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현실 사이의 거리
코로나 이후 바뀐 것들이 많은데, 근래에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우리 시대를 구분하는 새로운 언어 표현이다. AC/BC (After Corona/Before Corona).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인 대유행병이 된 후와 전으로 우리 시대를 구분하는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도 변화속에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BC 시절 필자가 경험했던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
코로나 이전에 필자의 연간 업무 중 한가지는 ‘와이너리 투어’였다. 필자가 속한 회사가 수입하는 와인들을 사용하는 거래처 분들을 모시고 해외에 있는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이다. 현지의 포도밭들도 견학하고,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에 직접 방문하여 와인메이커와 이야기도 나누면서 와인 시음도 함께하는 일정으로 거래처 분들의 반응이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최소 일년에 한번은 와이너리 투어를 진행하였는데, 거의 매번 겪는 일이 있다. 함께 간 거래처분들 중에서 실제 와인이 병에 담기는 과정을 보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있는데, 소위 ‘병입 라인’을 보시고 놀라는 것이었다. 병입 라인이란 발효 후 숙성과 안정화를 마친 와인들을 병에 옮겨 담아 코르크로 막고 라벨을 붙이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거의 모든 와이너리들은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필자가 전 세계 모든 와이너리들의 병입 라인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기계화하고 있다. 병에 담기 전 와인들은 별도의 저장고에 보관되어 있고, 주입기를 통해서 병으로 옮겨지며 미리 세팅이 된 병의 높이까지 담긴다. 코르크 마개 또는 스크류 캡으로 막는 과정 또한 기계화되어 있고, 라벨을 붙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고 놀라는 이유는 이분들이 상상했던 혹은 기대했던 인식과 거리감이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놀라시는 분들이 기대했던 모습은 ‘Farm-to-table’ 이다. 말 그대로 소규모 개인 농장에서 기른 과일과 채소와 허브 등을 식탁에서 바로 먹는 것을 의미한다. 와인이 우리 테이블에 올라오기 전까지 모든 과정들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분의 표현을 옮겨보면, “제가 기대했던 모든 와이너리는 새들이 여유롭게 지저귀는 목가적인 풍경의 포도밭을 지나 한 켠에 마련된 자그마한 양조장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연륜이 있어 보이는 선한 표정의 농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한 병씩 와인을 담는 그런 모습이었어요.”
물론 이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와이너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런 와이너리들이 더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와는 별개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와인’하면 앞서 언급한 그 분의 묘사처럼 무언가 ‘자연적’이고 가내 수공업에 기반한 것을 떠올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일견 당연한 얘기지만, 와인은 농산물 가공식품인 동시에 상품이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주체가 거대 기업이든 개인 농부이든 자신이 만든 상품이 팔릴 것을 기대하고 만든다.
생산 주체의 판단에 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따지고 시장의 크기를 가늠하고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다 상품을 팔고자 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생산 주체의 가치관, 직업 철학, 자신의 상품에 대한 자신감, 소비자의 피드백, 환경에 대한 책임감, 트렌드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생산 활동을 조정한다.
생산자 규모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서 그들이 경작하는 포도밭과 생산되는 와인의 ‘친환경 적합도’, ‘자연적 혹은 인공적’인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와인들이 일부의 기대처럼 ‘자연적’이고 가내 수공업에 기반한 ‘목가적’인 와인은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