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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현 Apr 21. 2022

공생 – 함께 살아가기

#포도나무 '인터뷰'

4월의 마지막 칼럼을 어떻게 매듭지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필자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도 하고, 칼럼을 쓰는 과정에 재미요소를 주려고 이번 칼럼은 형식을 바꿔볼까 한다.

'유명인'을 초대하여 묻고 답하는 인터뷰 형식을 택했다. 다만, 여기서 유명인은 실제 인물은 아니고 포도나무를 의인화하여 구성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전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던 2021년, 우리는 와인에 기대어 위로 받고 싶었던 걸까? 와인은 명실상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사랑받는 수입 주류가 되었다.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양조용 포도종을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라고 부른다.
먼저, ‘비니페라’에게 자신의 소개를 부탁하였다.




“제 이름은 비니페라이고 성은 비티스입니다. 다른 식물들처럼 처음에는 야생 상태로 지구상에 등장했죠. 제가 맺는 포도열매가 달고 맛이 있어서 그런지 많은 야생 동물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그러던 제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그러니까 여러분들과 처음 관계를 맺은 것은 꽤나 오래전이에요. 저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으니 정확한 연대를 기억하지는 못하는데요, 호모 사피엔스의 기술인 탄소연대측정(carbon-dating)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인 것 같아요. 역사 시대로 접어든 호모 사피엔스의 기록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저와 여러분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이 되었다고 하네요. 제 생각으로는 처음에 호모 사피엔스가 야생 상태에 있던 저를 길들여 심었을 때에는 그냥 먹기위한 식용으로 기르지 않았을까 해요. 우연한 발견이었던 오랜 관찰 끝에 얻은 발명이었던, 사람들이 저를 더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제가 맺는 포도열매를 사용해서 향긋하고 시큼한 그리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라고 생각해요.”

맞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이쁘게 포장된 상품으로 우리에게 소개되는 와인. 간혹 와인은 포도 농사를 지어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포도나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익숙한 것들도 낯설게 보이고 당연한 것에 놀라움도 깃든다. 이야기를 이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처음 호모 사피엔스와 만난곳은 흑해(Black sea)와 카스피해(Caspian sea) 사이에 있는 땅, 지금은 여러분이 조지아(Georgia)라고 부르는 곳 부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저는 그들의 이동에 함께하게 되었죠.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새로운 환경과 식생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처음 저의 모습과 닮은 듯 조금씩 다른 자손들이 생겨났죠.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저의 후손들을 변이라고 부른답니다. 그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여 깊게 뿌리를 내린 자손들도 있지만 (이 경우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더욱 다듬어집니다), 더러는 적응하지 못하여 잊혀지는 경우도 많아요. 기억나는 사건은 과거 이탈리아 반도의 조그만 도시 국가 ‘로마’ 사람들이 지중해와 유럽을 거점으로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저희들을 데리고 갔어요. 그들은 와인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저희도 함께 뿌리를 내렸죠. 저희가 뿌리를 깊이 내렸던 곳들을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군요.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저의 포도열매로 만든 와인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찬주로 사용되어진 것이에요. 중세라고 불리우던 시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승들이 성찬주를 빚기 위해서 저희를 정성껏 가꾸던 시기였죠. 몇 백 년이 흐른 후에 유럽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와 땅을 찾아 여기 저기로 탐험을 떠났는데, 그 때에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저희를 데리고 갔어요. ‘신대륙’이라고 불리우는 땅에 저희가 뿌리를 내린 이유였습니다.”


와인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는 곳 마다 포도나무가 심어졌고, ‘비니페라’와 그의 자손들이 우리와 함께한 세월은 우리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와인. 포도열매는 어떻게 와인이 되는지 ‘비니페라’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녹색 잎을 피우는 식물 친척들처럼 저도 엽록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거에요.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 봄이 되면 제 몸에서 수액이 돌기 시작해요. 그리고는 솜털 보송한 여린 잎들이 자라나요. 곧 있으면 꽃도 피우죠. 혹시 저의 꽃을 본적이 있나요? 크고 화려하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꽃이 지면서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가 됩니다. 열매는 점점 커지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당분을 쌓아갑니다. 껍질에는 레드 와인의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내는 안토시아닌이라는 페놀 성분도 쌓여갑니다. 사실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지만 쉽게 설명하면, 제 포도열매 속의 당분이 효모라는 고마운 미생물을 만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탈바꿈하는 거죠. 이렇게 바뀐 알코올 음료가 바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와인이에요.”

 

‘비니페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생명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리와 그들이 맺어온 오랜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담담한 어조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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