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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17. 2021

워킹맘인데도 불구하고

1-6

내 취미는 근처 공부방을 둘러보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공부방을 하기로 마음먹고 난 직후부터였다. 

그날도 여기저기 둘러보러 집에서 나섰는데, 내 모습이 현관 거울에 보였다. 출산 후 살이 아직 빠지지 않았고 얼굴은 퀭하기 짝이 없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인지 손목이 특히 욱신거렸다.

 

 

걸어가다 보니, 멀리 공부방 하나가 보였다.

초인종을 누르니 화장이 진한 선생이 나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상담 받으러 왔습니다”

 

선생은 아래부터 위까지 나를 훑어보았다. 내가 초라한 모습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불쾌한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너저분한 복사 자료,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다.

놀라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청국장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선생님은 세상 순박한 얼굴로 수업을 시작하면 먹을 시간이 없어서 먼저 먹었다는 핑계를 대었다. 순간 굳어버렸지만 초연하려 애썼다

 

 

너무 워킹맘이라 힘들다고, 아이 키우며 쉬엄쉬엄 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다며, 공부방 선생의 고초를 나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워킹맘이라서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내가 공부방을 해도 저렇게 운영을 할 수밖에 없을까? 라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내가 입고 온 운동복 바지가 눈에 띄었다. 당장 옷 먼저 갈아입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공부방을 부업으로 생각해선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만약 공부방을 ‘먹고 살기 위해’ 운영한다 하더라도 학부모분들이나 학생들과 같은 고객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방을 세팅할 때 많은 노력을 했다.

어느 공부방보다 정돈된 모습으로 보이도록 정리를 했고, 아이들이나 어머니가 불편한 부분이 조금도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든 책상과 의자는 자체 주문하며 유난을 떨었다. 나의 호들갑은 고객들의 만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 해당 사업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학부모분들로부터 엄밀히 돈을 받고 그들의 귀한 자녀들의 학습시간이 나에게 맡겨진다는 사명감은 분명했다. 공부방에 들어온 아이들이 적어도 공부하는 방법은 반드시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쳤다. 점차 나의 진심이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난 어머니가 공부방을 떠날 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문을 나서도록 노력했다. 백화점에서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인사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따라 했던 기억도 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세상의 순리를 자연스레 행하고 있었다. 대형학원 일타강사가 폴더폰처럼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건 아마 그 당시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노력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행운 때문만을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정리정돈을 하지 않았던 공부방 선생을 내가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도 워킹맘으로 지내면서 어렵고 주저앉은 날이 많았기에. 하지만, 공부방에서 사업으로 순조롭게 연착륙할 수 있었던 건 워킹맘이라서가 아니라,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견뎌냈던 시간 때문이라 믿는다. 워킹맘인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니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쌓였으나 난 담담히 해낼 것이다.

‘워킹맘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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