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와인이 더 맛있어요?
아빠는 오늘 한가지 결심을 했어. 그 동안 미루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결심.
그래서 시아에게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글을 써 볼까 해. 공개적인 편지라고 할 수도 있고.
이제 곧 합법적으로 술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는 딸에게 아빠가 좋아하는 술,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아빠의 욕심, 소망 뭐 그런 비슷한 마음이야. 어차피 지금은 정신도 없고 관심도 적을 테니 일년이 더 지난 후에 읽어보면 좋겠다.
아빠가 하는 일을 다시 얘기해줄게. 외국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들이 있어. 생각보다 그 수가 많아.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어떤 와인을 수입해올까, 그래서 누구에게 어느 곳에서 얼마에 팔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실행하는 게 아빠가 하는 일이야.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야.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들이 있어. 그 중의 한 가지가 “비싼 와인이 더 맛있어요?”
다시 말해, 지불한 가격에 비례해서 맛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는지를 묻는 질문이야. 답변하기가 꽤 어려운 질문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얘기하는 ‘맛’이란 감각은 수치화하고 계량화하기가 어려워서야. 어떤 경우에는 백이면 백 모두 다를 수 있을 만큼 주관적이야 (‘엄마의 손 맛’ 이런 표현을 떠올려 봐).
이 질문에 대한 아빠의 개인적인 답변은 “어느 정도 가격 수준까지는 – 마트나 와인샵 판매가 기준 대략 4-5만원대 미만 – 가격과 맛이 비례한다. 하지만 특정 가격 수준을 넘어서는 고급 와인의 가격은 맛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아빠의 경험으로 1만원 미만대의 와인보다 2~3만원대의 와인이 확연하게 더 맛이 좋았어.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 가격대에서는 가격이 비쌀수록 와인의 향의 세기와 다양성,
맛의 집중도가 더 잘 느껴진다는 생각이야.
이제 아주 간단한 숫자 얘기를 좀 해볼게. 아주 간단해. 앞에서 ‘특정 가격 수준을 넘어서는 고급 와인’의 가격 결정 구조가 ‘맛+알파’라고 했는데, 실제 예를 하나 들어볼게.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샤또 라피트 로칠드 Chateau Lafite Rothschild’라는 와인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중에 하나이고, 디올이나 구찌 같은 명품이라고 생각하면되.
특이한 점은, 똑 같은 와인인데 매년 출시가가 달라지는 거야. ‘출시가’라는 말은, 와인 생산자가 이 와인을 최초로 시장에 파는 가격이야. 이 정도 수준의 와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출시가에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점점 오르기 때문에 ‘출시가는 이 와인의 최저가’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어.
(*빈티지: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수확한 연도)
2012 *빈티지 출시가: 330유로
2022 *빈티지 출시가: 580유로
위에서 보는 것처럼, 똑 같은 와인인데 해마다 가격이 다르고 2012년과 2022년 빈티지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 가격이 76%만큼 더 올라갔어. 그 사이, 이 와인의 맛이 76%만큼 더 맛있어 졌는지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하지만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와인의 맛이 항상 와인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