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보란 듯이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밤늦게 봐서인가 주위 간판은 다 꺼져있는데, 유독 그 간판만 눈에 띄었다. 밤늦게까지 개원 준비를 하는 듯했다. 간판에 불이 켜있는 학원 원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원 강사였다.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돌잔치는 안 해?”
“가족끼리 하려고요”
“내가 ** 돌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준비했어. 마음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뭘 이런 걸 다 준비하셨어요? 아이고 감동이네요”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던 그였다.
현금이 마침 없어서 멀리 있는 ATM기까지 씩씩 대며 걸어가서 현금을 빼왔다. 아뿔싸 봉투를 준비하지 않았다. 봉투를 사려고 주위 매장에 들러서 하나 구매했다. 학원으로 허겁지겁 뛰어오니, 그는 다행히 아직 퇴근을 안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일이 돌이니 오늘 축의금을 주는 건 늦지 않았다. 사실, 현금을 인출하면서도 고민을 했다. 얼마 전, 최근의 성과가 안 좋았기에 난 그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 쓴소리는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 인출기 앞에서 얼마를 뽑아서 주면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현금을 두 번에 걸쳐 뽑았다. 봉투가 나의 미안한 마음만큼이나 부풀어있었다. 그는 다행히 얼굴 전체에 미소가 퍼지며 좋아했다. 두꺼운 봉투를 두 손으로 받는 그의 손은 유난히 하얘 보였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의 쓴소리가 나의 성의로 준비한 봉투와 따뜻한 몇 마디로 풀어지리라고 생각한 건 완전한 나의 오해였다. 폭풍 전야가 아니라 폭풍 전 미소였다.
얼마 후, 그는 퇴직 의사를 밝혔다.
퇴직 의사를 밝힐 때에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까지 난 그 미소가 생각나곤 했다.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퇴직한 한참 후에도 미소를 가끔 떠올렸다. 몸이 안 좋다는 게 퇴직 이유였고, 몸이 안 좋아 쉬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러 번 어디가 안 좋은지 걱정이 되어서 물었지만, 그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퇴직 1달 노티스를 잘 지켰다.
더군다나 퇴직일까지도 그는 항상 밝은 얼굴이었다. 난 ‘퇴직을 해서 그리 좋은가?’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에게 묻지 않았다. 조직을 이끈 장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1달 후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연거푸 하면서 떠났다.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그에 비해 떠나보낸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가 좋은 선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학원으로 전화가 울렸다. 전화 벨소리가 불안하게 들렸다.
“원장님이세요?”
“네, ** 어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얼마 전 그만둔 선생님 말이에요. 나가서 새로운 학원 오픈했다 하는데, 아세요? 선생님에게 배웠던 아이들에게 그 학원으로 오라고 전화가 여러 통 왔었대요. 저도 받았어요. 수강료가 5만 원 여기 학원보다 저렴하던데 무슨 일이에요?”
“네?”
“알고 계셨어요?”
“흠...”
어떻게 대답을 해야 어머니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결국은 어눌하게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하면 드러나는 나의 오래된 고유 버릇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니 그때부터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김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 것 같은 느낌. 가식적인 미소가 생각나며, 그의 숨은 의도를 내가 몰랐던 거 아닌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 모르면서 무슨 사업을 하나부터 시작해서 원망반, 자괴감 반 섞인 마음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난 퇴근 전까지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며 맥주 두 캔을 사서 들어가자마자 한 번에 마셔버렸다. 얼굴이 붉어지며, 심장박동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난 오만했다.
학원을 확장시키며 사업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난 뭘 해도 된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주위 원장님들이 강사가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힘들어할 때 겉으로는 위로를 해주었지만, 속으로는 “ 사람 관리를 저렇게 못하면 어떻게 해?”라는 마음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나만 잘한다고 생각했다.
사건은 항상 내가 오만한 마음을 가질 때 생겼다.
그걸 알면서도 난 자주 거만한 마음을 내 것 인양 가지고 있었다. 사업의 성공은 나에게 겸허하지 않은 게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남들이 어려워서 하기 힘들다는 학원을 누구보다 짧은 시간에 3개 하고 있었고 애들은 입학을 위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난 운이 좋았다고 겸허한 척을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겸손하지 못했다.
쉽게 잠을 들 수 없었다.
잠이 오려고 하면 자연스레 눈이 번쩍 떠지고, 그를 증오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다. 결국은 밤을 새우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간판은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건 학원. 나의 느낌이겠지만, “난 너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난 그 간판을 지금 쳐다보며, 그를 계속 미워해야 할지, 그를 용서하고 나를 돌아봐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를 원망하다니 내 마음이 불편했고, 나를 돌아보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 두 가지 길 중 어느 길도 선택하지 못하고 간판만 1시간째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길이든 선택하고 털어버려야 내 마음이 나아질 텐데, 오랫동안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을 또 쉽게 이루지 못했다.
그다음 날
난 꽃집을 향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 가는 대로 가자하고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렸는데, 어느새 내 발걸음은 꽃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내 말투가 그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마음이 사그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꽃집에서 가장 큰 화초를 사고 거기에 “ 개업 축하! 제아 어학원”이라고 붙이니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내 마음이 고요한 것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그 화초를 받고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난 그것으로 그와의 인연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마음으로 정말 보낼 수 있었다.
얼마 후, 그의 전화번호가 부재중 전화가 떴다.
그의 전화가 울릴 때, 난 받지 않았다.
그냥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