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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Nov 16. 2020

7세 아이와 게임 밀당

일단 당겨보았다.

육아를 먼저 한 언니들이 말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아들과는 게임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딸들은 교우관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올라타게 되는데 엄마는 그 밑에서 아이가 떨어지진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고. 아마 위의 고민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있다면 그들은 이 세상 복 다 가진 사람들이니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감사의 절을 (마음으로) 해도 모자라다고.


이런 이야기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에겐 정말 '남의 집'이야기였다.

게임을 하게 한다-게임은 마약이다-중독된다-모든 일의 목적이 게임이 된다.

게임을 못하게 한다-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를 못 핀다-그래서 게임을 하게 한다-게임은 마약이다-처음부터 게임이 허용되었던 아이들보다 더 중독된다-모든 일의 목적이 게임이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뭐야~ 그럼 어떻게 해도 끝은 똑같잖아~"

라며 하하호호 웃고, 정답 없는 모든 육아에 대한 수다의 한 꼭지 중 하나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 자만심 같은 것도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아이만은 예외일 것 같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랄까?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우리 첫째와 나의 기질!

예전에 우리 가족 모두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기질이 나는 99%, 우리 첫째는 100%가 나왔다. (우리 집 다른 구성원 중 한 명은 6%가 나왔으니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나와 상반되는 기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히진 않겠소, 훗!)

100점이란 점수는 1학년 받아쓰기에서도 힘든 점수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기질적 특성이 100점일 수 있다니! 모든 일에 엄마의 반응을 살피고, 항상 내 기분과 내 표정을 관찰하는 아이의 모든 행동이 수치로 증명되던 순간이었다. 저 기질을 가진 아이의 특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고 한다.


자, 그럼 99점의 엄마와 100점의 아들이 게임하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그야말로 동공 지진 잔치다. 애초에 엄마도 다수의 분위기에 혼자만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힘든 성격이고, 아이도 이미 친구들과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제 자리를 못 잡는다.

그때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겼다.

"우진이도 게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오늘만 시켜줘 봐."


99점의 엄마는 거절할 수 없고, 사실 거절할 만한 똑 부러진 이유도 없다. 게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게임에 너무 빠져버리는 게 나쁜 거니까.


그날 첫째는 처음으로 게임의 세계에 입성했다.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Pokemon들을 수집하는 '포켓몬고'라는 게임이었다.

아이는 흥분해서 고맙다를 연발했고, 나는 고맙다는 그 말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포켓몬을 자신의 포켓볼에 수집한 순간 아이는 내가 처음 보는 눈빛을 장착하더니 너무 행복해했다. 그 행복함이 두려웠다.


그날 밤,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육아전문가들이 게임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는지 폭풍 검색을 했다. 초록창에 7세 남아 게임이라고 검색했더니, "7세가 게임이요? 말도 안 돼요"라는 류의 부정적인 글들이 마구마구 눈에 들어왔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았고,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아이가 게임에 중독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남편이 말한다. (예상하시겠지만 그 6%의 주인공입니다)

"뭐 게임 조금씩 하면 되지."

우씨, 자기는 항상 이래. 남 얘기하는 것처럼. 불평했다.

"아니, 자기는 우진이 아기 때도 그랬잖아. 다른 애들처럼 안 자고 안 먹어서 얼마나 많이 걱정했어. 그런데 괜찮잖아. 그때 일은 생각도 잘 나지 않을 만큼. 그냥 너무 걱정하지 마. 오늘 게임 처음 해본 것 가지고..."

"아니거덩? 열라 생각나거덩???"

남편에게 눈을 부릅뜨고 따졌지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 7시 30분이면 스스로 벌떡 일어났던 나의 어린 시절.

일요일 오전 8시에 TV앞에 앉아 기다리셨던 분들 손!


일요일을 기다리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그 시간.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게임이 아니라 게임 할아버지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제는 게임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아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엄마인 내가 옆에서 조금 신경을 써주면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도 그 친구네 놀러 가면 안 돼?"

이 말인즉슨, 오늘도 게임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오늘은 친구 집에 갈 계획이 없다는 나의 대답에 아이는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그럼 오늘 온라인 수업 열심히 하고, 숙제도 다 하고 나면 나도 게임 같은 그런 비슷한 거(게임을 게임이라고 왜 말을 못 하니! ㅎㅎㅎ 귀여운 것!) 할 수 있어~?"


