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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Mar 10. 2021

야, 메로나 밑으로만 골라라

텐션업 영양제

지난주에 이미 졸업하고 학교에 없는, 이제 고1이 되어버린 나의 중3 꼬맹이들과 연락이 닿았다. 보고싶다고 연락이 와서 나도 보고싶다고 대답했다. 라이브를 켜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더 보고싶어졌다. 그리고 당장 다음주에 만나자며 그러자고 약속을 잡았다. 역시 젊은 패기의 추진력이란. 


그렇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친구 사이든, 교사와 제자 사이든 의무적으로 묶인 속박, 예컨대 시간표 등을 통해 인간 관계가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면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그 유대감을 유지해나가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직후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공허의 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 시간은 짧은 것인가, 긴 것인가. 우리들 사이를 맴돌았던 그 공허한 시간은 앞으로 더 짧아질까. 길어질까.


'어, 벌써 못 본지 며칠, 몇 주나 지나버렸네??' 와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버리고,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 주어진 업무와 학업, 인간관계 등이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럴지언데,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은 꼬맹이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그렇게 걱정하다가도 찾아오겠다는 연락에 고마움을 느낀다. 동시에, '지들이 알아서 끼리끼리 잘 하고 있을텐데'라는 푸념. '내가 너무 괜한 걱정을 하고 있을거야'라는 오지랖을 느낀다.


생각해보니, 등교 수업할 때마다 '곧 만나겠지'라고 생각했던 꼬맹이들이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사라져버렸다. 고등학생이 되어 나타나니 기분 탓인지 모르겠을 성숙한 느낌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아무튼. 오늘 똑같이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이고,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한강으로 왔다. 우리들의 정식 코스다. 하겐다즈를 고르려는 놈을 쥐어잡고 메로나 밑으로만 고르라고ㅎㅎ;;(하겐다즈도 여댓명이 덤벼들면 감당하는 것도 한 두번이다...!! ) 아마 성인이 되어 찾아와도 똑같으려나. 물론, 나의 주머니 사정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하겐다즈를 집는 행위는 척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배려해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웃어넘기는 척이다. 내가 조금 더 성공하면.. 하겐다즈 매장에 가지 않을까. 아무튼.


겨우 한 달 뿐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늘 가던 코스대로 다녔지만. 작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한강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새로 배정받은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함께 했을 시절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누가 헤어지고, 누가 사귀고 있으며, 누구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고, 어떤 선생님은 정말 별로였으며, KBS 역사저널 그날 촬영은 어땠고, 연예인은 어떠나며 등등.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규정(?)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내 편의대로 꼬맹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된 첫 만남이었다. '아, 작년에는 왜 이렇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 했지? 우리들의 관계에 법적으로 정해진 평가자로서의 역할과 그 효력이 작용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스럽게 욕(?)과 드립(?)을 날리며 웃고 떠들었던 오늘의 그 몇 시간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사실 오늘 <역사 저널 그날> 본방이 있는 날이었는데, 신경이 다른 곳에 가버렸다.


우리 꼬맹이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저의 역사 선생님은 이상석 선생님이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위대한 역사 선생님이 되자! 이 생각이 바로 교직에 발디딜 때의 큰 목표 중 하나였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나와 함께 한 학생들이 날 기억해주는 것, 조금더 욕심내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 어떻게 보면 더 큰 욕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욕심을 내야만이 매년 학생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또 새로운 만남을 갖고, 또 다시 떠나보내는 마음앓이를 위로할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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