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나누는 추수감사절
지난주 목요일부터 괌은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을 맞아 대부분의 회사들과 학교가 휴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성공회 교도들에 의해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그중에서도 분리파 필그림)이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조국을 포기하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렵사리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청교도들이었지만 추위와 질병, 그리고 굶주림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 원주민들이 청교도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고, 옥수수 종자를 나누어주어 그들은 정착할 수 있었고, 1621년 새로운 땅에서 첫 추수를 마친 것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잔치를 열기에 이르렀다. 그 잔치에서 청교도들은 원주민들과 함께 칠면조와 곡식 등을 나누어먹었고 이후 국경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추수감사절의 시초에 대해 깊숙하게 파고들면 그 의미가 단순히 '수확에 대한 감사'에만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이 날의 뜻이 감사임에는 이견이 없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나 또한 지난 2020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2020년은 당황스럽고, 답답하고, 힘든 한 해였다. 전 세계가 함께 감내하고 있는 감정의 무게만큼 2020년은 역사적으로도 (정치, 경제, 의학적으로도)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
"2019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2020년 전 세계에서 창궐해 수많은 사망자를..."으로 시작하는 기록을 우리의 후손들이 읽게 되겠지.
그럼에도 '사람'은 참 강인해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이들은 결국 감사를 이야기한다.
지난주,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던 첫째의 수업에서 아이들은 감사의 이유들을 쏟아냈다.
"나는 우리 엄마와 아빠와 우리 집 강아지에게 감사해."
"나는 학교에 감사해.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업할 수 있잖아."
"나는 지구에 감사해. 그래도 버텨주고 있잖아."
아이들은 분명 나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다.
우리 첫째 순서가 되었다.
"나는 맛있는 음식에 감사해!"
하하, 내 아들답다. 원초적이고 단순한 아이. 하지만 아이의 대답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지. 아이들 덕분에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감사이다.
추수감사 주를 지내고 나니 정말 한 해가 끝나가는 기분이 든다. 언제나 여름인 이곳에선 코끝은 기분 좋게 차갑고 마음은 설레는 연말의 기분을 느끼기가 어려운데 추수감사절은 그 기분을 안고 온다.
그런데
11월 27일, 진짜 추수감사절이자 나의 생일날.
사랑하는 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나쁜 소식을 들어서 너무 속상하고 화도 나고 우울했는데 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몸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안도가 되었고 감사했다.
"너만 괜찮다면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절로 나왔다. 진심으로.
결국 사랑하는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만 곁에 있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추수감사절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터키든, 치킨이든, 피자든, 밥 한 끼든 그게 무엇이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을 이가 있다는 것. 그 순간 우리는 무엇에든 감사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식탁에도,
우리가 함께 하는 음식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도.
며칠 동안 휴대폰을 멀리했다. 오늘도 왠지 글이 잘 써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기록하고 싶었다. 추수감사절의 불씨가 남아있을 때, 12월이 오기 전에.
11월의 마지막 날.
나에게 전한다.
2020년을 잘 적응한 나에게 참 감사하다. 10개월의
온라인 수업, 그리고 동일한 기간 동안 남편의 재택근무를 내조한 나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인내했다. (물론 폭발도 많이 했다. 헤헤!)
그리고 아이들에게 참 감사하다. 오은영 박사님께선 아이들이 24시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이란 착각을 버리라고 하셨다. 띵언이다. 우진, 지유! 너희들도 활화산 같은 엄마와 함께 지내느라 많이 힘들었지? 엄마는 사이좋게 지내주는 너희가 너무 자랑스럽고 참 고마워.
나의 남편, 당신은 재택근무가 무척이나 편해 보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당신이 사실 참 대견해요.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멋있고요. 비록 주식과 부동산엔 관심 없는 선비 같은(?) 그대이지만, 그럼에도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당신의 정신이 언젠가 빛날 거라 믿습니다. (젭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이여. 건강하기만 하면 괜찮아. 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
12월엔 감사만 하고 싶다.
불평으로 가득 찼던 한 해였다.
부끄럽게도 COVID19이라는 불행한 시기를 기회로 이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감사 고백을 들으며 반성했다. 후회와 불평 대신 더 많이 사랑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내 옆에 있다. 이 아이들과 함께 나도 2020년의 마지막 달은 감사만 해야지.
고마워. 나의 아들,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