아이는 또 이미 알고 있다. 은연중에 100점 눈치를 가진 아이는 엄마가 게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진아, 엄마는 우진이한테 게임이 에너지였으면 좋겠어. 우진이 아이스크림 가끔 먹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힘도 나고, 시원해지고, 기분도 좋아지잖아.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밥이 될 수 없어. 우진이도 그건 알지? 아이스크림에는 영양소가 없어서 그래. 아무리 아이스크림이 좋아하는 우진이라도 밥 대신 아이스크림만 먹으라고 하면 도망갈 거야."

"당연하지!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많이 먹으면 이도 다 썩고 너무 차가워져서 내가 얼음이 되어버릴걸?"

"맞아, 얼음이 되어버릴 거야. 게임도 그래. 게임은 아이스크림 같은 거야. 가끔씩 우진이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가 될 수는 있지만 게임을 너무 많이 하거나 하루 종일 게임 생각만 하면 우진이의 삶이 얼어버릴 수도 있어."

"나도 알고 있어! 엄마!"

"그래, 그럼 우리 온라인 수업 끝나고 점심 먹고, 너무 뜨거워서 밖에서 놀지 못하는 시간에 게임할까? 그러고 나서 기분 좋게 숙제하는 거야. 어때?"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당연하지! 엄청 좋지!"

"그럼 하루에 몇 분 정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1분???"

"아니야, 그건 너무 적어. 더 많이 말해봐."

"음... 5분???"

"아니야, 엄마 생각엔 30분 어때?"

"뭐어~~~~???????? 30분???????? 엄마 진심이야?"


1분을 생각했던 아이는, 30분이라는 말에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아직까진 그 30분이 잘 지켜지고 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숙제를 하고 싶어서 게임을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게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아이가 몇 살까지 내 말을 잘 들어줄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육아에 정답은 없다. 주식의 세계에선 남의 말만 듣고 매수하고 매도하는 것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던데 육아의 세계에서도 꼭 지켜야 할 큰 틀이 있을 뿐, 그 틀을 채우는 모양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중환자실에 갔던 첫째를 키우며, 수많은 육아 방법서들을 읽으며, 내가 누구에게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모든 아이는 다 달라요, 그리고 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모두 다 달라요."이다.

그래서 참 어렵다. 육아.

결국 부모가 대부분의 것을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의 책임은 아이도 함께 져야 하니까.




사실 나도 게임을 좋아했다.

슈퍼마리오 비디오 게임을 하며 버섯 하나에 얼마나 목숨을 걸었는지 모른다.

중학생 땐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게다가 주종족 테란이었다. 얼마나 노력하고 꾸준해야 하는지 모른다.) 친했던 여자 친구들이 god+신화(혹은 여전히 HOT+젝스키스)에 빠져있을 때 나는 어두운 pc방에서 남자아이들과 클릭을 해댔었다.


뭐, 그래서 태어난 지 여섯 해가 지난 7살 나의 아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내가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지 못했을 뿐 그리 낯설진 않다.


토요일엔 아이와 함께 파세오 공원에 갔다.

물 타입 포켓몬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아침 산책으로 갔던 공원에서 엄마가 포켓몬고 게임을 먼저 제안하니 아이는 놀라면서도 좋아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와 '코산호'라는 산호 포켓몬을 수집했다. 아이는 코산호를 잡고 너무 좋아하더니 이내 패드를 나에게 맡겼다. 게임을 시작한 지 3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엄마랑 같이 게임하니까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오늘은 그만 해도 될 것 같아. 엄마 사랑해!"


그리고선 아이들과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세오 공원은 괌에서 흔치 않게 파도치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다. 참 시원한 곳이다.



"게임은 10살이 되면"

내 맘 속 어딘가에 걸려있던 표어였는데, 그 표어 대신 다른 표어를 걸어놓아야겠다.

"게임보다 자연을 더 사랑하도록 부지런해지자!"



그리고, (남의 것 부러워하면 안 되는데)

자꾸자꾸 수영장 있는 친구 집이 부럽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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