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감사. 감사.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있었다. 잊으려고 하면 또 떠오르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또 떠오르고.
있는 힘껏 힘을 주어도 넘어뜨릴 수 없는 오뚝이처럼 자꾸만 벌떡 벌떡 일어나는 별로 좋지 않은 생각.
(브런치에서 재차 언급해왔던) "미리 걱정병"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겪어왔다. 그 병의 장점이라면 내 머리에 특별한 안테나가 있는 것처럼 어떤 문제를 미리 잘 잡아내고, 예방 혹은 빠른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안테나는 아이들에게만 작동한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얼굴 색깔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신생아에겐 황달이 있을 수 있다고 좀 더 두고 보자고 하셨지만 뭔가 불안했던 나는 검사를 의뢰했고, 검사 결과 아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2주간 치료를 받게 되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기침을 하는데 이 소리가 그냥 기침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동네 소아과에서 '단순 감기'로 오진을 했는데 내 안테나 불이 도통 꺼지질 않아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었다. 아이는 크룹(급성 폐쇄성 후두염)이었고 이 증상이 밤에 유독 심해지기 때문에 아마 낮에는 감기로 진단되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급성 후두염은 유아에게 흔한 질병이지만 그래도 감기약만 계속 먹였더라면 아이가 더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도 절대 아니고, 나는 의학 지식이라고는 전무한 뼛속까지 문과생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뭔가 과한 탐지 기능이 발휘되는 것 같다.
온라인 수업은 첫째와 둘째, 동시에 진행이 된다. 나는 거의 대부분 첫째의 수업에 함께 참여하고 개입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이번 온라인 수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아이 둘을 키우는 대부분의 상황에 적용된다. 모임도 첫째 위주로 갖기 때문에 둘째는 오빠의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익숙하다. 하루의 스케줄도 첫째 위주로 만들어지고, 만약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거의 둘째의 것이었다. 둘째를 조산해서 둘째가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나는 갑자기 엄마가 병원으로 사라져 버린 첫째가 상처 받았을까 봐 산후조리도 못한 몸으로 첫째를 목마 태우고 롯데월드에 갔었다. (친정엄마께 혼났다.) 솔직한 마음으로, 두 달이나 빨리 태어난 둘째보다 두 달 빨리 오빠가 된 첫째가 더 안쓰러웠다. 영아 시절, 몸도 약하고, 잘 못 먹고, 잘 못 잤던 첫째가 안타까운 마음에 더 마음을 많이 썼고 그 관심은 사실 공평하지 못했다. 둘째는 울어도 마냥 귀엽고 예뻤는데 이런 내 마음이 또 첫째에게 들킬까 봐 나는 또 첫째를 더 많이 신경 쓰기도 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친구의 아기가 울어도, 웃어도, 떼를 써도 귀엽더라......)
둘째도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간단히 테스트를 본다기에 지난주엔 둘째의 수업에 조금 신경을 써보았다. 둘째는
사실 뭐든지 잘하는 편이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날 재잘재잘 말을 곧잘 했고, 노래를 불러주지 않아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곤 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을 아주 잘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주변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모범적인 아이 었다. 다만 책 읽기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우리 딸은 공부엔 관심이 없나 보네.'라며 남편과 웃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살펴보니 아이가 특정한 단어를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Square"을 100번 정도 이야기해줘도 계속 까먹었다. 학교에서 알파벳 파닉스를 배우고 있는데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했다. 숫자를 곧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써보라고 하니 숫자를 전부 거꾸로 썼다. 아주 어릴 때부터 빨강과 노랑을 자꾸 헷갈려했는데, red와 yellow를 아예 거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 5살 아이가 모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안테나가 다시 쑤욱 올라왔다. 며칠 동안 밤새 걱정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드니 아이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산타할아버지 옷이 무슨 색이지?"
"(바나나를 건네며) 무슨 색이야?"
"(네모 모양 물건을 가리키며) 이건 무슨 모양일까?"
틀리면 걱정스러운 마음을 얼굴에 숨길 수 없었고, 맞추면 물개 박수가 나왔다.
둘째에게 좀 더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심은 공평할 수 없었지만 사랑은 공평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엄마와 딸 사이라도 부족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이를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영유아기엔 부모의 특별한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것도 안다. 잘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참 미안했다.
둘째를 낳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의 뇌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뇌가 풍선처럼 매끈했다. 정상적인 아기의 뇌는 호두알처럼 쭈글쭈글 못생겨야 하는데 우리 아기의 뇌는 너무 예뻤다. 그땐 눈물로 내 아기의 뇌가 저렇게 쭈글쭈글해질 수 있다면, 평범하게 뛰어놀며 자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고 기도했다. 괌 이주를 결정했을 때에도 아이가 공기 좋은 시골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째가 더 이상 천식으로 고생하지 않고, 피부가 가려워 밤을 새우지 않게 되고, 둘째의 뇌가 호두알처럼 되자 더 바라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스펠링 테스트도 100점이었으면 좋겠고, 축구경기를 할 때에도 이왕이면 골잡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가리는 음식 없이 채소도 잘 먹으면 좋겠고, 엄마 말에 언제나 순종하길 바랬다.
하지만 이번에 "혹시....?"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하니 아주 작은 것부터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색깔만 잘 알아도 감사하게 되고 물개 박수가 절로 나오니, 스스로 앉아서 예쁜 글씨로 선생님의 수업을 곧잘 따라가는 첫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이를 키우며 절대 잊지 않아야 할 마음.
감사
그냥 너희가 나로부터 탄생한 그 사실부터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기적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아이의 허물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글을 쓰기 앞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이 생각을 내려놓고 싶었다. 글은 말과 다르니 이 글을 통해 내 걱정이 그냥 걱정으로 흘러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허물은 아니니까.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니 내 마음도 가라앉는다.
다음 주에 한국에 간다. 동생 결혼식으로 짧은 시간 한국에 가게 되었는데, 한국에 가서 전문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도 바뀌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너의 존재가 나에겐 감사 그 이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