 꼭 부쳐야지, 이 정도.


그래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옵니다. 저에게 가장 좋은 인풋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의 대화, 재밌게 읽은 책, 영화 이렇게 세 가지. 좋은 인풋을 만나면 뇌 속의 톱니바퀴가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동시에 입도 바빠지죠. 누군가에게라도 방금 만들어진 내 생각들을 들려주고 싶어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키보드에게라도.


그런 의미에서 수필집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수필이 소설보다 메시지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니까. 하지만 바야흐로 대 에세이 시대에 내 주파수와 꼭 맞는 책을 찾기는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김이슬 사담>은 오랜만에 찾은, 저와 꼭 맞는 그런 책입니다.



표지를 찍어놓고 보니 조금 공포영화 같기도 한...?






사람들은 내게 지나치게 솔직하다 말하지만 단 한 번도 솔직한 적 없었다.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혹은 좋아할 수 없는 것에는 사람이 제일 많았다. 어쩜 하나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지, 그러나 좋아하기란 어떻게 이토록 힘이 드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연이란 그런 거였다. 늘 나보다 힘이 세고, 나조차 내 편이 아닌. 필연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힘은 잘 보며 걸어도 미끄러운 빙판길을 부러 넘어지려는 사람처럼 눈을 감은 채 걷게 했다.



눈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모든 것엔 그 나름의 총량이 있다고 믿는데(그래야 살 만하니까) 이를테면 고난과 역경이라든지 시련이나 실연이라든지. 그렇다면 최대한 많은 에피소드를 하루라도 철없을 때, 회복할 힘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소진하고 싶은 내게 콩알만 한 의심을 심어준 것이 바로 눈물이기 때문이었다. 눈물에도 총량이 있다면 내게 할당된 눈물샘이 지나치게 대용량은 아닐는지. 이렇게나 눈물이 남아도는데 어째서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지. 눈물이 무한한 데에는 눈물의 재료가 무한해서일 거라고 결론낸 뒤로는 그 재료를 준비하지 않는 것에 힘쓸 뿐이다. 부러워하지 말기. 특별하다 생각 말기. 마중 나가지 말기.



화내지 못하는 사람의 최후는 그저 멀어지는 것이다.

홀로 조용히 멀어질 준비를 마친 채 시원하게 상대방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다. 그렇게 이별.

상대는 늘 어이없다는 얼굴로 내게 따져 물었다.

“왜 진즉 말하지 않았어? 왜 너는 네 상황을 내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 언제까지 내게 아무 말 하지 않으려 했어? 내가 지금 묻지 않았으면 우리 이대로 끝인 거잖아.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그러면 나는 이 역시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둘 다 울거나 한 명은 가고 남은 한 명이 울거나.

아무래도 화내지 못하는 건 밑지는 장사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데 나는 그 붉은 실을 기껏 화내지 못해서 자주 잘라먹은 것만 같다. 화내지 못하고 대신 짜증을 일삼으면서, 그러다 서로가 미워지기보단 싫어지면서, 점점 더 건강하지 못하면서, 결국은 혼자 견디면서.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끄집어낸 좋은 문장이 담긴 책을 좋아합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의 글일 테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겪었던 고달픈 시간과 기억이 담긴 글이 좋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만의 아픔, 자신만의 ‘상실의 시대’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그 시간을 겪은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위로를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긴 글도 좋아요. 실존하는 인물부터 소설 속 주인공까지, 모두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너무나 다른 선택을 하죠. 그 자체가 인류의 신비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따라서 관계의 형태도 그만큼 많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연애할 때의 내 단점은 뭘까? 제가 상대에게 온갖 잣대를 들이밀며 단점을 찾아내듯이, 상대의 잣대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테니 말이죠. 사실 자신의 허물은 작아보이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서 이런 장면을 만났습니다. 주인공이 ‘주제넘는 말을 하는 게 내 단점’이라고 고백하자, 상대는 그게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싫어하니까, 그런 면에서 주인공의 ‘주제넘음’은 단점이 되기가 쉽겠죠. 하지만 그 ‘주제넘음’은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심성도 어떻게 보면 ‘주제넘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흥미롭다'는 말은 '그렇게 분석하고 참견하는 성격이, 남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와 너무 달라서, 그런 너와의 대화가 흥미롭다'는 의미였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단점은 장점으로도 치환될 수 있는 것일 수도,

하지만 내가 만났던 몇몇 사람들의 단점은 도저히 치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내가 장점으로 치환할 수 있는 단점만을 가진 사람과의 인연만 계속되었으면,

하지만 자신의 단점을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이런 저런 일을 함께 겪을 정도로 친밀해져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관계도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신비하기도 하고, 확실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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