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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현 Apr 20. 2022

맛있는 감정, 호기심

#와인과 음식

우선 자기고백으로 시작한다.
필자는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자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레시피를 잘 따르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엇박자다.
손 대지 않고 코풀려고 하는 격인데, 그러다 보니 엄한 책만 들여다본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류의 서양 요리에 기반한 음식문화사 책, <세상에서 가장 쉬운 *** 요리책>, <고기굽기의 기술>, <파스타의 기술> 등 일단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 다 읽기가 무지 힘들다. 다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굽고, 삶고, 찌고, 익혀야 하는데 그런 노동은 생략하고 읽으니 남을 리가 없다.


그래도 가끔은 소매를 걷어 부친다. 이런 저런 재료부터 사고 본다. 큰 소리는 쳤는데, 부엌에 덩그러니 혼자가 된다. ‘백지의 공포’를 아시는가? 말과 생각이 활자로 옮겨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디서부터 무엇을? 이런 공포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우선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진다. 누군가 차려준 것만 먹어왔고, 이미 조리가 된 간편식만 먹다 보니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를 맞닥뜨렸을 때 몸이 굳어버렸다.
다행인 건 이런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는 것, 이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호기심이다. 아주 쓸모가 많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가공되기 전의 날것의 식재료들. 이 것들에 대한 궁금증.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어떻게 그 식감과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가령 흔하디 흔한 파스타만 해도 호기심을 가지니 달리 보인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보자. 뭐가 들어가는가? 알싸한 마늘, 유들유들한 올리브 오일, 희멀건한 면수, 소금, 후추 그리고 건면이다. 불에 익히고 삶고 데치면 각각의 재료들이 따로 놀때와는 전혀 다른 맛있는 음식이 된다. 마늘의 알싸함은 사라지고 향긋함이 남는다. 느끼한 오일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고, 면수는 뻑뻑함을 없애 주고, 소금과 후추는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호기심이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와인도 음식이다. 날것의 포도가 발효 과정을 통해 향미 가득하고 밀도 있는 마시는 음식이 되었다. 마리아쥬라는 멋들어진 표현이 있다. 프랑스어인데 사전적 의미는 ‘결혼’, ‘만남’ 정도의 의미다. 개인적으로 정말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와인의 어울림을 결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말랑말랑함. 마찬가지 이유로 음식과 술의 궁합이라는 우리들 표현도 멋지다.


와인을 자주 드시지 않는 분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흔한 마리아쥬가 있는데,
<육류에는 레드 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 적어도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짝맞춤이다. 묻지마 식의 중매다. 육류만 보더라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굽느냐, 삶느냐, 튀기느냐 등 익히는 방식에 따라 식감과 풍미, 형태가 달라지지 않는가. 또 더해지는 양념 (소스)에 따른 맛의 변화는 또 어떻고. 어류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다양 해진다.




해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공식은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호기심을 채워 넣자. 내가 먹는 음식이 무슨 재료이며 또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는가? 소스는? 개별적인 재료의 맛과 그 것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느껴지는 맛은? 여기에 달지 않은 레드 와인을 곁들이면? 새콤하고 청량감 있는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그냥 술 한잔 하면서 입이 심심하니 먹는 건데, 뭐 그렇게 호들갑을?’이라고 생각하면 할 말은 없다.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와인을 마시는 이유 혹은 즐거움 중의 하나가 다양성에 있는 바, 이런 호기심을 품고 음식과 와인을 함께 곁들인다면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더 다양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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