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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호랑이 May 10. 2022

물고기는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이성은 보통 감성과 비교되며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 즉 옳은 쪽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본질적으로 항상 옳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조던 역시 그렇다. 그는 아주 아주 똑똑한(이 수식어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지만, 우생학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빠졌다. 게다가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남을 해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건 조던이 자신의 빛나는 지능에 갇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물고기'라는 단어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분기학자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킨다. 한순간이라도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다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걸 밝혀주는 다른 유사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거라고. 예를 들어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후두개가 있다. 연어는? 유감스럽게도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이런 설명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침내 폐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는 결론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간다. (...)


아직도 헷갈리는가? 그러면 달리 설명해보자. 수천 년 동안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이 산꼭대기에서 사는 모든 생물을 진화적으로 동일한 ‘산어류'라는 집단에 속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상상해보자. 산에 사는 어류, 그러니까 산어류에는 산염소와 산두꺼비, 산독수리, 그리고 건강하고 수염을 기르고 위스키를 즐기는 산사람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물에 사는 생물들을 물고기라고 부르는 건 산에 사는 생물들을 산고기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에이 말도 안돼 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정말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타당한 근거들을 읽으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심해어를 다루는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심해어들은 수면 가까이에 사는 다른 물고기와는 완전히 다른 생김새와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하다. 이젠 심해어가 ‘다른 물고기에 비해 특이한' 물고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생물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책을 읽기 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나는 평생동안 ‘에이 뭘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책을 읽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다니, 너무 간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보면 ‘고작 그런 것', 외부적인 것에 휘둘리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점점 더 절실히 깨닫게 되면서, ‘에이 뭘 그렇게까지’가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한다는 건 이전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 다짐이든 외부의 자극이든 간에 뭔가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변화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 트리거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나 스스로 쳐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위기감. 더 이상 내가 아는 한줌의 지식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는 다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알려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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