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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군 Jun 05. 2024

[근본 없는 철학 이야기] - 논리학에 낚이지 마라!

수능 국어와 로스쿨 리트에서 형식논리학의 실체

[0]


  재밌는(?) 퀴즈를 하나 내겠다.


  두 개의 명제이자 문장으로 이어진 하나의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참말을 하고 있는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a명제문장 : "나는 바보다." (이 명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b명제문장 : "여러분은 천재다." (이 명제는 참말을 하는 걸 수도,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다.)


  합쳐진 C문장 : "나는 바보지만, 여러분은 천재다."



  참고로 이 이상한 퀴즈에는 명확하게 정답이 존재한다. 답은 '참말을 하고 있다'가 되시겠다.


  즉, 내가 바보만 일단 확실히 아니라면, 그리고 여러분이 뭐 천재이건 천재가 아니건 그에 상관없이,


  "나는 바보지만, 여러분은 천재다"라는 말은 무조건 참맞말이 된다, 이 말씀이다-!!




  여러분이 위 사진 속 인물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것은 지극히 건강한 일이다(!)


  나도 처음에 논리학에서 소위 '폭발 원리'라 불리는 이 원리를 납득하려고 무진장 애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로부터 우리가 오늘 나눌 이야기의 주제가 도출되신다.



  수능 국어나 법학적성시험(LEET) 등에서 쓰이는 논리학은, 나아가 논리학자들이 표준으로 사용하는 그 형식논리학은, 애당초 인간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히 신(또는 '이상한'[artificial] 지능)의 것이었다고 말하는 쪽이 오히려 진실하고 바르다.







[1]

  

  인간은 왜 실수를 하는가?


  갑작스레 이상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인간도 오류를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오류를 잡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이지 다양한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그것도 개척자로서 많이 남긴 고대 그리스 사람이다.


  그는 철학의 한 가지 중요한 갈래로서 논리학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논리학을 강조한 것은 단순히 진리를 명확하게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설득하기' 위해서 논리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수사학이라고, 설득하는 방법에 관한 아리스텔레스의 저술이자 이론이 있는데, 거기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는 세 가지 설득자의 덕목이 나온다.


  에토스는, 말하고 있는 사람이 형성해놓은 품격, 품위, 품성이다. 즉, 통합적인 설득력이다.


  파토스는, 말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말을 하트비트('충격')에 꽂히게 하고 있느냐이다. 즉, 감정적인 설득력이다.


  그리고 로고스는, 말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있느냐이다. 즉, 합리적인 설득력이다.


  논리학은 이러한 로고스로의 설득을 잘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가 내세웠던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살짝 뒷길로 빠진 감이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류>라는 개념에 관하여 가진 인상, 관념을 비교적 명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 '말실수'가 바로 그것이다. 실수로 말을 비논리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내뱉고 말았을 때, 그는 오류를 범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는 설득의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논리학은 말실수를 잡아내거나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인간이 타인에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지 못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개발된 것이다.







[2]

  

  단적으로 말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현대 논리학, 철학 등지에서 더는 쓰이지 않는다. (도구tool로서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바톤 터치는, 대표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두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자는 독일의 프레게, 후자는 영국의 러셀이다.)


  

  이들의 논리학을 나는 '신의 논리학'이라고 부른다.


  논리학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것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이상 '인간'을 설득하기 위한 용도의 논리학은 아닌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파트에 내가 썼던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분명 나는 이렇게 진술했었다.


  "나는 바보지만, 여러분은 천재다"라는 말은 무조건 참맞말이 된다. 라고.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나는 바보이다"라는 거짓 명제가 이미 전제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 명제가 뒤의 명제보다 앞에 나오는 '전자(the former) 명제'일 때, 뒤에 나오는 '후자(the latter) 명제'가 참말이건 거짓말이건 상관없이, 전자로부터 후자를 도출하는 하나의 '논증'에서, 우리는 반드시 참말만을 말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려울 것이다. 난해할 것이다. 난감할 것이다.


  그야 당연하다.


  이건 인간의 뇌를 배신하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이치를 거스르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직관적이다. 단,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복잡한 논리 체계에 대해서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서술해낼 역량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 자체가, 우리의 심리 능력 자체가 일정 이상 복잡한 것은 어차피 못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게를 기점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른바 <술어 논리학> 체계는, 이전까지의 <명제 논리학> 체계와는 달리 '신의 논리학'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3]


  형식논리학을 시험에서 써먹기 위해 배우는 여러분에게 짧게나마 조언을 해드리고 싶다.


  형식논리학, 즉 신의 논리학은... 그냥 외우는 게 답이다. 마치 우리가 생소한 언어를 일단 그 사례들로부터 규칙을 역추적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원형을 복원하듯이 배워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뭐 자꾸 합리적인,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나가면서 외워나가도 좋다. 상관없다.


  단, 그것이 형식논리학의 진정하고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신을, 혹은 적어도 컴퓨터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당신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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