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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14. 2021

내 핸드백엔 스페어 양말이 있다.

1-3

비가 오면 난 항상 핸드백에 양말 한켤레를 여분으로 준비한다. 20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첫 과외비 봉투를 엄마에게 드렸던 날. 엄마는 내게 (미안하고 고마워하며) 봉투에서 10만 원을 꺼내 용돈으로 주었다. 집안 살림에 보태고자 가장 보조 역할과 동생의 대학 학비를 도와야했던 때였다. 나는 돌려받은 10만 원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 처음이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사 본 때는. 흰색 나이키 운동화는 마음에 쏙 들었다. 내 돈 주고 샀으나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는 듯한 그 신발을 신고 과외를 하러 갔었다.


새 신을 신고 외출하자마자 비 라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빗방울이 자꾸 운동화 위로 떨어지는데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헐레벌떡 학생 집에 도착해서 운동화를 벗으려는 순간, 이미 물이 운동화 안으로 새어 들어가 영말이 다 젖은 상태였다. 철퍽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흠뻑 젖어있었다.


얼굴에 열이 확 올라 어찌할줄 모르고 있는데, 학생 어머니가 현관으로 나오셨다.

“선생님, 양말 벗고 들어가세요”

학생 어머니의 차분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양말을 벗고 발을 내딛는 순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대리석 바닥이 보였다. 복도 끝에 있는 학생의 방까지 나는 조심조심 발끝을 들고 걸어 들어갔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발을 닦았다. 맨발에 수업 이라니. 발은 하얗게 쭈굴쭈글 불어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하면서 난 내 발을 몇 번이나 내려 봤는지 모른다. 초라한 내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오기가, 어떤 의지가 뜨겁게 차올랐다.


한창 젊고 마음 가는 대로 흥을 즐기고도 싶었을 그 20대에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유흥을 즐기며 산 기억이 없다. 누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성실하게 지내려 했던 것. 돌이켜 생각하면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없다. 더 이상 초라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엄마가 생각이 나서. 가족들이 떠올라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이 살아낼 것이다. 다만 비가 오면 여분 양말을 하나 더 챙겨 더욱 철저하게 내 자신을 지키고 이겨낼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습관이 하나 생겼다. 비가 오면 난 항상 핸드백에 양말을 한켤레 준비한다. 지금은 양말이 젖을 일도 없는데 말이다. 20년 전 어느 날 때문에 생긴 나만의 버릇이다.


오늘도 비가 온다.

양말 하나를 핸드백에 넣고 나는 다시 힘차게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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