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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향 Mar 20. 2023

Beforesunrise 비포선라이즈 1996

떠오르기 전의 우리.





 비포선라이즈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좋아했던 영화다. 그 영화와의 첫 만남은 나의 취향이 아닌 타인의 취향으로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사람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까맣게 잊고 살아왔지만 굳이 생각해 보면, 싫다에 가깝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알게 해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 말은 내가 그 사람의 행복을 진짜로 바란다는 건 아니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할 만큼이나 이 영화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1996년도에 상영을 한 이 영화는 옛날 영화인 만큼이나 아날로그 한 감성이 살아있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거지 같은 스마트폰이 없기 때문이겠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차에서 시작된다. 한쪽의 용기로 둘만의 비밀이 싹트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별 이야기가 아니다. 거창하거나, 꾸밈이 있거나 힘이 들어가서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저 끊임없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솔직하고, 끊임이 없다.’라는 것. 내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같이 필연적으로 마주칠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사소하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밤공기에 웃음과 함께 흩어져 사라질 농담들. 삶에 대한 고집과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들은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에 빠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나는 셀린과 제시를 보며 궁금했다. 그리고 갈망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내가 싫어하는 거창한 표현을 넣어 보자면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에 진심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너무 깊게 파헤친다 싶으면 거기에 한 스푼의 농담을 섞어서 그 사람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삶에 도움이 되고야 마는 밀크쉐이크라는 단어로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인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영화 마지막쯤에 제시는 셀린에게 다시 만나자며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다. 지금처럼 거지 같은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찾아내어 연락을 했겠지만 다행이고 아쉽게도 90년대에는 그런 매체가 없었다. LP를 들으며 서로를 훔쳐보며 느꼈던 감정은 진심이었지만 결국 둘은 만나지 못했고, 작은 기대와 오해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특히 여운이 많이 남는 장면은 열린 결말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데, 둘이 함께 갔던 모든 곳을 두 사람만 사라진 채 보여준다. 장소만 보면 아무 의미도, 명소도 아닌 그런 곳들이다. 흔한 골목, 카페, 육교 등인데 두 사람이 이 진심을 나누며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둘만의 언어와 비밀이 담겨있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제시는 셀린을 마음에 품은 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셀린은 환경운동가가 되어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나지 못했던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때때로 그들을 살게 한 건 아마도 그 짧았던 하룻밤의 사랑 때문일 거라고. 그 강렬했던 순간을 곱씹고 추억하며 힘든 시기들을 견뎌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인생을 오래 살아본건 아니지만 살다 보면 가끔은 자의로던 타의로던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랑받아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누구에게도 나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는 건 순수하게 사랑했던 기억 덕분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풋내기 감정이 가볍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사랑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면서도,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가끔은 아주 오-래 오래 미련이 지속된다는 게 진실이라는 걸 어쩌겠나.


현재가 행복하더라도 말이다.





 그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지속가능한 사랑을 꿈꿔왔지만, 모순된 사실은 슬프게도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짧았고, 아쉬워서’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약속된 장소와 시간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꽉 막힌 닫힌 해피엔딩 결말로 끝났더라면 명작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로 남았겠지. 타인의 취향으로 물들어 가는 게 사랑의 과정이라면, 이 영화는 둘의 취향만 노출되었을 뿐 물들어가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더 강렬히 끌려왔던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이루어지지 못했던 짝사랑의 환상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 기억 속에 희미한 그가 이 영화를 왜 좋아했는지는 모른다. 이제는 나의 관심사 밖의 일이다. 타인의 취향의 이유와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움직였던 시와 대사들을 나열하며 영화에 대한 글을 마쳐본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물들이고 싶은 사랑을 고민하길 바라며.





”사람들은 낭만적인 환상을 갖길 좋아해.
아주 비현실적이지. “


“인생은 가장행렬 같아. 할머니는 남편밖에 모르는 분 같았어. 그런데 고백하길, 평생 마음속으로 다른 남자를 그리며 사셨다는 거야. 운명에 순응한 거지. 정말 슬픈 일이야. 한편으로는 기뻤어. 그녀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게 차라리 잘된 거야. 그 남자와 만났다면 결국 실망했겠지.”



“너는 수년간 만난 연인은 서로 뭘 해야 할지 뻔히 알기 때문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서로를 미워한다고 말했지. 나는 너랑 반대야.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진짜 사랑이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말할 것인지… 그게 진짜 사랑이야.”



허망한 꿈

리무진과 속눈썹

귀여운 얼굴에서 흘리는 눈물

저 눈을 보라

그대는 어떤 의미인가

달콤한 케이크와 밀크쉐이크

난 꿈속의 천사

난 환상의 축제

내 생각을 맞춰봐요 추측은 말아요

고향을 모르듯

목적지를 알지 못해요

삶에 머물며

강물에 떠나는 나뭇가지처럼

흘러가다 현재에 걸린 우리

그대는 나를, 나는 그대를 이끄네

그것이 인생.

그댄 날 모르는가? 아직 날 모르는가?





-Beforesunris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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