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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마루 Aug 24. 2022

우울감에 맞서는 현실적인 방법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지금 우울하다면 과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고, 불안하다면 미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며, 평안하다면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그 누군들 자신의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후회 한 점 아쉬움 한 움큼 묻어 나오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죽하면 우울증을 현대인의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으랴- 한 번씩 때리는 멍 가운데 과거의 행적을 뒤집어보며, 그때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저런 선택지에 체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때 집을 샀더라면, 그때 다른 회사를 선택했더라면, 그때 다른 여자/남자를 선택했더라면, 그때 외국에 나갔었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어이쿠 노란불이다. 얼른 생각의 꼬리를 의도적으로 잘라야 한다. 당신이 그토록 염원하는 그 당시로 되돌아가 그 선택을 했다 한들 어떨 결과가 나올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오로지 내가 대응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고. 결국 인생은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의 집합체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대응 해나갔는지의 집합체인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물리학 시험을 보고 나오는 선생님이 시험을 잘 봤냐고 인사치레를 건넸다. 나는 잘 못 본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을 이때다 싶어 냅다 드러내었는데 (그때는 엄청 자존감도 낮고 피해의식이 가득할 때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 마디 - "You know what? You could have done worse!" (그거 아니? 지금보다 더 최악이었을 수도 있어!) 상황이 더 안 좋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관점을 달리해보라는 의미심장한 조언이었다. 영어가 서툴렀던 나에게 힘주어 한 번 더 강조한 그 문장은 여전히 내 뇌리에 꽂혀있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 다른 선택지를 향해 내 인생이 흘러갔더라면 내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변수가 많은 한평생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지금에 와서야' 좋아 보이는 그 길로 갔다고 한들 꽃길만 펼쳐졌으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 나로 말하자면 마음이 정말 많이 건강해졌다. 어쩌면 건강은 '단순'의 또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건강한 모든 사람들은 식생활도, 생활패턴도 단순하니 말이다.


원래는 머릿속에 온갖 시나리오의 날개를 펼치며 스스로 비관적인 생각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안 좋은 성향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굉장히 단순해졌다. 하다 하다 이젠 너무 단순해서 문제다. 남편은 얼마 전 나보고 '일희일비'의 아이콘이라는 희대의 말을 남겼다. 안 좋은 일에 시무룩 해졌다가 또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사업상의 상담을 해주시다가 내가 가진 어떤 행동 패턴을 바로잡아 주시며 나더러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와, 소름 돋게 맞는 말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이다. 로또를 사서 당첨이 되면 신나서 온 동네방네 떠들면서 팔랑거리고 다니다 당첨금과 맞바꾸기도 전에 로또 종이를 잃어버리는 형국인 것이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왜 이럴까 모르겠다. 내가 하면 뭐든지 잘 될 거 같고 '그냥'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가득하다. 어쩌면 그 단순하고도 무모한 생각으로 넷째까지 낳았다. 우리는 무조건 잘 살 꺼라는 무한한 자신감으로 말이다. 내가 더 이상 우울해지려야 우울해질 수가 없는 건 토끼 같은 네 명의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막내의 사진만 눈가에 스쳐도 입가에는 즉시 미소가 번지며 행복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진다. 오늘 아침에도 사랑이를 안으며 행복 에너지를 가득 충전했다.






나 역시 한 때는 우울했고 한 때는 불안했다. 어쩌면 현대인들 모두 우울감과 불안감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 말이다. 우울감이 몰려온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내 마음의 초점에 과거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감이 몰려온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내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터득한 진리는 단순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순도 100% 집중력으로 몰입한다면 우울할 일도, 불안할 일도 없다. 누군가가 말했듯 장애물이란 목표에서 초점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한다면, 그리고 애써서 정성껏 해낸다면 누구에게나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밥을 해야 한다면 밥을 정성껏 차리고, 청소를 해야 한다면 청소를 정성껏 하고, 글을 써야 한다면 집중해서 정성껏 쓰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내 앞에 놓인 것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 방학을 맞은 큰 딸을 집에 남겨두고 남자 애들 세 명의 등원을 위해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라 한다. 하루 만에 살결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가 확연히 변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7살 된 둘째 아이는 바람이 시원해졌다며 '엄마 봄이 오나 봐~' 하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역시, 남자아이들은 빙구미가 매력이다.) 4살이 된 셋째는 망아지처럼 천방지축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쁘다. 그 모습을 담기 바쁜 내 마음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행복감이 한 움큼 번진다. 날이 좋으니 늘 향하던 어린이집 - 유치원 코스를 벗어나 형아 유치원에 다 같이 걸어갔다. 유모차도 끌어야 하고 찻길이라 위험하기도 했지만 형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둘의 모습은 얼마나 이쁜지. 고백컨데,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둘째를 보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선택에 대한 의구심도 몰려왔다. 만일 내 출산 커리어가 둘째에서 종료되었다면..으로 떠올려 본 내년의 나는 엄마로서의 무게는 한결 덜어지고 나의 인생과 목표에 더 집중하고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아주 여유로운 날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 4살 2살을 또 언제 이만큼 키운담 - 싶은 마음이 솔직히 들었다. 요즘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고 뚜렷한 목표가 생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비밀리에 그런 생각을 한편에 품고 있던 나인데, 오늘따라 더 강아지같이 해맑게 뛰어다니기 바쁜 재간 덩어리 셋째를 바라보며 내 마음의 붓이 그려내고 있는 수채화의 주제는 분명 '행복'이었다. 나조차 깜 짤 놀랄 정도의 높은 채도를 가진 아주 선명한 그림이었다. 오래된 유치원 건물 앞에서 푸르른 하늘 밑 한참을 서있으면서 내 마음이 그려나가는 명화의 주인공이 되어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했다. 나에게 지금 없는 것, 아쉬운 것, 돌이키고 싶은 것을 헤아린다면 사실 그 수는 셀 수 없을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말이다. 그러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단 한 가지,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 한 가지에 내 온 신경과 마음을 집중한다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도처가 행복인 것이다.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하고, 분명 완전할 수 있다. 알렝드 보통의 말을 빌리자면, 진정한 성공은 많은 것을 움켜쥔 상태가 아니라 지금, 평화로운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지금 행복하고, 또 성공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 순간만큼은 말이다. (집에 오니 어질러진 집안이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형아 유치원 놀이터에서 괜히 미끄럼틀 탄다고 까불다가 바지가 다 젖어 집으로 들어가 또 갈아입고 나가야 했지만.. 분명 행.. 행복했다리... ㅎㅎ)










© vyshnavibisani, 출처 Unsplash






임종을 앞둔 환자들로 가득 찬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이 몹시 기다리는 시간은 다름 아닌 맛있는 쿠기를 굽고 그 쿠키 냄새를 맡을 때라고 한다. 쿠키 냄새를 맡으며 활기가 돋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BJ 밀러에 따르면, 뭔가 좋은 일을 꾸미고 있고,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내일 세상을 떠날 사람들조차 행복하게 만드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한다. 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 서른 살이 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냐고요? 글쎄요, 음... 쿠키나 먹으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쿠키를 먹다 보면 알게 되죠. 모든 답을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을요. 쿠키를 먹는다는 건 미래를 위한 일도 아니죠.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할 수 있는 그냥 좋은 일이죠. 이런 비유를 들어주면 어떨까 싶군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음악이나 춤, 노래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그 음악이나 춤, 노래가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냥 좋아서, 마음이 벅차올라서 박수를 치는 거잖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굳이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 순간의 아름다운 애절함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아마도 내일 죽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 있죠.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마흔이 되기 전에 - 팀 페리스 p.43 <쿠키를 먹으며 생각하라> 발췌 )






언젠가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있다는 것 -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지금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는 것 -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보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라는 것 - 이런 것들을 기억하면서 우리, 과거도 아닌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자. 그것만이 행복의 유일한 길이다. 미니멀이 열풍인 가운데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물건보다도 내 마음의 불평과 불판,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을 싹 줄이는 것이 아닐까. 일명 불평 미니멀리즘이다. 나부터 시작하는 불평 미니멀리즘, 그리고 그그그가 아닌 지금/ 이 순간 / 이대로를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도 행복과 평안으로 가득 찬 독자분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하는 마음을 글에 담아 띄워본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기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시디 도어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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